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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83 ] 감자

김홍성
  • 입력 2020.09.1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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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사는 저에게 말했죠. 부인과 이혼하겠다고. 하지만 이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랑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이 여행이 끝나면 몽사는 부인에게로, 저는 큰 이모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돌아서는 취생의 눈에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잘못 보았던 것일까? 눈물이 맺히는 순간 취생의 표정에 서릿발 같은 미소가 서렸었다. 슬픔이나 고통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만든 미소가 아니었다. 그녀의 내면에 있는 어떤 각오가 한 순간 빛처럼 반사된 미소였다. 이미 걷기 시작한 취생의 뒤를 따라 걸으며 내가 물었다.

 

스님께서 그런 사연을 다 들으셨으면 무슨 말씀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직까지는 없으셨어요.”

무슨 말씀이 있기를 기다리시나요?”

아뇨. 답은 계속 저를 따라다녔어요. 제가 한사코 답을 부정했을 뿐입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방금 본 서릿발 같은 미소를 떠올리면서 그 미소가 취생의 고통을 끊을 수 있기를 바랐다. 취생은 빠른 걸음으로 비탈을 내려갔고 나는 그녀가 혹시 넘어지지나 않을지 걱정하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감자와 밀가루를 바바의 앉은 자리 옆에 내려놓자 바바는 다시 덤불 속에 들어가 삭정이를 모아 왔다.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좀 전에 모아온 것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바바는 삭정이 더미를 옆에 놓고 이제 불길이 사위어가는 모닥불 밑의 재를 막대기로 헤치고 흙을 긁어냈다. 우리가 사온 감자 다섯 개가 흙속에 들어 앉았다. 바바는 감자 위에 재를 덮고, 그 위에 알불을 모아 놓았다. 그리고 덤불 속에서 골라온 삭정이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얹으며 불길을 살렸다.

 

불길과 함께 연기도 피어올랐다. 욕숨에서 목도한 노비구니의 다비식이 떠올랐다. 모닥불이 커지기 시작하자 바바는 노래를 읊조렸다. 졸립도록 단조로운 노래의 반주처럼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모닥불이 타올랐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모닥불을 바라보며 바바의 노래를 들었다. 바바의 노래는 불을 살리기 위한 노래 같았다. 감자가 잘 익기를 기원하는 노래일지도 몰랐다.

 

노래가 길어지자 우리는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바바는 우리가 가게에 갔다 오는 사이에 깡통에 끓인 감자 국을 조금 떠서 목구멍으로 넘겼다고 몽사는 말했다. 단식을 풀고 섭생을 시작할 때는 조심해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내가 조그맣게 말했다. 섭생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식탐이 생긴다더라고 더 조그맣게 얘기했다.

 

나는 우리가 사온 감자나 밀가루 때문에 바바가 음식조절에 실패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그건 기우였다. 바바는 잿더미 속에 묻어서 찐 감자를 우리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감자는 바바 자신이 먹으려고 찐 것이 아니라 손님을 대접하느라고 찐 것이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빈속에 오래 기다려서 얻은 한 알의 감자는 껍질을 벗기기 위해 살짝 쪼개자마자 김이 났다. 뜨거운 것을 잘 먹는 나는 두 개를 먹었다. 바바는 우리가 감자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입맛을 한 번 다시더니 깡통에 끓인 감자국을 조그만 표주박 같은 것으로 떠서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겼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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