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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84 ] 가부좌

김홍성
  • 입력 2020.09.1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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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바와 급속히 친해졌다. 바바의 섭생을 위해 마을에 가서 채소나 계란이나 우유를 구해 주기도 했는데 바바는 계란을 먹지 않았다. 바바는 계란을 감자처럼 모닥불에 구워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몽사는 첫날부터 바바와 함께 살다시피 하더니 며칠 후에는 바바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모닥불을 지펴서 취사하고 탁발 나가는 모습도 촬영했다.

 

바바는 뼈만 남은 사람이지만 몸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사지를 자유자재로 비틀어서 꼬고 돌릴 수 있었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몸통을 비롯한 사지의 일정한 근육만 부분별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뿐인가? 콧구멍을 한쪽씩 손가락으로 막고 격하고 빠른 호흡을 할 때는 콧구멍에서 제트기 소리가 났다.

 

나는 박쥐가 싫어서 안 들어갔지만 셋은 바바의 거처인 굴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통로는 좁지만 짧아서 곧 일어서서 팔 벌리고 대여섯 걸음 정도는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오더라고 했다. 몽사는 바바가 굴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데 박쥐가 찍찍 날아다니는 광경도 카메라에 담았노라며 매우 기뻐했다.

 

무상 스님은 굴속에서 잠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본 것으로 히말라야 동굴 수행의 꿈을 이루었다면서 웃었다. 몽사는 남인도의 스승에게 돌아가는 바바의 여정을 함께 하며 사진을 찍는다는 새로운 꿈에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취생의 승낙이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바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도는 운수행각승 아닌가? 몽사 혼자서는 몰라도 취생까지 같이 다니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바는 스승을 떠나 만행을 시작한지 거의 5년이 되었다고 했다. 5년이나 지났는데 나이가 백살 가까운 노인이 생존해 있는지를 굴 속에 앉아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바바는 스승의 부름을 들었다고 했다. 바바에 의하면 자기 스승의 모든 제자들은 명상 중에 스승을 만나고 스승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고 덧붙였다.

 

나는 바바 보다는 온천을 더 가까이 했다. 어느 날이었을까? 아마도 바바를 처음 만난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집을 나서니 새벽하늘이 보랏빛으로 밝아 오고 있었다. 길섶에는 노란 달맞이꽃들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바람에 묻어오는 달맞이꽃 향기가 은은했다. 바위에 옷을 벗어 놓을 때는 동이 트려는지 동쪽 하늘 샛별이 가물가물했다.

 

벗어 놓은 옷을 돌로 눌러 놓고 탕으로 내려가 몸을 담갔다. 새벽 온천은 밤보다 훨씬 뜨거웠다. 왜 그럴까? 내 추리에 의하면 밤 동안 계곡 상류 빙하지대의 눈 녹는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이제 곧 해가 뜨면 태양열에 의해 설산의 눈 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계곡의 물은 다시 맹렬한 기세로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면 그 차가운 물이 온천에 섞여들면서 수온을 내려가게 한다. 이런 근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위 위에서 인기척이 났다. <계속>

RUMI | "And don't think the garden loses its ecstasy in winter. It's quiet, but the roots are down there riot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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