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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50 ] 만행

김홍성
  • 입력 2020.08.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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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에 얽히지 않으면서 때로는 혼자 때로는 둘이 때로는 여럿이 두 달 동안 남인도를 돌아서 혼자 캘커타에 도착했다. 반바지에 티셔츠에 더벅머리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캘커타 하우라 역전에 나타난 배낭 여행자가 무상 스님이었다.

ⓒ김홍성

 

실내가 밝아졌다. 파상이 촉광이 높은 칸델라 석유등을 들고 들어와 카운터 탁자 위에 올렸던 것이다. 실내가 밝아지자 촛불을 끄는 손님들이 있었고 그대로 둔 손님들도 있었다. 일본 청년이 촛불을 꺼도 되겠냐고 영어로 물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로 심지를 잡아서 우리 탁자의 촛불을 껐다.

 

스님과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출가하신지는 몇 년이나 되셨는지요?”

출가 하고 십년이 안 된 스님들은 저처럼 이렇게 만행할 처지가 못 될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 년까지는 안 놔줘요. 절에서 이런저런 소임을 맡아 일하고 있어야 때가 되면 강원에도 보내 주고 선원에도 보내 주고 그럽니다. 그러다 보면 십 년이 금방 지나가죠. 저는 작년 10월에 도반들 셋과 성지 수행을 나왔던 겁니다.”

성지 수행? 성지 순례와 같은 말인가요?”

, 같은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부터 열반하신 쿠시나가르,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와 최초로 설법한 사르나트까지 4대 성지와 그 주변의 8대 성지에 속하는 지역들을 비구니 셋이 순례했던 거지요. 겨우 한 달 좀 넘는 기간에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될 뻔했던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어요. 십 년을 공부하고도 나라는 인간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어서 무참했고요. 그 때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아요. 천천히 할게요.”

 

나중에 시킴의 욕숨이나 조레탕에서 들을 수 있었던 스님의 성지 순례 얘기에 의하면 가장 어려웠던 것은 세 비구니의 화합이었다. 숙소, 음식, 교통편의 선택은 물론이고 머무느냐 떠나느냐에 대한 판단에 숱한 갈등이 따랐다. 결국 다수결로 정했는데 그럴 때마다 점점 서로가 불편해졌다. 처음에는 감수하고, 중간에는 인내하며 감추었으나 결국 짜증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폭염과 피로, 그리고 신경 쇠약으로 인해 점점 더 서로를 견디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스님 표현에 의하면 성질 못된 인간이 중 된다는 말이 있는데 결국 못 된 성질이 제각기 다 드러나더라고 했다. 큰 절의 강원에서 또 만나고 또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도반이 되었던 세 스님은 의기투합 된 상태로 떠났지만 목적한 순례가 끝난 후에는 서로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넌더리가 났다.

 

성지 수행은 결과적으로 인내를 시험하는 수행이었다고 스님은 말했다. 그토록 단단하게 뭉쳐져 있던 화합과 인내는 성지에서 깨지고 또 깨졌다. 성지 순례 도중에도 물론 참회하고 또 참회했지만 순례를 마친 후에는 서로 주고 서로 받은 상처를 각자 다스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한 스님은 사르나트에 남고, 한 스님은 룸비니로 가고, 한 스님은 이른바 만행(萬行)을 택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에 얽히지 않으면서 때로는 혼자 때로는 둘이 때로는 여럿이 두 달 동안 남인도를 돌아서 혼자 캘커타에 도착했다. 반바지에 티셔츠에 더벅머리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캘커타 하우라 역전에 나타난 배낭 여행자가 무상 스님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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