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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62 ] 종이봉투

김홍성
  • 입력 2020.08.2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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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뜨리거나 무언가에 부딪쳤을 때 깨지지 말라고 싸준 것이라면 종이봉투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를 말한 것인가? 혹시 남인도처럼 술병을 드러내놓고 소지하고 다니다가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김홍성 

 

가이드북에 간추려진 기록에 의하면, 시킴은 독립된 불교 왕국이었다. 대국 사이에 낀 소국이어서 외세의 간섭과 침략에 의해 늘 흔들렸다. 다르질링도 사실상 영국에게 빼앗긴 시킴의 영토였다. 결국 시킴 전체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는데, 인도가 독립하면서 시킴도 인도의 보호령이 되었다. 1975년에는 국민투표에 의해 인도의 22개 주 중의 1개 주가 되었다.

 

불과 20 년 전에 망한 나라에 와서 세금 없는 술을 즐긴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면세 특혜는 원주민들로 하여금 망국의 한을 술로 달래고 술로 잊으라는 인도 정부의 술수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불쾌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술은 주문하지 않았다. 술 없이 모모와 툭바와 볶음밥을 적당히 나누어 저녁을 때웠다.

 

숙소를 찾는 일은 쉽게 해결 되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은 식당은 4층짜리 호텔 건물의 1층이었다. 식당 카운터와 등을 대고 있는 카운터가 호텔의 카운터였다. 2층과 3층은 일반적인 객실이고 4층에는 아래층보다 조금 저렴한 객실들이 있었다. 옥상에는 휴게소 구실을 하는 공간과 화장실과 샤워 실이 있었으며, 침대 10 개가 있는 합숙방도 있었다.

 

합숙방은 일부러 찾아 나서도 얻기 어려운 숙소였다. 남아 있는 침대 두 개가 모두 출입문 쪽에 있으며 문을 열 때마다 자동차 소음이 들어온다는 게 거슬렸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머지 8개의 침대를 차지한 사람들은 지프를 대절하여 갱톡 주변 관광을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술 생각이 났다. 뚱바를 파는 집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다니기는 귀찮았다. 그러나 곧 위스키라도 마셔 보는 걸로 마음을 바꾸고 거리로 나갔다. ‘위스키가 무슨 죄가 있나, 위스키는 위스키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잠시 걷자니 온갖 시킴 술을 다 진열해 놓은 듯한 가게가 나왔다.

 

가게에는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술병들이 저마다 고급품임을 과시하며 번쩍거리고 있었지만 디자인 자체가 모두 천박해 보였다. 어차피 맛만 볼 생각이었으므로 2홉들이 소주병보다 조금 작은 것을 집어 들었다가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여 제자리에 놓고 그 옆의 1리터짜리를 집어 들었다.

 

가게 주인은 좋은 선택이라는 듯이 양손 엄지를 쳐들어 보이고 나서 술병을 달라고 손을 벌렸다. 그냥 병 채로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병 채로 들고 나가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큼직한 종이봉투 속에 술병을 넣고 병 모가지 쪽을 둘둘 말아서 내밀었다.

 

문제라고 했는데 과연 무슨 문제를 말한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떨어뜨리거나 무언가에 부딪쳤을 때 깨지지 말라고 싸준 것이라면 종이봉투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를 말한 것인가? 혹시 남인도처럼 술병을 드러내놓고 소지하고 다니다가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주 정부가 면세 혜택까지 주면서 씨킴의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술을 싸게 팔고 있었지만 정부의 그런 정책에 반감을 가진 주민들도 갱톡에는 상당수 있었다. 그런 주민들은 술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비록 외국인 관광객일지라도 드러내놓고 경멸을 표시할 테고 그것은 자칫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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