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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34 ] 와이프

김홍성
  • 입력 2020.07.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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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였던 여자는 ‘밥 먹고 똥만 싸냐’고 소리 지르며 남편이 들어앉아 있는 화장실 문을 미친 듯이 걷어찼었다. ‘남자 돈 없는 놈은 여자 못 생긴 것과 똑같다’라고도 했었다.

 

 

약을 삼키고 나서 그가 말했다.

, 네 이름이 뭐였지? 나이와 직업도 말해 줬던가?”

내 이름은 김이다. 나이와 직업은 네가 알아 맞혀 봐라.”

, 이제 기억난다. 김이었지. 그리고 ...... 나이는...... 글쎄 ....... 동양인 나이는 알기가 쉽지 않다.”

 

미쉘은 새삼스럽게 나의 이모저모를 뜯어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뭐라고 말해야 둘 다 즐거울 것인가를 궁리해냈다.

직업군인이었어. 1971년에는 베트남에 있었지.”

“1971년에 베트남이라……. 그럼 네가 몇 살이란 말이냐?”

“1950년 생. 올해 마흔 다섯 살. 믿어지냐?”

맙소사.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한테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사람을 죽여 봤냐? 베트남에서?”

내가 쏜 총을 맞고 죽은 사람은 없었을 거다. 나는 늘 하늘에다 대고 쐈으니까. 망할 놈의 하나님 궁둥이를 향해서 쐈으니까.”

흐흐흐 잘 했다. 멋지다. 우리는 잘 어울린다. ! 이제는 이름을 안 잊을게.”

 

주워들은 얘기를 얼른 가져다 붙이는 내 능란한 구라에 미쉘은 매우 만족했다. 미쉘 또한 능란한 이야기꾼이었다.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네 나이 때 나는 캘커타에서 멋진 사업을 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줄줄 따랐지. 내 오토바이 꽁무니에는 날마다 다른 여자들이 매달려 다녔어. 그 때는 오리지널 잉글랜드 위스키 아니면 안 마셨지.”

전에는 교사라고 하지 않았나?”

그 사업이 완전히 망했거든. 그래서 할 수 없이 교사 노릇을 시작한 거야.”

어떤 학교냐?”

기숙사 시설이 있는 학교. 9학년까지 있어. 내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야. 형이 교장이고 나는 교감인 셈이지.”

교감? 교감이 이런 데서 싸구려 독주를 혼자 마시고 있었다니 믿을 수 없다.”

그렇겠지. 하지만 좀 더 들어봐. 학교는 지난 3년 간 폐교 됐었어. 그러다가 닷새 전에 다시 열었는데 어제까지 학생이 모두 몇 명 왔는지 알아? 겨우 두 명이 왔어. 10년 전 내가 캘커타에서 돌아왔을 때는 120명이나 있었는데 말이지……. 너에게 내 학교를 보여주고 싶어. 원한다면 지금 가도 좋아. 나는 학교에서 산다.”

그 무서운 와이프도 같이?”

그래, 하지만 오늘 아침에 친정으로 갔다. 며칠 있어야 올 꺼다.”

형은?”

형은 형네 집에 있어. 형네 집이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집이지. 방이 모두 스무 개나 되는 진짜 집이지. 헌데 내게는 방을 안 줘. 난 학교를 지키라는 거야.”

학교에 술 있냐?”

글쎄……. 아니, 없어. 어제 끝냈어.”

어쨌든 일어나자. 네 학교에 가보자.”

 

미쉘은 머무적거렸다. 아직 날이 훤하다고 했다. 교감 선생 신분이라 대낮에 술 취해서 거리에 나서는 것은 좀 곤란하다고 했다. 형에게 알려지면 따귀를 맞는다면서 어두워지면 나가자고 했다.

그는 고기만두와 비닐 팩 소주를 두 개 더 시켰다. 주인 여자는 더 이상 누가 돈을 낼 것인지 묻지 않았다. 아까처럼 송곳니로 비닐 팩을 찢었다. 제법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 취하는 게 아니라 각성 상태로 가는 듯했다.

 

미쉘, 하나 더 물어보자. 와이프가 너에게 의자를 던진 이유는 뭐냐?”

나는 다만 밥 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망할 년이 갑자기 의자를 집어 던졌다. 그러고 나서 뭐라고 소리 질렀는지 아냐?”

뭐라고 했는데?”

나는 네 하인이 아니다 ....였어. 그리고는 부엌 물건들을 다 집어 던지고 넘어트리더니 식칼을 들었어.”

그래서?”

도망쳤지 뭐. 발작하면 우리형도 못 말려.”

“......”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끈질기지 못하고, 타개하기 보다는 도피하는 성격. 술과 자학으로 빠져드는 주정뱅이 남편을 둔 아내들은 결국 악만 남는 것인가. 내 아내였던 여자는 밥 먹고 똥만 싸냐고 소리 지르며 남편이 앉아 있는 화장실 문을 미친 듯이 걷어찼었다. ‘남자 돈 없는 놈은 여자 못 생긴 것과 똑같다라고도 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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