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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58 ] 다섯 살

김홍성
  • 입력 2020.08.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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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서른두 살이었다. 서른둘의 내가 그랬듯이 서른둘의 아버지도 두루 원만한 성격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때 서른 살이었는데 이미 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지프는 다시 안개 속을 달렸다. 올 때처럼 계속 아래를 향해 구불구불 내려갔는데 어느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한 후로는 위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아래도 위도 모두 안개가 가득 차 있어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래로 달릴 때는 브레이크가 터져서 곤두박질 칠까봐 걱정되더니 위로 오를 때는 엔진이 터질까봐 조마조마했다.

 

눈을 감았지만 귀는 열려 있어서 지프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엔진 소리, 바퀴 소리, 바람을 가르는 소리, 쿠션들이 삐꺽대는 소리, 창틀에서 유리가 바르르 떠는 소리, 다른 차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들었는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내 기억의 다섯 살 무렵을 더듬고 있었다.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서른두 살이었다. 서른둘의 내가 그랬듯이 서른둘의 아버지도 두루 원만한 성격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때 서른 살이었는데 이미 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내가 다섯 살, 아우는 세살, 그리고 한 번 울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젖먹이였던 여동생까지 세 아이(막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를 길렀던 어머니는 아버지 병원의 유일한 간호사였다. 물론 자격증은 없었다.

 

우리 형제는 개처럼 싸우면서 놀았다. 어지르고, 깨고, 쏟고, 놀리고, 도망가고, 쫒고, 숨고, 일러바치고, 매 맞고, 울고, 울다가 금방 헤헤 웃고는 다시 뛰어 놀았다. 우리는 길가는 처녀나 부인들의 하늘하늘한 주름치마를 들추고 그 속에 들어가는 놀이도 서슴지 않았다. 서로 질세라 경쟁적으로 치마를 들치고 그 안에 머리를 디밀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그러다 매를 맞아도 또 그런 놀이를 하였다.

 

다섯 살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소꿉놀이를 하며 같이 자란 이웃집 여자 애가 취학 적령기가 되어 학교에 가게 되자 나도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어머니가 학교에 통사정을 해서 입학 시켰다. 왼쪽 가슴에 손수건과 명찰을 달고, 흰 말이 그려진 가죽 책가방을 메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신주머니를 들고, 새댁이었던 숙모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면서 길가에 늘어선 점포들의 간판을 읽었다.

 

철원 상회, 연백 쌀집, 황해 여인숙, 기쁜 소리사, 제일 편물, 양지다방, 새나라 사진관, 평안 상회, 일동 철물, 낙동강, 평양냉면 ……. 등교 길에 숙모가 읽어 주는 대로 따라 하다가 어느덧 혼자 읽게 된 것이 나는 아주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다섯 살에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다섯 살에 동네 가게 간판을 읽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뜀박질도 잘했다. 아무리 뛰어도 숨찬 줄 몰랐고 땀이 나지 않았다. 다섯 살이었지만 키도 그리 작지 않아서 두어 살 씩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눕자마자 잠들었고, 잠을 잤는지도 모를 만큼 산뜻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 우리는 전쟁놀이를 즐겼다. 국도 건너편의 극장 동네 조무래기들이 한 패를 이루었고, 시장 동네의 조무래기들이 또 한 패를 이루었으며, 우리는 버스 종점 패거리였다. 아이들이 창이나 칼이라고 생각하고 휘두르는 무기는 남의 집 싸리울에서 뽑은 싸리가지나 빈 집 창틀에서 뜯어낸 얇은 무늬목이었다. 우리는 러닝셔츠나 스웨터를 벗어 머리에 두건이나 복면처럼 쓰고서 가느다란 무기를 휘두르며 와와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 때로는 쫓고 때로는 쫓기었다. 쫓기다 넘어져서 무르팍이 깨지기도 했다.

 

우리 동네 군사들이 극장 동네 군사들과 국도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 대장의 명령에 의해서 내가 극장 동네 대장에게 휴전을 제의하기 위해 국도를 건너갔다. 극장 동네 대장은 우리 대장보다 더 큰 아이였다. 그 아이는 몇 마디 들어보지도 않고 쪼그만 게 까분다며 발길질을 해댔다. 그 발길질을 피하느라고 국도를 건너뛰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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