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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겨내기] '새여름'

mediapiawrite
  • 입력 2020.09.03 13:21
  • 수정 2020.09.2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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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모두가 어려운 순간이지만 우리 곁에는 평생을 함께하는 소중한 누군가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 "지금"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장려상, 천현숙님, '새여름'

 

 

코로나 이후 얼굴보기가 부쩍 어려워진 아들이 오랜만에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

"지금"

 

​시차 없이 튀어나온 단호한 어투는 얼마나 급하게 말했던지 비장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밥을 먹던 아들의 뜬금없는 물음에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오듯 순식간에 대답했다.

사실이다. 가족 모두 모여 밥을 먹는 이 시간.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다.

 

​말기 암 진단을 받던 날, 아이들에게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에게마저도 속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말을 하는 순간 사실이 될까 봐 두려웠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아빠를 암으로 잃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말기 암 소식을 전한다는 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었다. 고아가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술 날짜가 잡히자 엄마의 말기 암 소식을 아들은 알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아들은 내 보호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까지 다녀온, 그것도 논산훈련소 조교로 전역한 믿음직한 대학생으로 말이다. 엄마 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건장한 청년이 된 아들이었지만 나를 보자마자 아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곧바로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말기 암 환자가 되어 누워 있는 엄마를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기엔 아직은 준비가 많이 부족한 것 같기도 했다.

 

​아들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서러운 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감당하지 못할 슬픔이 아들을 감싸고 있었다. 목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훔치느라 오랜만에 만난 엄마에게 인사도 못 하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 큰 가슴으로 반갑게 안으면서 엄마 사랑해요 라고 했을 텐데. 오늘은 아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빠에 이어 가슴 찢어지는 순간을 또 만든 엄마의 무지함에 울지 말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들썩이는 아들의 등만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슬픈 등을 보았다.

 

"엄마 얼굴이 너무 노래~"라는 말을 할 때마다 딸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었다.

나의 회피형 성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피하다 피하다 내 몸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을 것이다.

 

수술실 앞에서 대기하는 그 잠깐의 순간은 일주일 후 다가왔다. 16cm라는 엄청난 크기의 암세포는 폭발 직전이라고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장치에  째깍째깍하는 시계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초조하고 벌렁거렸다. 언제 터질지도 모를 암세포 덕에 주저하던 수술을 일주일 만에 받을 수 있었다. 응급 수술이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멈추고 싶은 또 다른 의미의 시간이 삼성병원 수술실 앞에서 펼쳐졌다. 수술실을 나올 때 살아서 나올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사인을 받으러 오지 않았던가.. 생각보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고 가까이에 있었다. 그저 사랑하는 아들과 보석 같은 딸과의 이별이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는 이 기적 같은 시간,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롯이 집중하게 된다. 신선한 사연들이 반찬이 되기도 한다. 서로의 하루를 꺼내 보이며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여유를 부리던 여름이 저녁 식탁에 슬며시 와 있다. 절박함이 주는 에너지가 향기 같아서 나에게도 싱그러운 여름이 왔다. 이 여름을 함께하는 우리의 시간이 따뜻해서 행복하다.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라는 말의 의미가 부쩍 와닿는 매일의 연속

​평범한 일상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준 삶에 감사하다.

건강한 여름을 닮은 이 소중한 시간이 그저 벅차서 감사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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