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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69 ]출상

김홍성
  • 입력 2020.08.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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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상 행렬이 길었다. 행렬의 맨 앞에는 긴 나발, 짧은 나발, 큰 북, 작은 북, 징, 등의 악기를 든 어린 스님들. 그 뒤에는 긴 장대에 매단 깃발을 치켜든 스님들. 행렬의 가운데는 여섯 명의 남자들이 어깨에 멘 상여. 상여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뒤따랐는데, 맨 뒤에 따라가는 남자들은 불쏘시개로 쓸 땔감 묶음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mongsa

 

여기 저기 푸른 풀이 돋는 마당에서 향 태우는 연기가 뭉클뭉클 솟아오르고, 난간에서 어린 승려들이 긴 나발을 불고 북을 두드리는 허술한 이층집 주변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집 뒤로 내려오는 산길에서 막 마당으로 들어서는 어린 승려들도 있었다. 어린 승려들은 이 집에서 임종한 팔순 노비구니의 출상을 돕기 위해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몽사는 어린 승려들을 촬영하고 있었다. 취생과 스님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그 근처에 있었다. 노비구니는 노환으로 속가에 내려와 있었을지언정 늘 청정하게 살다가 가부좌를 튼 채 임종을 맞았다니 거창한 출상이 될 것이 분명했는데 카메라를 든 사람은 몽사가 유일했다.

 

출상은 마을 사람들과 스님들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방금 마당으로 나온 관이었다. 나무로 짠 그 관은 작은 쌀뒤주처럼 정육면체에 가까웠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품고 온 희고 얇은 목도리 형태의 카타를 꺼내어 관 위에 덮었다.

 

스님과 취생도 거기서 나타났다. 언제 마련했는지 각자 품에서 카타를 꺼내어 관 위에 덮었다. 카타 증정이 뜸해지자 두 개의 긴 대나무로 만든 가마 위에 관을 앉혀 고정시키고, 관 전체에 오색 천으로 만든 덮개를 씌웠다. 다시 그 위에 오색 고깔 모양의 지붕을 씌우고, 또 그 위에 일산(日傘)을 받쳐서 화려하게 치장했다. 여전히 문상객들이 줄을 잇고, 새로 온 문상객들이 바치는 카타는 상여의 지붕 추녀나 상여를 받친 긴 장대 등에 걸렸다.

 

ⓒmongsa

 

출상 행렬이 길었다. 행렬의 맨 앞에는 긴 나발, 짧은 나발, 큰 북, 작은 북, 징, 등의 악기를 든 어린 스님들. 그 뒤에는 긴 장대에 매단 깃발을 치켜든 스님들. 행렬의 가운데는 여섯 명의 남자들이 어깨에 멘 상여. 상여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뒤따랐는데 맨 뒤에 따라가는 남자들은 불쏘시개로 쓸 땔감 묶음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행렬이 마을을 빠져 나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마을 부녀자들이 뚱바를 들고 나와 상여의 앞길을 막고 가는 길이 멀더라도 이 술 한 모금 하고 가소서하기 때문이었다.

상여는 잠시 땅에 내려지고 상두꾼들이 뚱바를 마시는 동안 망자가 앉아 있는 상여 속의 뚱바도 새것으로 바뀌었다. 뚱바는 이 지역 토박이들의 모든 축제와 통과의례에 사용되면서 희노애락과 생노병사를 같이 하는 신성한 술이며 출상에 나선 사람들은 물론 망자의 길양식이기도 했다는 몽사의 말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다시 상여가 들리고 북 치고 나발 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또 다시 뚱바를 들고 나온 마을 부녀자들에 의해 상여를 땅에 내려야 했다. 마지막 가는 길을 붙들고 또 붙드는 이들 부티야(Bhutia) 부족은 티베트의 동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는데 어쩌면 그렇게 꼭 우리나라 옛날 사람들 같은지, 산천 또한 내 어린 시절의 그 산천과 다르지 않아서 아주 먼 과거의 어느 한 때에 돌아온 듯 했다. <계속> 

 

ⓒmong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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