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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56 ] 변사체

김홍성
  • 입력 2020.08.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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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쯤 된 소년이었다. 겨울이었고, 정월 대보름도 조금 지났을 무렵에 똥통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 되었다. 어쩌자고 아버지는 그 현장에도 나를 데려 갔는지 모르겠다.

ⓒ김홍성

 

안개를 뚫고 알리멘트 문 앞에 온 10인승 합승 지프는 실망스러웠다. 과연 갱톡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고물이었다. 타파도 2차 대전 때 지프가 올 줄은 몰랐다며 투덜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프의 조수는 우리 배낭을 받아 지붕에 싣고 밧줄로 칭칭 동였다. 우리 자리는 지프의 뒷문을 열고 들어가 마주 보고 앉는 자리였다. 스님 옆 자리는 중년의 따망 부인, 내 옆 자리는 유스호스텔에서 일하다가 칸첸중가로 일하러 간 락바 라마를 생각나게 하는 중년의 사내였다.

 

지프는 시가지를 벗어나 차밭 사이로 달렸다. 안개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차량들과 차밭 가장자리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눈을 감고, 눈을 쉬게 하는 게 나았다.

 

눈은 쉬지만 생각은 쉬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이 생각 저 생각 별의별 쓸데없는 생각이 튀어나와 앞 생각들을 밟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러다가 도달한 곳이 아버지 앞이었다. 아버지 앞에 누워있거나 매달려 있던 참혹한 사체들이었다.

 

아버지는 개업의였지만 공의(公醫) 역할도 했으므로 관할 지역 어디선가 변사체가 발견되면 검시를 해야 되는 반공무원이었다. 변사체를 검시하는 현장에 아버지는 왜 자식을 데리고 다녔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방학을 맞아 집에 온 어린 아들에게 변사체를 부검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일이 아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극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사체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진찰실에 있는 아버지의 책상 서랍 속에 있던 사진들을 통해서 봤다. 그 중에 한 사체는 두 팔과 머리가 떨어져 나간 사체였다. 그는 고물 장수였고, 미군 사격장에서 수집한 폭발물을 직접 분해하다가 폭발하는 바람에 처참한 변을 당했다는 사실을 사진들은 말해 주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체 검시 현장에 따라가서 맨 처음으로 목격한 사체는 인적이 드문 숲 속 공터의 잘 자란 참나무 가지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얼굴의 두 눈 부위와 코와 귀와 입술이 심하게 훼손된 이유는 육식을 하는 어떤 새들이 부리로 쫘서 먹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리고 목매단 군용통신선이 턱 밑에 바싹 걸린 것으로 봤을 때 타살을 자살로 위장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미군부대 인근의 한탄강에서 익사한 미군 위안부를 부검한 현장에도 갔었는데, 자세한 얘기는 차마 못하겠다. 벼 베러 갔다가 벼락 맞은 네 명 중에 유일하게 사망한 남자의 바지를 벗긴 적도 있다. 그리고도 몇 몇 현장들이 어슴푸레하게 기억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맨 마지막 현장이었다.

 

다섯 살 쯤 된 소년이었다. 겨울이었고, 정월 대보름도 조금 지났을 무렵에 똥통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 되었다. 어쩌자고 아버지는 그 현장에도 나를 데려 갔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그 집 주인의 외손자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린 아들을 친정에 맡겨 놓고 서울로 돈 벌러 가면서 설날 전에는 꼭 돌아오겠다고 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아이는 설 전날부터 날마다 집 앞에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정월 대보름까지 기다린 것은 확실하다. 그 날까지는 그 아이가 거기 서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왜 하필이면 똥통에 빠져서 죽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똥통이라는 데가 안에서 누는 구멍도 있지만 밖에서 똥바가지로 푸는 구멍도 있다는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이가 그 겨울에 집 앞에 나가 서서 엄마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자리는 겨우내 얼어있었던 똥 푸는 구멍 언저리였을 것이다. 똥 푸는 구멍과 그 언저리의 얼음 위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 아이가 빠져 죽은 똥통의 안팎을 세심하게 촬영했다. 아버지가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죽은 아이가 입었던 모자 달린 점퍼, 조그만 털신, 뭐라고 말하다 만 듯한 입모양, 그리고 그 모든 것에 큰 벌레처럼 붙어 있던 똥 덩어리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꿈에 나오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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