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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74 ] 초상화

김홍성
  • 입력 2020.09.0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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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일기장을 덮을 때 쯤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새들의 노래는 가깝거나 먼 곳에서 활기차게 이어졌는데, 일순 뚝 그치면서 찾아온 정적 속에서 작은 방울이 구를 때 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또르르르 ...... 또르르르 ...... 또르르르 …….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어떤 곳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이명이나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 한 마리 새가 제 흥에 겨워 노래하는 소리였다. 또르르르 우는 소리가 너무 작아서 다른 새들의 활기찬 노래에 묻혀 있다가 다른 새들이 무리지어 부르는 노래가 그칠 때만 잠시 들리는지도 몰랐다.

 

또르르르 새의 노래는 몇 번 들리다가 말았다. 많은 새들이 날아가고 날아오면서 저마다 활기차게 내지르는 노래에 묻혀 버렸다. 새들의 노래가 멀리 날아가고 나면 또르르르 새의 노래가 다시 들릴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계속 귀를 기울였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쉽고 서운했다.

 

삼툭 마을에 가 보기로 했다. 일부러 금송 숲을 에도는 먼 길을 택했다. 전에도 갔던 길이지만 어제 스님과 취생이 그 금송 숲에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금송 숲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왕릉이 나올 법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고개 위에 오르니 멀리 삼툭 마을이 보였다. 새삼스레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집집마다 향로에서 피워 올리는 향연(香煙)이 밥 짓는 아궁이에 삭정이를 태우는 굴뚝 연기처럼 자욱했다.

 

고개 마루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완만한 오솔길이 보였다. 마을 주민들이 마른 솔잎을 긁으러 다니는 길이지 싶었다. 어쩌면 스님과 취생이 어제 함께 걸었던 길일지도 몰랐다. 물론 몽사와 취생도 한 번은 같이 걸었을 길이었다.

 

숲길에는 특별한 향이 가득했다.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은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솔잎 스치는 바람 소리 속에서 문득 또르르르 새 소리가 들렸다. 먼 곳인지 가까운 곳인지 알 수 없는 어떤 비밀한 장소에서 몰래 우는 듯 아주 작게 들렸다. 그 소리는 이내 바람 속에 묻혔고 바람이 그쳐도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 때 어떤 그림이 눈앞에 있는 듯 뇌리에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인데, 눈도 코도 입도 눈썹도 없이 희미한 귀의 윤곽만 보이는 초상화였다. 언제 어디서 봤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초상화였다. 전에 그런 초상화를 실제로 본 적이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나는 귀신을 본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금송 숲을 빠져나왔다.

 

들에는 농부들이 일하러 나오고 있었다. 소를 앞세워 쟁기질 하는 농부도 있었다. 새들이 그 뒤를 따르며 땅속에서 나온 벌레를 쪼아 먹는 풍경 너머에서 스님과 취생이 나타났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인 듯 했다. 내가 타시델레 하면서 손을 높이 들어 합장하자 두 사람도 타시델레 하면서 합장해 보이고 그 자리에 서서 내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주었다.

 

몽사 선생은요?”

사진 찍느라고 뒤에 쳐졌어요. 곧 올 겁니다.”

이 길로 쭉 가면 만나나요?”

글쎄요. 괜히 길 어긋나니까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어제 몽사 선생에게 촬영 마치고 같이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안 와서 저 혼자 가서 먹었죠."

얘기 들었어요. 취재 마무리 하고 조레탕 온천에 간다고 요즘 바쁘더라고요.”

덕분에 우리 둘이 잘 돌아다녀요.”

정 들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스님.”

벌써 들었는걸요. 안 그래요 스님?”

취생이 묻자 스님은 빙긋이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제 혼자 취재 나가는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어요.”

정말요? 전 그런 생각 안 해 봤는데 ......”반성하셔야 됩니다아~”

스님은 또 빙긋이 웃었는데, 그것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는 뜻이지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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