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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65 ] 삼툭 마을

김홍성
  • 입력 2020.08.2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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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숨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을 때는 마치 뒤숭숭한 꿈에서 깨는 느낌이었다. 운무는 걷혔고, 해는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삼툭 마을을 찾아갈 시간은 충분했다.

 

이튿날 오전에 스님과 나는 욕숨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우리도 마크와 조앤처럼 욕숨의 삼툭 마을에 방을 잡고 산책이나 다니면서 며칠 푹 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결과였다.

버스가 자욱한 운무 속을 달리는 동안 나는 잠들어 있었다. 이따금 깨어나서 차창 밖에 스치는 운무를 멀거니 바라보기도 했다. 참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운무였다. 다르질링의 운무가 씨킴까지 따라온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르질링도 씨킴의 일부이며, 씨킴 땅은 설산 칸첸중가의 동쪽 기슭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휴게소에서 생수를 사서 마시고 소변을 보고 만두를 한 접시 먹고 다시 버스에 올라 눈을 감았다. 차체의 진동과 소음 속에서 간밤의 과음을 후회하기도 하고, 아침 인사 후에 바로 작별한 조앤과 마크의 뒷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와 같은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는 스님은 자는지 명상을 하는지 모르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수행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내 멋대로 혼자 스승으로 삼았던 어떤 스님의 만행을 따라나섰다가 그런 생각을 밝혔더니 스님은 내가 절에서 못 견딜 거라고 했다. 세속에 살면서 나쁜 짓을 안 하는 것도 어려운 수행이라고 했다.

서울 주변의 산 능선 길을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도라지 씨를 뿌리는 스님의 일이 얼추 끝날 때까지 40 일 넘게 나는 줄곧 출가에 대한 생각을 했었지만 그 모두가 망상에 그치고 말았다.

걸핏하면 여행을 떠났다. 마음 맞는 사람을 찾고, 그 사람과 술을 마시고, 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토로하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입을 다물면 바로 허전해졌다. 나의 입은 술을 마시고, 술이 자극한 망상을 상대에게 토로하느라 바빴다. 한국에서는 물론 캘커타에서도 다르질링에서도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이제 스님에게 내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어서 욕숨으로 가는 것이다.

 

도로 표지판을 통해 욕숨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취생과 몽사를 만나면 내가 반드시 밝혀야만 할 일이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산골 처녀들에게 했던 내 거짓말을 어떻게 취생과 몽사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라니! 나는 혹시 미친놈 아닌가?

 

욕숨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을 때는 마치 뒤숭숭한 꿈에서 깨는 느낌이었다. 운무는 걷혔고, 해는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삼툭 마을을 찾아갈 시간은 충분했다. 갱톡 시내 노점에서  구입한 엉성한 지도에는 삼툭이라는 마을 지명이 나와 있지 않았다. 욕숨 북쪽 산기슭이라는 말에만 의존하여 장터 북쪽으로 오르는 비탈로 접어 든 후에 삼툭 마을 가는 길을 행인들에게 물었더니 한 젊은이가 한참 더 올라가서 큼직한 다리가 나오면 거기서 길을 다시 물으라고 했다.

 

산닥푸 트레킹 때 지나온 림빅에서 실리콜라로 가는 길 같은 전원 풍경이 이어지다가 큼직한 다리가 나왔다. 길은 다리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우선 다리를 건너 곧게 뻗은 길이 보였고, 다리를 건너서 좀 더 가다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그리고 다리 건너 공터에서 개울을 거슬러 오르는 길과 개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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