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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스포츠역사를 바꾼 작은 거인들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8.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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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m52cm의 여자 육상 최단신 스프린터 베로니카 켐벨(사진=위키백과 갈무리)

프로축구 대전 하나 시티즌 팀이 1부 리그 승격의 열쇠로 영입한 선수가 브라질 용병 에디뉴다. 그런데 에디뉴의 키가 화젯거리다. 겨우 초등학교 축구 선수 정도인 1m58cm로 역대 프로축구 최단인인 것은 물론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축구 등 4대 프로스포츠 선수 가운데 최단신이다.

에디뉴는 중앙미드필더로 스피드와 기술이 매우 뛰어나 라인브레이커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면 세계스포츠역사에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어떤 단신 선수들이 있었을까?

2004아테네올림픽이 종반전에 접어들던 8월26일 아테네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 모여있던 관중들은 자기 눈을 의심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 육상 200m에서 키 1m52cm의 최단신 스프린터 베로니카 켐벨이 22초05의 호 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것이다.

켐벨은 상상을 초월하는 빠른 피치로 짧은 다리를 극복해 냈다.

특히 곡선에서 커브 공략이 예술적이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녀를 통틀어 단거리 종목인 100, 200m에서 키가 겨우 1m50cm을 간신히 넘긴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육상에서 단거리는 키와 체중, 상체와 하체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 좋은 기록이 나온 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보통 여성 보다 한참이나 작은 1m50cm대의 5척 단구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이다.

한국 남자육상 100m 기록은 지난 김국영 선수가 세운 10초07이다.

그러나 전자 계시로 측정하기 전의 수동계시 기록은 키 1m68cm의 초 단신 고 정기선 씨가 지난 1968년 효창운동장에서 세운 10초3이 최고기록이다. 단신인 정기선 씨의 피치가 얼마나 빨랐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재미 동포 세미 리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키가 작은 남자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키 1m57cm의 세미 리는 1948년 런던올림픽 하이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출신 미국인으로 처음으로 미국에 금메달을 안긴 것이다.

세미 리는 4년 후에 열린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다. 1m60cm도 안 되는 선수가 절묘한 묘기를 보이자 당시 구소련 대표단이 비디오필름을 찍으며 그의 기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72년 뮌헨올림픽 구 소련의 여자체조 대표로 출전한 17세의 올가 코버트는 체조에서 처음 으로 '요정'이란 소리를 들었다.

키가 1m55cm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당연히 '꼬마요정'으로 불렸다.

올가 코버트는 체중도 38kg밖에 나가지 않아 완전히 인형 급(?)선수 였다. 올가 코버트는 뮌헨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따내 이름값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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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싱 빛낸 라이터돌

한국 올림픽 '복싱 출전 사'에는 2개의 라이터돌이 찬연히 빛난다.

88서울 올림픽 복싱 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광선과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고 지용주 선수다.

두 선수 모두 키가 1m60cm가 못된다. 키는 작지만 주먹이 매섭고 파이팅 넘치는 복싱으로 상대선수를 제압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맷집도 뛰어나 작지만 빛나는 라이터돌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여자선수로는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올림픽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한 여자배구의 레프트 공격수 조혜정이 돋보인다.

조혜정은 주 공격수인 레프트 공격수이면서도 키가 겨우 1m64cm밖에 안 된다. 월드클래스 김연경(1m92cm) 보다 무려 28cm나 작다.

조혜정은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이 작은 키를 엄청난 점프력으로 보상했다.

미국 남자 프로농구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2m02cm다.

지구상 남자들의 평균 신장 보다 최소한 30cm 가까이 크다. 그런데 키가 겨우 1m60cm 대였던 타이론 보그스는 전설적인 선수로 남아있다.

타이론 보그스는 1987년 웨이트포레스트 대학을 나와 그 해 1차 12순위로 워싱턴 블리츠로 드래프트 되었다. 88년에 샤롯 호네츠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지난 2001년 토론토 랩토스에서 10여 년 간의 선수생활을 끝으로 은퇴 할 때까지 889경기에 출전해서 경기당 8.8득점, 7.6 어시스트, 2.6리바운드 그리고 0.54개의 스틸을 기록했었다.

특히 2.6개의 리바운드를 했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이론상 타이론 보그스가 2m가 넘는 장신들 틈에서 리바운드를 할 확률은 거의 없지만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타이론 보그스는 지난 90년대 중반 농구스쿨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오기도 했었고, 1986년 스페인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미국의 포인트 가드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가이델의 키는 겨우 1m09cm

세계 스포츠역사상 가장 키가 작았던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가이델 선수다.

가이델은 키가 겨우 1m09cm였다. 그야말로 배트만한 선수였다. 그런데 이 선수가 메이저리그 공식기록에서 엄연히 볼넷 한 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951년 8월19일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카디널스의 전신)는 홈구장인 스포츠맨스 파크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경기를 가졌다. 이날은 연속경기가 열렸는데, 2번째 경기 1회말 세인트루이스 공격 때 붙박이 1번 타자 프랭크 소시어가 나올 줄 알았는데, 소시어 대신 배트보이 같은 조그만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관중들은 처음에는 배트보이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 꼬마 선수가 타석에서 배트를 처 들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보브 케인 투수의 공을 기다리는 게 아닌가. 키가 1m09cm밖에 안되는 데다 등 번호도 8분의1 이라고 새긴 가이델이 들어서자 보브 케인 투수는 갑자기 절반 정도로 줄어든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가이델은 스트레이트 볼넷을 얻었고, 여유 있게 1루로 걸어나간 뒤 대주자인 짐 델싱의 엉덩이를 툭 건드린 뒤 덕 아웃으로 들어갔다. 이날의 '깜짝 쇼'를 연출한 사람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주단 주 빌 빅 이었다. 현재 뉴욕 양키즈의 괴물 구단주 스타인 브레이너의 '1950년 대 판'이라고 할 수 있는 빌 빅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팀 창단 50주년을 기념해 아무도 몰래 가이델과 계약했다. 빌 빅은 가이델을 클럽 하우스로 데려올 때도 나무상자 안에 숨겨왔다. 메이저리그는 이후 이 같은 장난을 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 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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