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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284] Critique: (사)서울윈드오케스트라 제105회 정기연주회, 동서양의 만남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7.30 09:03
  • 수정 2020.07.3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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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오묘한 조화(Recondita armonia)와 대립(concertare).
관악 사운드의 진수를 들려준 서울윈드오케스트라

분명히 5분 전에 입장했으니 아직 시작했을 리 만무하다. 단원들이 착석하지 않은 빈 의자가 널려 있는 무대 앞에서 초로의 신사가 마이크를 잡고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오늘 해설자로 나선 (사)서울윈드오케스트라의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성굉모 공학박사가 단원 출연 전 1부의 곡 설명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건 그대로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 때도 적용되어 본 공연에 들어가 단원들 앉혀놓고 마이크를 잡는 게 아닌 사전 설명 방식을 띄었다. 겸손이 느껴졌다. 음악이 우선이라는 확신이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관객들이 음악에 몰입하길 바라고 오늘의 주인공인 서울윈드오케스트라가 부각되길 바라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말로 소중한 음악 감상의 시간을 1분 1초라도 낭비시키고 싶지 않다는 품격이 느껴졌다.

브라보! 서울윈드오케스트라!

목관 악기로 열리는 박성균의 <정선아리랑 환상곡>의 앞 부분은 국적불명의 신파조의 트로트만 어딜 가나 들려오는 요즘 세태에 듣게 되는 진정한 한국적 가락이었다. 끊길 듯 끊기지 않고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그 가락말이다. 삶을 달래고 애간장을 녹이는 선율이 애처롭다. 잉태되고 세상에 나와 좁은 땅덩어리에서 숱한 위기를 겪고 부대끼지만 어떻게라도 이겨내고 생명을 이어가는 선율의 장대함이 뭉클하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훌훌 털어버리는 듯 계속 흘러간다. 막고 싶지 않다. 엮음 아라리의 긴 아리랑 가락의 모티브들이 파생되어 각 부분 간의 명확한 구분으로 갈라진다. 서양 타악기들이 가미되었는데 박이나 장구 등의 우리 악기가 대신 삽입되었으면 어땠을까? 우리 정서에 흠뻑 빠져 시간과 공간을 잊고 무아에 빠지고 싶었는데 뒷부분은 제목 그대로 서양의 환상곡(Fantasia)으로 흘러갔다. 더 듣고 싶었다. 5분 아니 10분이라도 우리 정서의 흐름에 그저 빠져들고 싶어 마침의 화음은 아쉽기만 했다. 부풀어 오른 감정은 다음 곡인 라이네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제되었다.

팝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미국의 라이네케(Steven Reineke)는 이름(?)처럼 관악작곡의 후예답다. 굉장히 능숙하고 노련하며 관악 사운드라고 하면 연상되는 전형적인 크고 거대하며 스펙터클한 소리를 어떻게 하면 만들 줄 아는 작곡가였다. 미국 작곡가라는 자긍심과 색채가 너무 강했다. 라이네케는 전형적인 위촉, 전업작곡가이다. 목적과 주문자의 욕구에 충실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좋아하고 찾게 하는지 알고 있다. 작품 자체에 한국적 정서와 얼을 심어 넣기 위해 고뇌하는 두 한국 작곡가와는 접근법이 다르다. 음악회 타이틀이 동서양의 만남이지만 전체적으로 동서양의 대립, 충돌과 같았다. 라이네케의 <필라투스, 용들의 산>은 관악의 정형이다. 그래서 누구나 듣고 좋아하고 대중적인 관악 그리고 청소년이나 밴드에서의 연주 목적을 충족시켜준다. 역시나 이 곡도 알토 색소폰으로 시작하여 플루트가 이어받으면서 둘이서 대화를 하다가 오보에로 이어지는 신비롭고 동양적인 도입부가 매력적이다. 다른 부분은 너무 '프로페셔널'하고 너무 이디엄적이다.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사)서울윈드오케스트라의 이사장인 성굉모 공학박사가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홀로 해설을 하고 있다. 

서순정의 <가야금과 윈드오케스트를 위한 풍류>는 프리뷰에서 잘못 짚었다. 제목만 보고 국어사전의 '속된 일을 떠나 멋스럽게 노는 일', 즉 조선시대 선비의 무릉도원을 연상했는데 이 곡은 그런 개념보단 '여러 악기가 어울려 연주하는 음악'을 뜻하는 국악 양식에서 제목을 차용한 것이었다. 가야금과 윈드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이었다. 가야금을 연주한 이수은은 초연곡을 암보로 연주하는 놀라운 집중력과 연습량 그리고 정성과 주인의식을 증명하며 마치 오랜 기간 자신의 손에 숙달된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독주자로서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그 자체만으로도 곡의 완성도를 높이고 극찬을 해도 당연하리. 연주자가 공개된 무대에 올라와서는 암보로 연주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관객과 곡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곡을 체화했다는 최소한의 증표다. 박성균의 <정선아리랑>이 이질감에서 오는 긴장의 도발적인 냉정함에 도달한다면 서순정의 <풍류>는 오묘한 조화(recondita armonia)였다.

어딜가나 단원들 챙기기 바쁜 지휘자들, 포디엄 위에 서서 관객들의 갈채와 환호를 받으면서 군림하는 지휘자 리더쉽의 시대는 이제 지나간듯....

라이네케를 선택한 건 서울윈드오케스트라의 응집력과 기량을 마음껏 표출하며 관악이란 이런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일 테다. 코로나19 여파로 한차례 미뤄져서 더욱더 연습 시간이 많아서 그랬는지 김응두가 이끄는 서울윈드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했다. 라이네케 교향곡 1번 4악장에서의 트럼펫 솔로는 청아했으며 시작 부분의 호른의 메아리는 곡이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스토리 상의 전개를 효과적으로 이어줬다. 3악장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성굉모 박사의 강조처럼 '이목'이 집중되는 트럼펫 주자들의 와인글라스 음색일테다. 와인을 들고 소리의 잔향이 퍼질려는 찰나, 너무나 시의적절하게 객석에서 코 푸는 소리로 감흥을 깨트렸다. 마치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감동의 씬에 영화의 전개와 내용과는 무관한 방해에 좌절과 눈에서 레이저가 안 나갈 수가 없었다. 꼭 음악만 이렇다. 야구장에 가서 경기에 집중하고 홈런을 치는 순간 핸드폰 보거나 딴청 부리지 않고 환호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숨소리도 안 내면서 집중할 텐데... 음악적 스토리와 전개를 따라간다며 어쩔 수없이 참을 수 없이 나올 수 없는 재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순간에 코는 안 풀건데.....성굉모 박사의 당부가 적중됐다. 이목이 집중되긴했다. 심포니 1번 2악장에서 클라리넷 독주를 통해 아는 멜로디가 나온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3막 미카엘라의 아리아다. 그리고 라이네케는 2악장을 '야상곡'이라고 이름 붙였다. 교향곡 1번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부터 100년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윈드앙상블의 100년과 코로나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다. 중후하거나 심각하지 않다. 대중들은 신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게 또 관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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