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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70 ] 곰파 뒷산

김홍성
  • 입력 2020.08.3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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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a

 

출상 행렬이 십리 쯤 걸어서 도착한 곳은 망자가 승려로 살았다는 두브디 Dubdi 곰파였다. 시킴 왕국 건국 당시(1701)에 건립되었다는 이 곰파는 승려들이 떠난 후 퇴락하고 있었지만 상여가 오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자 활기를 띠었다.

 

상여는 곰파 앞마당을 세 번 천천히 돈 후 법당 앞에 내려졌다. 한 승려가 법당에서 나와 뚱바를 한 모금 마신 후 천으로 싼 위패를 모셔 들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안에서 요령을 흔들며 염불 하는 소리가 났다.

 

스님들이 법당에서 염불을 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돌을 쌓아서 만든 오래 된 마니 탑 주변에 둘러앉아 뚱바를 안고 대롱을 빨았다. 마을 사람들이 제법 얼큰해졌을 때, 법당에서 나온 승려는 상여 앞에 앉아 경을 읽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명복을 비는 의식이었다.

 

다시 북 치고 나발 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상여를 모신 행렬은 곰파의 뒷산으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좀 전까지 느긋하게 뚱바에 꽂은 대롱을 빨던 사람들이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구슬픈 음성으로 옴마니밧메훔을 염불하며 운구를 따랐다.

 

눈물만 흘리는 노인도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장난을 쳐가며 따라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스님과 취생이 보였다. 몽사는 이미 상여를 앞질러 가서 카메라를 겨누고 있었다. 울창한 숲 속 길을 이러 저리 에돌며 올라가자 커다란 바위가 보였는데 상여는 바로 그 바위 위에 내려졌다.

 

상여를 내린 남자들은 둥치가 굵은 나무들을 베어다가 상여가 놓인 바위 밑에 우물 정()자로 쌓으면서 속에는 잔가지를 채웠다. 화목은 아무렇게나 쌓는 게 아니었다. 남자를 화장할 때는 나무를 아홉 단 쌓고 여자는 열두 단을 쌓는다고 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태워야 할 업보가 낳은 자식들 숫자만큼 더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화장을 할 때마다 나무를 베기 때문에 주 정부에서는 화장에 쓸 큰 나무 한 그루를 벨 때마다 어린 묘목 12 본을 심으라는 법률을 제정하는 중이라고 마을의 이장이 말했다.

 

승려들은 나직하게 불경을 외고 부녀자들은 한곳에 모여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 화목이 한 단 한 단 쌓여 갔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덤덤한 분위기 속에서 관이 놓인 바위 높이 가까이 화목이 쌓이자 바위 옆에 거적을 깔고 좌정하여 뚱바를 빨던 승려들이 다시 염불을 시작했다. <계속>
 

ⓒmong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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