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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85 ] 아네이

김홍성
  • 입력 2020.09.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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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바위에서 아네이가 내려왔다. 아네이는 굿 모닝, 밝게 인사하고는 탕으로 쑥 들어와 앉았다. 속옷이 물에 젖자 살이 비쳤다. 흰 면내의가 감싸고 있는 크고 탱탱한 젖의 윤곽이 드러났다. 나는 머리를 쳐들고 짐짓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른이 넘은 나이라면 사내를 모르지 않을 텐데 내외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아네이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끈끈한 인도 가요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풀주머니 같은 아네이의 살집이 감은 눈 속에 어른댔다.

 

코리아에도 이런 온천이 있나요?”

콧노래는 언제 끝났나. 아네이가 꾀꼬리 같은, 아니 꾀꼬리처럼 곱게 꾸미는 음성으로 말했다. 미소 짓고 있는 아네이의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 있어요.”

나는 시선을 돌리고 짧게 대답했다.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무색한지 아네이는 손바닥으로 물을 떠서 손가락 사이로 흘렸다. 몇 차례 계속 그러다가 묻는다.

물이 참 좋지요?”

나도 같은 동작을 하며 대답했다.

, 좋아요.”

부탄에도 이런 온천이 있어요. 그런데 가보지는 못했어요. 레스토랑에서 일하느라고 바빴거든요. 이 온천이 처음이에요.”

무슨 레스토랑인데요?”

투어리스트 전용이었어요. 저는 카운터를 봤어요. 하지만 서빙도 하고 음악도 틀어주고 그랬어요.”

집안 살림은 안 하고요?”

어머니가 했어요. 아이들도 어머니가 보고요. 아이들은 지금도 우리 어머니와 함께 있어요.”

남편은요?”

벌써 오래 전에 헤어졌어요.”

왜요?”

아네이는 대답 대신 한숨을 포옥 쉬었다.

 

애들 보고 싶지 않으세요?”

많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부탄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괜한 걸 물었나 보았다. 아네이의 안색과 음성이 조금 어두워졌다.

 

히말라야의 작은 왕국 부탄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다 보니 가정생활이 순탄치 못했으리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네이는 또 노래를 불렀다. 아까의 콧노래에 가사를 붙여 본격적으로 불렀다.

빨데시 빨데시 자나 나 헤 무제 초오르케에 무제 초오르케에에 ......”

 

남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네이는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두 손바닥으로 물을 찰싹찰싹 치면서, 풀주머니 같은 젖가슴을 출렁이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만 일어서고 싶었지만 노래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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