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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82 ] 스승

김홍성
  • 입력 2020.09.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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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야윈 몸으로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 나왔다. 바바는 나를 한 번 흘낏 보더니 다시 불을 보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가느다란 시냇물도 계속 흐르기만 하면 결국 바다에 이른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제부터는 조금씩 섭생을 시작할 것이다.”

바바는 깡통을 가리키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몽사가 놀란 표정으로 바바에게 물었다.

여태까지는 안 먹었냐?”

한 달 넘게 먹지 않았다.”

?”

 

단식했다는 말이군요. 그러니까 저렇게 갈빗대만 앙상한 거 아니겠어요?”

취생이 이 말에 무상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몽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바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점심에 초대하고 싶다. 괜찮으면 준비해 놓고 부르러 오겠다.”

사양하겠다. 내 음식은 나 혼자 조리한다."

그렇다면 감자와 밀가루를 좀 구해 오겠다. 혹시 또 필요한 건?”

그 정도면 충분하다.”

 

몽사가 취생을 바라보았다. 취생이 머리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영감네 가게에 가서 식량을 사오려는 것이었다. 나도 취생을 따라 일어섰다.

 

앞장서서 가던 취생은 출렁다리 앞에서 나에게 선두를 양보했을 뿐 말이 없었다. 처음 가져보는 둘 만의 시간이 어색했던 것 같다. 나도 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입은 다물고 있었지만 그게 더 어색했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영감네 가게로 오르는 비탈 중간에 등을 대고 기댈만한 바위가 있었다. 숨이 좀 편안해 진 뒤에 내가 먼저 입을 떼었다.  
 

바바에게서 수행자다운 면모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세요?”

글쎄요, 뭐랄까, 꼼꼼하고, 말을 아끼고 ……. 거짓된 인간이라는 생각은 안 들던데요. 그 앙상한 갈빗대에서 나름대로 오기 같은 것도 느껴지고요.”

나는 새벽에 온천탕 속에서 바바를 만났던 얘기도 전해 주었다. 바바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등지고 가부좌를 하고 있을 때 박쥐가 바바의 머리 위로 찍찍 날고 있었다는 얘기도 했다.

 

수행은 오기로 하는 걸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백 살이 되도록 자기 마을을 벗어난 일이 없는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점이 기특했어요. 이제 곧 그 스승에게 돌아가 자신의 여행담을 들려주겠다는 이야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 스승이 있다는 게 저도 부러워요. 저도 그런 스승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무상 스님의 상좌가 된 것 아닌가요?”

“......”

스님처럼, 그리고 바바처럼, 애매한 질문에는 침묵하시는 걸 보니 상좌가 된 것 맞네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는데 취생은 웃지 않고 대답했다.

, 그런 건가요? 전 그냥 대답이 안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취생과 나는 다시 비탈길을 올랐다. 가게 집 영감은 안 보였다. 영감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노파가 있었다. 바바에게 보시할 밀가루 2킬로그램과 감자 3킬로그램을 샀다. 그리고 씨킴 위스키도 큰 것으로 한 병 샀다

 

다시 비탈을 내려오다가 올라올 때 잠시 쉬던 그 자리에 멈춰서 내려다보니 온천이 나오는 바위 뒤에서 수건으로 하체를 가리고 빨래를 쥐어짜는 가게 영감이 보였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하류에서는 체링과 세따가 빨래하는 모습도 보였다. 바위에 널어놓은 빨래도 보였다. 취생이 그녀들을 물끄러미 건너다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참 이상한 인연입니다."

"뭐가 이상하죠?"

"저도 절에서 자랐거든요.”

? 절에서요?”

. 절에서 자랐습니다. 학교도 절에서 다녔구요. 큰 이모가 주지 스님이셨습니다.”

큰 이모가? 무상 스님도 아시나요?”

욕숨에서 장례가 있던 날에 말씀 드렸어요.”

뭐라던가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뭘 묻지도 않으셨죠. 그냥 제 얘기를 들어주셨어요. 매일매일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어요.”

그러셨군요."

몽사에게도 다 말했던 얘기들이지만 상대가 달랐죠. 스님이라서 좀 더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어요. 몽사에게는 말하지 못한 애기도 할 수 있었죠.”

몽사가 그래서 소외감을 느꼈던 거군요. 여기 오기 전 날 저를 찾아 왔을 때 무척 우울해 보였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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