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솔베이지의 노래 [ 60 ] 성소

김홍성
  • 입력 2020.08.21 05: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숲 속의 그 움막은 변소 맞았다. 변소지만 성소(聖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청결했다. 대나무로 만든 문 밑으로 흘러온 도랑물은 두 개의 길쭉하고 듬직한 발판용 바위 사이로 흘러서 대숲 사이로 빠르게 빠져 나갔다.

ⓒ김홍성

 

지프가 다시 쉰 곳은 오래된 휴게소가 있는 언덕 위였다. 희미한 안개 속으로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 보였다. 언덕에서 골짜기까지 이르는 비탈은 계단식 경작지였다. 드문드문 차밭도 보였는데 언젠가는 차밭이 경작지 모두를 점령할 것 같았다. 골짜기에 흐르는 계류에는 팔루트 언저리에서 발원한 실리콜라의 물도 섞여서 같이 흐를 것이다.

 

지프는 우리를 내려놓고 왼쪽 앞바퀴의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있었다. 승객들은 펑크가 난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내려서 보니 그 바퀴가 현저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운전사와 조수는 지프가 왼쪽으로 쏠리는 느낌을 통해 이미 바람이 빠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까지 간신히 끌고 왔음이 분명하다. 

 

몇 몇 남자들이 길을 건너가서 소변을 볼 때 조수에게 여성을 위한 화장실은 없겠냐고 물었다. 그는 한 번 흘낏 돌아보고는 휴게소 뒤로 돌아가 보라고 했다. 한산해서 망해 가는 느낌을 주는 허름한 휴게소 뒤로는 큰 도랑이 흘렀고, 큰 도랑에서 이어진 작은 도랑이 흘렀다. 작은 도랑이 흘러가는 곳은 대숲이었다. 대숲에는 헛간이 하나 있었다. 도랑은 그 헛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만일 휴게소 뒤에 변소가 있다면 바로 그 헛간이 변소여야 했다. 그러나 그 헛간은 방앗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확인해 볼 수밖에 없었다. 대숲 속의 그 움막은 변소 맞았다. 변소지만 성소(聖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청결했다. 대나무로 만든 문 밑으로 흘러온 도랑물은 두 개의 길쭉하고 듬직한 발판용 바위 사이로 흘러서 대숲 사이로 빠르게 빠져 나갔다.

 

스님은 골짜기를 향해 비탈이 시작되는 언덕에 혼자 서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자체로써 하나의 멋진 영상이었다. 카메라가 있으면 기록해 두고 싶을 정도였다. 옅은 안개는 골짜기에 잠겨 있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흐르고 있었으며 스님의 티베트 승려 복장은 거기에 딱 어울리면서 묘한 느낌을 풍겼다.

 

스님을 불러 휴게소 뒤에 대밭이 있고 대밭 속에 천연적인 수세식 해우소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성소 같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만행 중이기는 하지만 본업이 성직자인 스님에게 해우소 정도는 몰라도 성소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지나친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의 지프가 다시 시동을 걸었고 승객들이 차에 올랐다. 펑크 난 타이어가 바퀴 채로 우리 발밑에 놓여 있었다. 타이어는 요철이 심하게 마모되어 거의 평면이 된 부분도 있었다. 언제 또 펑크가 날지 몰라 불안했다. 게다가 우리 네 명은 발을 들어 바퀴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바퀴를 원래 자리에 놓지 않고 승객들의 발밑에 그냥 던져 놓은 것이 무성의한 처사라고 느꼈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감수했다. 승객들 모두가 갱톡에 무사히 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지프는 계곡을 향해 지그재그로 내려갔다. 군용 조립교일 거라고 생각되는 철교를 건널 때는 사타구니가 저릿저릿했다. 다시 지그재그로 계곡을 벗어나 전망이 확 트인 길로 올라선 후에는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