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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공간이 만든 공간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8.08 11:59
  • 수정 2020.08.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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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한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신간 '공간이 만든 공간' 서평

건축가가 자기 분야, 전공의 관점에서 생각이나 문화가 어떻게 변하고 진화했는가를 고찰한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각 분야의 전공자들은 먼저 자신의 영역에서 학계의 인정과 평가를 받으려고 할테다. 백면 서생이든 시장의 상인이든 각각의 좁은 분야로만 나누어져 서로 간에 소통이 없으며 자기가 하는 좁은 일 외에는 관심도 아는 바도 없다. 선율악기를 하는 사람은 화음과 성부의 구성을 알 수 있게 절대적으로 자기가 연주하는 곡의 피아노 반주부도 연구해야 하는데 그냥 주구장창 자신의 파트 테크닉만 연마한다. 오페라를 한다면서 자신이 부르는 아리아와 역할 말고는 전체 줄거리도 숙지하지 못한다. 회사의 영업부는 개발부의 일을 모르고 그냥 발품만 팔면서 물건 파는 데만 열중한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가 '점들을 연결하라'라고 열변을 토해겠는가! 단편적 지식의 양산이요 이에 바탕을 둔 전문지식을 산출해내는 일로 같은 분야에서 통용되며 논의되고 끝난다. 분야가 다른 전문가들에게조차 읽히지 않으니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도 않은 건 뻔한 일. 그런데 이런 일차적인 업에서 다음 단게로 상승하면 각 분야의 성과들을 폭넓게 사회적 현상과 요인, 문화에 담아내어 좀 더 넓은 범위의 지식을 전달해내려는 노력과 욕구가 생긴다. 일개 서생에서 오피니언 리더, 지식인이 돼가는 것이다.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은 건축을 중심으로 교류, 결합, 변종이 만들어 낸 문화의 진화를 이야기한다.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하고 사유하며 건축가는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정리해 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건축가 유현준의 눈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에서 출판한 '공간이 만든 공간'

이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하고 강연, 방송 등을 통해 건축과 대중들을 연결하는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유현준의 신간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강수량의 차이로 인한 농업 품종의 결정으로 문화 권역이 크게 벼농사 지역과 밀 농사 지역으로 나뉜다는 대목은 많은 걸 시사하는 전주곡이다. 인류가 태동했을 때 산천에 널려있는 열매를 따고 수렵으로 배고픔을 해결했다. 비가 오니 비를 피하기 위해 지붕을 만들고 추우니 벽으로 방을 만들고 동굴 대신 그 안에 살았다.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물이니 물가에 모여살게 되었다. 그래서 한자에서 고을을 뜻하는 주(州)는 물을 뜻하는 삼수변이 들어가 있다. 인구밀도가 높아져 사냥감과 열매로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으니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여름철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고 습한 날씨가 계속 되니 벼농사를 지었다.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저수지와 보를 만들고 물길을 조성했다. 그리고 벼와 밀이라는 품종의 차이는 재배와 경작의 차이로 이어졌고 성격과 삶의 양식까지 결정지어 버렸다. 비가 내린다. 이때 아니면 모내기를 못하니 온 마을 사람들이 황급히 뛰어나와 일렬로 서서 모를 심는다. 늦어도 된다가 아니라 이 시기를 놓치면 일 년 농사를 망치게 되고 그건 올겨울에 굶어죽는다는 걸 의미한다. 예외는 허용이 될 수 없다. 누구나 다 해야 한다. 마을 공동의 일이다. 밀 농사는 혼자 씨를 뿌린다. 강수량에 영향을 받지 않다. 밀 농사를 짓는 알프스 이북의 유럽은 집중호우가 드물다. 한꺼번에 많이 내리지 않고 매일 부슬부슬 내린다.

저자 유현준의 프로필, 사진 갈무리: tvN 신비한 잡학사전 방송 프로그램

자신이 살고 있는 지리와 기후에 따라 삶의 양식은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요즘 같은 역대급 장마에 첨단 IT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도 무력한데 과거의 우리 선조들은 어떠했겠는가! 연간 강수량이 1천 밀리미터 이상인 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과 사시사철 태양이 강하게 내리쬐고 모래가 날리는 곳에서 사는 사람의 복식과 거주지가 같을 수가 없다. 그러니 건축물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인간 지능의 집약체이다. 말과 같은 동물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던 지역민들이 삼각돛과 나침반의 개발로 더 먼 곳으로 항해가 가능해져 대륙 간, 다른 세계와 접촉하게 되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교류하고 대립하고 수탈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지리적인 발견이 없어지자 인간은 가상의 새로운 대륙을 만들었다. 현실 속 공간이 아닌 컴퓨터 네트워크 속 인터넷 신대륙이다. 인터넷 공간은 반도체와 케이블, 전기만 있으면 만들어지고 국토와 선거법, 국경이 없다. 살 집도 없이 고시원에 거주하면서 SNS에 돈을 모아 친구들과 하룻밤 지낸 고급 풀빌라의 사진을 올리며 그게 나의 정체성으포 포장된다. 사기꾼이 고급 자동차와 명품을 자랑하면 그게 그 사람의 진면목인지 알고 부러워하고 추종하며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거금까지 투자한다. 집이나 실재 자산보다 더욱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사진이요, 인터넷 가상공간이 실재보다 더 리얼한 삶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언제든지 접속 가능해진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까지 바꾸어 놓아 포스트 코로나 이후 인간은 디지털과 융합한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기계와의 공존인 유발 하라리의 표현을 빌어 호모 데우스(Homo deus)가 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서재에 꽂쳐 있는 유현준의 '공간이 만든 공간'
필자의 서재에 꽂쳐 있는 유현준의 '공간이 만든 공간'

인간은 항상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변모해왔다. 진화해왔다. 그걸 공간이라는 건축적인 관점에서 역사, 인문, 사회학적으로 풀어쓴 유현준의 시각이 신선하다. 건축이라는 프레임을 넘어 과학, 역사, 문화 등을 설득력 있는 분석과 다양한 근거를 들어가며 오간다. 이 책에 음악가인 내 음악적 통찰을 첨언하면 반도의 백성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안 먹힌다는 점이다. 삼면이 바다요, 육지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에 언덕과 골짜기의 나라, 가렴주구에 뜯기기만 하다가 나라도 잃고 타인에 의해 해방을 누리게 되어 외국에서 들여온 문물과 사상으로 북새통을 겪는 좁디좁은 땅덩어리, 형제끼리 서로 죽고 죽이다가 압축성장이라는 전례 미문의 번영을 이룬 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안되면 되게 하라', '적당히 없이 끝장을 본다'는 몸에 배어버렸다. 지리와 기후, 환경적 제약이 민족성을 형성해 버린 셈이다. 그래서 감정의 표출만 할 줄 아는 억세고 생활력이 강한 인동초 같은 사람들에게 추상적이고 내면적이면서 논리적인 클래식 음악을 들으라니? 우리들의 고조할아버지는 베토벤이 누군지도 모른 채 잘만 사셨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와 때려야 땔 수 없는 공간, 마이닝겐 궁전, 볼륨과 음향이 절대적으로 공간과 깊은 연관성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이런 플랫폼, 공간의 변화는 연고와 소속, 학연이 없는 나 같은 소장파 작곡가에겐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학벌, 사제, 선후배 등의 얽혀있는 완고한 클래식 음악 체제로는 절대 그들만의 완고한 카르텔에 편입될 수 없고 도리어 경쟁자, 위협자, 전복자 등으로 인식되어 배척받는다. 내 음악을 들어주고 연주하라고 간청하고 자천하는 게 아닌 매시업을 통한 꾸준한 콘텐츠의 제공과 확산은 기존의 한정된 인쇄매체와 학교라는 틀 안의 비자발적인 일정한 학생들의 범위를 뛰어넘어 인플루언서로 내 음악을 원하고 찾아주는 플로워들을 만나 새로운 영역과 나만의 영역, 플랫폼을 창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공간을 벗어날 때에야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일단 현재는 시끄러워 죽겠다. 작곡가에게 묵상이 필요한 고요의 공간은 절대적일 것인데 창문 밖 바로 코앞에서 유압식으로 쓰레기를 거두고 쏟아내는 소리와 30분 가까이 지속되는 설거지 폭포소리에 집중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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