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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겨내기] '적극적 인내의 시간'

mediapiawrite
  • 입력 2020.09.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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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장춘교님의 작품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무기력하고 답답해진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내면의 자신을 찾고 또 하나의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자신을 넘어 가족, 그리고 대한민국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이 위기를 이겨냈으면 하는 바램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까똑왔숑!’ 

 “응? 바쁜데 누구지?”

 정신없는 미소로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요란하게 울린 남편의 카톡 메시지.

 [너 어디야? 고3 엄마가 돼서 생각이란 걸 하는 거냐? 지금이 어떤 때인데 제정신이면 당장 그만둬. 적어도 막둥이 시험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그만두라고.]

 무방비 상태에서 날아온 익숙하고 일방적인 메시지. 

 아르바이트도 엄연히 신뢰를 기반으로 계약을 하고 일하는 곳인데, 앞뒤 설명 없이 날아온 메시지는 또 한 번 내 마음을 쿵하고 울린다. 세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많지는 않지만 쏠쏠했던 부수입과 무엇보다도 갱년기의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빵집 알바였다. 몸은 힘들었어도 또래 아줌마들과 함께 하는 일이라 가족들은 이해하기 힘든 정신적 회복에 무척 도움이 되었었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한동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리더십 시간에 배웠던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 인내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적극적 인내란 상황을 소극적으로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이 생긴 이유와 그 주변의 조건 등을 살펴서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견디면서 해결책까지 찾아가는 방법이다. 먼저 매일 등교하는 고3 아이의 엄마로서 코로나를 더 꼼꼼하게 조심해야 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또한 내가 아는 남편은 표현이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깊이에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넘치는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 지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나의 사회적 신용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걱정과 달리 그간의 성실함을 인정해주신 빵집 사장님께서 상황을 이해를 해주셔서 미안한 맘을 접고 가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나는 집 안의 청결과 몸에 좋은 음식을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꼼꼼하고 걱정 많은 남편은 자신의 방식대로 살균 소독기 설치와 코로나 예방규칙을 정하여 가정을 지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의 우울증을 걱정하던 아들 요한이는 틈나는 대로 함께 산책로를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학생 새내기 큰딸 유정이는 온라인 수업으로 나보다 더 답답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서툰 솜씨로 달달 구리한 요리를 가족들에게 선보이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곤 한다. 고3 막둥이 보리는 엄마가 좋아하던 일도 그만두고, 대중교통 대신 차로 데려다주느라 바쁜 아빠에게도 미안하다며 수험생의 힘듦에도 불구하고 최대한의 애교를 풀어낸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 겪는 일에 서툴지만, 가족이기에 더욱 조심하고 배려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고 있다.

 

 가족들의 많은 배려에도 불구하고 갱년기 주부인 나에게 코로나는 허리를 휘청거리게 하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의 시간이 세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 가운데 자택 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식구들이 모두 집에 있으니 집안일도 몇 배는 늘었다. 몸의 변화로 괴로운 나에게 잠시의 쉼도 허락되지 않은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당연한 듯 희생을 원하는 가족들의 무심한 위로의 말들은 모두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국가차원에서 가장 최고의 방역을 인정받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신체적 변화와 함께 동반된 코로나발 무기력증과 두려움은 나의 몸과 마음을 자꾸만 힘들게 했다. 한동안 신체적, 정신적 혼란 속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던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유정이가 다가와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엄마, 엄마가 잘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한 번 도전해 봐.”

 “???”

 “엄마, 책 좋아하고 봉사도 많이 했잖아. 어쩌다 이렇게 시간도 생겼으니까 공모전 도전해보면 어때? 이참에 다른 것도 해보라는 기회일 수도 있잖아. 응?” 

 “뭐? 말도 안 돼. 내가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다고. 하하!”

 어색하게 유정이의 말을 웃어넘긴 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이 오십을 넘긴 지금 코로나 덕분인가? 딸아이 덕분인가? 아이 셋 키우느라 잊고 살았던 나의 버킷리스트가 생각났다. 죽기 전에 책 한 권 쓰기. 하지만 책도 많이 읽은 편도 아니고, 일기 좀 끄적거렸다고 글을 쓰라고? 말도 안 되는 욕심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건 욕심이 아니다. 욕심낼 결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고민할 일이었다. 나에게는 당장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유정이의 따뜻한 한마디에 어린 시절 할머니의 글 읽는 소리와 함께 다락방의 문학소녀로 꿈을 키우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마음 한 구석이 그리움과 설렘으로 간질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좁아진 한 길만 보며 살아온 내가 코로나와 유정이의 응원덕분에 생각이 다양해지고 폭넓게 열리기 시작했다. 닥쳐온 문제를 걱정만 한다고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다. 나는 다시 코로나에 대해 적극적 인내의 방법을 적용하면서 이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고 긍정적으로 찾게 되었다. 그렇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무엇이든 상상하고 생각하고 해보느라 갱년기 증세도 잘 느끼지 않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모습들이 이렇게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던가. 무기력하던 내가 새로운 글에 들어갈 수도 있는 주변의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느라 저녁산책은 아주 즐거운 일과가 되었다. 선물처럼 주어진 짧지 않는 ‘쉼’의 시간을 통해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확장하고, 나와 우리의 필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뚜벅이 엄마인 나는 막둥이 보리와 종종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있는데, 아빠가 바쁠 때면 평소 당연했던 대중교통 이용이 코로나 이후에는 아이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졌다. 마스크를 잘 착용해도 위험할 것 같은 빼곡한 만원버스,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마주하는 지하철 안의 턱스크 취객에, 당당하게 노 마스크인 사람들까지 있으니 말이다. 지금 고3 학생들은 매일 등교한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 지금은 개인의 사정이 다수의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야말로 우리가 왜 이런 노력과 희생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적극적 인내의 이해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에게 신체적, 물질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혼자 하는 희생과 노력이 결코 아니다. 나는 뜻이 달라도 옳은 것을 받아들일 줄 알고, 대의를 볼 줄 아는 사람이 가장 품격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품격 높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K-방역으로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의 백신과 치료제개발도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진행 중이고, 무엇보다 그런 피땀눈물 가득한 성과들을 물질적 이익보다 범 인류애 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높은 품격을 가진 자랑스러운 민족이라는 것도 지금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이자 희망이다. 현재 우리는 모두 조금 길고 불편한 ‘멈춤’의 시간에 강제로 들어섰다. 왜? 라는 질문의 답은 이미 나왔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어떻게? 할 지 살펴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나와 우리가 모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니까.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장춘교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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