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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47 ] 파업

김홍성
  • 입력 2020.08.10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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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에 머무는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시위로 인해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파업이나 계엄으로 발이 묶이는 것이 두려웠다. 서둘러 다르질링을 떠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만 했다.

ⓒ김홍성

 

정오 무렵에 스님의 시킴 입경 허가가 나왔다. 주정부 사무소가 있는 거리에는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플래카드를 쳐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그들의 요구는 다르질링을 웨스트벵갈 주정부로부터 독립한 자치단체로 승격시켜 달라는 것이었지 싶다. 이를 주도하는 정당은 공산당 계열이라고 들었다. 

 

20 년 전 그 때, 다르질링에 머무는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시위로 인해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파업이나 계엄으로 발이 묶이는 것이 두려웠다. 서둘러 다르질링을 떠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만 했다. 단순한 축제였던 홀리 축제마저 나에게는 불안했다. 피처럼 번지던 붉은 물감이 얼마나 섬뜩했던가.

 

알리멘트로 돌아와 시킴으로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타파는 한숨을 쉬었다.

이젠 늦었어. 오후부터는 파업이야. 버스도 지프도 못 다녀. 파업에 가담하지 않으면 시위대들이 차에 불을 지르거든."

진작 좀 알려주지 그랬어?”

시위나 하고 말거라고 생각했지. 바로 파업일 줄은 몰랐어.”

며칠이나 갈까?”

글쎄, 내일 오후에는 풀릴지도 몰라. 금년 첫 파업이라 오래 가지는 않을 거야.”

 

타파에 의하면 해마다 봄이면 파업을 했다. 첫 파업은 대표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한 운수업 분야의 파업이므로 하루 만에 끝났다. 그러나 협상이 결렬될 경우에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래도 사흘에 한 번 씩은 부분적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주변이 온통 차밭인 고지대에 위치한 다르질링의 지리적 특성상 파업이 길어지면 식량과 연료는 물론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해 민생과 경제가 심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파업은 양상이 다를 수도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웨스트벵갈 주정부가 다르질링을 독립된 자치주로 인정할 경우 주정부 수입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협상은 결렬될 것이며 투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어서 2차 파업은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 타파는 말했다.

 

페마네 뚱바집에서 먹으려던 점심을 알리멘트에서 대충 때웠다. 스님은 올라가서 좀 쉬겠다며 식탁을 떠났고 나는 남아서 알리멘트의 비망록을 가져다가 펼쳤다. 전날 저녁에 스님이 가지고 올라가 읽고 반납한 그 비망록에 기록된 시킴 입경 허가에 대한 오래 전 정보 밑에 새 정보를 가필해서 수정했다.

 

비망록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문자와 그림을 남겨 놓았다. 일본인들은 만화를 많이 그려 놓았다. 한글 메모는 많지 않았다. 그 중 한 메모는 내가 알리멘트에 오기 전에 잠시 묵었던 아일랜드 게스트 하우스를 심하게 비방하는 메모였다


 

만나는 모든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꼭 알려 주세요로 시작하는 그 메모는 아일랜드에서 먹거나 자지 말라고 선동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주인 부부는 사악한 사기꾼이라고도 썼다.

 

그들은 손님으로 혼자 도착한 한국인 여성 여행자에게 비즈니스 비자를 만들 수 있으니 동업을 하자고 꼬드겨서 게스트 하우스를 한 층 더 올려 이층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즈니스 비자를 만들어 주기는커녕 이 핑계 저 핑계로 돈만 요구하며 채근하고 박대하던 중에 비자 만료 기한이 다 된 한국인 여성은 다르질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메모는 다음과 같은 글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아일랜드 부부는 한국 공장에 불법 취업한 조카가 사고로 죽는 바람에 한국인에게 원한마저 품고 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에서 잤던 첫날밤 꿈에 목매단 여자 귀신을 보았습니다. 인도나 네팔에서 만나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이 사실을 꼭 알려 주세요. 19939, 푸른 하늘 올림.”

 

19939월에 남긴 메모라면 취생몽사 커플이 19943월에 처음으로 아일랜드에 도착하기 반 년 전이었다. 메모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시킴에서 돌아오면 다시 아일랜드에 가서 묵을 취생몽사 커플에게 메모 내용을 전달해 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시킴에서 취생몽사 커플을 만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왠지 꼭 만나게 될 것 같았다.

 

메모를 남긴 푸른 하늘은 피해 여성 당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모한 사실을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를 밝히지 않은 점, 피해 당사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저주를 자신 있게 퍼붓고 있는 점이 그런 추리를 유도하고 있었다. 목매단 여자 귀신을 봤다는 마지막 대목은 푸른 하늘이 아일랜드의 객실에서 목매달고 싶었다는 얘기로 읽혔다.

 

푸른 하늘은 아일랜드의 어느 방에서 잤을까? 혹시 내가 묵었던 그 방 아닐까? 방을 구하기 위해 아일랜드에 찾아 갔을 때 여주인이 방의 문을 열어 주기만 하고 옆으로 비켜섰던 모습이 떠올랐다. 들어가기 싫은 내색을 애써 감추는 표정이지 않았던가?

 

혹시 타파가 전해준 얘기를 푸른 하늘이 옮기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두 집은 구역이 다르고 거리가 멀었다. 또한 타파가 그 정도로 야비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타파가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벌써 3년 전 일 아닌가? 수많은 손님 중에서 그녀를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타파에게 그 메모의 내용을 알려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지만 참았다. 혹시라도 타파가 그 메모를 뜯어내거나 먹칠을 해 버리면 더 이상 어떤 한국인도 그 메모를 읽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메모를 남긴 푸른 하늘의 의도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또 다른 한글 메모는 오이김치 담그는 법이었다.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만난 어떤 스님에게 배운 방법인데 혼자 맛있게 먹기 미안해서 널리 소개하기로 했다고 썼다. 다음과 같다.

 

<오이김치 담그는 법>

 

1. 흔히 들고 다니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두어 개 모아 깨끗이 씻어 둔다.

2. 시장에서 껍질이 얇고 씨가 부드러운 오이를 여러 개 사다가 깨끗이 씻은 후 생수병 주둥이 속으로 들어갈 만한 크기로 자른다.

3. 적당량의 파나 마늘을 다져둔다.

4. 자른 오이를 생수병 용량의 2/3 정도만 넣은 후 약간 짭짤할 정도의 소금물을 오이 분량의 반쯤 붓고 적당량의 고춧가루 또는 고추 파 마늘을 넣은 후 잘 흔들어 준다.

5. 뚜껑을 느슨하게 닫은 후 익은 냄새가 날 때까지 그늘에 둔다.

6. 보통 24시간이면 오이김치 맛이 나지만 날씨가 더우면 더 빨리 익는다.

7. 먹을 때는 꺼내거나 덜기 쉽게 생수통의 윗부분을 자른다.

8. 생수병 1개 분량이면 둘이 한 끼 잘 먹는다.

 

이렇듯 자상하게 오이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준 사람은 시식해 본 후 좋다고 생각되면 널리 알려 주길 바란다.’는 부탁도 써넣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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