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였던 여자는 ‘밥 먹고 똥만 싸냐’고 소리 지르며 남편이 들어앉아 있는 화장실 문을 미친 듯이 걷어찼었다. ‘남자 돈 없는 놈은 여자 못 생긴 것과 똑같다’라고도 했었다.
약을 삼키고 나서 그가 말했다.
“참, 네 이름이 뭐였지? 나이와 직업도 말해 줬던가?”
“내 이름은 김이다. 나이와 직업은 네가 알아 맞혀 봐라.”
“김, 이제 기억난다. 김이었지. 그리고 ...... 나이는...... 글쎄 ....... 동양인 나이는 알기가 쉽지 않다.”
미쉘은 새삼스럽게 나의 이모저모를 뜯어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뭐라고 말해야 둘 다 즐거울 것인가를 궁리해냈다.
“직업군인이었어. 1971년에는 베트남에 있었지.”
“1971년에 베트남이라……. 그럼 네가 몇 살이란 말이냐?”
“1950년 생. 올해 마흔 다섯 살. 믿어지냐?”
“맙소사.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한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사람을 죽여 봤냐? 베트남에서?”
“내가 쏜 총을 맞고 죽은 사람은 없었을 거다. 나는 늘 하늘에다 대고 쐈으니까. 망할 놈의 하나님 궁둥이를 향해서 쐈으니까.”
“흐흐흐 잘 했다. 멋지다. 우리는 잘 어울린다. 김! 이제는 이름을 안 잊을게.”
주워들은 얘기를 얼른 가져다 붙이는 내 능란한 구라에 미쉘은 매우 만족했다. 미쉘 또한 능란한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네 나이 때 나는 캘커타에서 멋진 사업을 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줄줄 따랐지. 내 오토바이 꽁무니에는 날마다 다른 여자들이 매달려 다녔어. 그 때는 오리지널 잉글랜드 위스키 아니면 안 마셨지.”
“전에는 교사라고 하지 않았나?”
“그 사업이 완전히 망했거든. 그래서 할 수 없이 교사 노릇을 시작한 거야.”
“어떤 학교냐?”
“기숙사 시설이 있는 학교. 9학년까지 있어. 내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야. 형이 교장이고 나는 교감인 셈이지.”
“교감? 교감이 이런 데서 싸구려 독주를 혼자 마시고 있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렇겠지. 하지만 좀 더 들어봐. 학교는 지난 3년 간 폐교 됐었어. 그러다가 닷새 전에 다시 열었는데 어제까지 학생이 모두 몇 명 왔는지 알아? 겨우 두 명이 왔어. 10년 전 내가 캘커타에서 돌아왔을 때는 120명이나 있었는데 말이지……. 너에게 내 학교를 보여주고 싶어. 원한다면 지금 가도 좋아. 나는 학교에서 산다.”
“그 무서운 와이프도 같이?”
“그래, 하지만 오늘 아침에 친정으로 갔다. 며칠 있어야 올 꺼다.”
“형은?”
“형은 형네 집에 있어. 형네 집이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집이지. 방이 모두 스무 개나 되는 진짜 집이지. 헌데 내게는 방을 안 줘. 난 학교를 지키라는 거야.”
“학교에 술 있냐?”
“글쎄……. 아니, 없어. 어제 끝냈어.”
“어쨌든 일어나자. 네 학교에 가보자.”
미쉘은 머무적거렸다. 아직 날이 훤하다고 했다. 교감 선생 신분이라 대낮에 술 취해서 거리에 나서는 것은 좀 곤란하다고 했다. 형에게 알려지면 따귀를 맞는다면서 어두워지면 나가자고 했다.
그는 고기만두와 비닐 팩 소주를 두 개 더 시켰다. 주인 여자는 더 이상 누가 돈을 낼 것인지 묻지 않았다. 아까처럼 송곳니로 비닐 팩을 찢었다. 제법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 취하는 게 아니라 각성 상태로 가는 듯했다.
“미쉘, 하나 더 물어보자. 와이프가 너에게 의자를 던진 이유는 뭐냐?”
“나는 다만 밥 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망할 년이 갑자기 의자를 집어 던졌다. 그러고 나서 뭐라고 소리 질렀는지 아냐?”
“뭐라고 했는데?”
“나는 네 하인이 아니다 ....였어. 그리고는 부엌 물건들을 다 집어 던지고 넘어트리더니 식칼을 들었어.”
“그래서?”
“도망쳤지 뭐. 발작하면 우리형도 못 말려.”
“......”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끈질기지 못하고, 타개하기 보다는 도피하는 성격. 술과 자학으로 빠져드는 주정뱅이 남편을 둔 아내들은 결국 악만 남는 것인가. 내 아내였던 여자는 ‘밥 먹고 똥만 싸냐’고 소리 지르며 남편이 앉아 있는 화장실 문을 미친 듯이 걷어찼었다. ‘남자 돈 없는 놈은 여자 못 생긴 것과 똑같다’라고도 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