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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79 ] 박쥐

김홍성
  • 입력 2020.09.0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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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소똥을 겹겹이 얹어놓은 것 같은 그의 머리 너머로 박쥐들이 찍찍 날아다녔다. 문득 그가 사는 동굴은 박쥐들의 서식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홍성

 

그는 온천물이 빠지도록 모래주머니 하나를 치우고 그 앞에 앉아 머리 타래를 풀었다. 머리 타래는 한 발이나 되는 듯 길었다. 그는 그 긴 머리채를 둘둘 말아 쥐고 그것을 빨기 시작했다. 빨래 방망이로 빨래를 두드리듯이 주먹으로 머리채를 두드리며 세탁했다.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갈빗대에서 오기 같은 게 느껴졌다. 많이 먹지 않는 바바, 사람이 없는 꼭두새벽에 목욕하러 나오는 바바, 말이 없는 바바 ……. 멋있었다. 시시한 사두 같지 않았다. 그는 머리채를 뒤집어서 두드리고, 다시 뒤집어서 두드리기를 두어 번 거듭한 뒤 물속에다 풀어 헹궜다. 그러나 떡처럼 덩어리진 머리카락은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다.

 

내게 비누가 있다.”

나는 비누를 쓰지 않는다.”

짧게 대답하고, 그는 머리채를 둘둘 말아서 머리에 얹었다. 소똥 모자를 쓴 것 같았다. 그는 어떠냐? 멋있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긴 수염을 탕 속에 담그고 두 손으로 비비기 시작했다.

 

수염도 세탁하는구나 싶어서 웃음이 낫지만 애써 참았다. 계곡에는 박쥐가 날아다녔다. 쥐처럼 찍찍 울면서 계곡 이쪽저쪽으로 날아다녔다. 부엉이 또는 올빼미나 소쩍새 같은 새도 울었다. 어떤 놈은 덩지가 커서 별빛을 가리며 날아다녔는데 그게 바로 부엉이 아닌가 싶었다.

 

그가 물에서 일어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머리털과 수염과 몸을 말리려는 듯 했다. 내가 그에게 말을 붙였다.

너는 매일 이 시간에 온천욕을 하는가?”

매일은 아니다.”

평소에는 굴속에 들어가 있는가?”

잠을 잘 때, 그리고 특별한 명상을 할 때만 굴속에 있다.”

밥은?”

굴 앞에서 직접 해 먹는다.”

식량은 충분한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없으면 안 먹는다.”

언제부터 그 굴에서 지냈냐?”

작년 겨울 추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앞으로 얼마나 더 거기서 지낼 거냐.”

글쎄......”

날 밝으면 너의 동굴에 방문해도 좋으냐? 친구들 몇 명이 같이 갈 거다.”

“......”

허락한 것으로 알겠다.”

“......”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일어서서 큰 바위 위로 올라가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옷을 벗어둔 바위에 올라가 옷을 입으며 그를 바라보니 말린 소똥을 겹겹이 얹어놓은 것 같은 그의 머리 너머로 박쥐들이 찍찍 날아다녔다. 문득 그가 사는 동굴은 박쥐들의 서식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박쥐 바바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계곡물 소리가 크게 들렸다. 호흡을 조절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잠을 깼을 때는 어느새 날이 밝았고, 건너편 바위의 박쥐 바바는 보이지 않았다. 길섶에 노란 달맞이꽃들이 희미한 운무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세차게 아우성치는 물소리 가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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