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솔베이지의 노래 [ 32 ] 카닥

김홍성
  • 입력 2020.07.23 22: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마는 합장을 하고 서있는 두 사람의 목에 차례차례 그 천을 걸어 주었다. 그 천은 히말라야 불교도들이 카닥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었다. 나는 목에 카닥을 두른 두 사람과 골목 끝에서 악수를 나누었다.

넋 놓고 걸었나 보았다. 눈앞에 페마가 서서 웃고 있었다. 페마는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친구들이 가게에 있다’고 알려 주고 나서 길 아래로 내려갔다. 길 위로 멀리 페마네 뚱바집이 보였다. 내 발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마네 가게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호가니 병을 깨트렸던 소년이 페마처럼 ‘안녕하세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불과 며칠 동안 들었던 우리말 인사를 억양까지 비슷하게 익혔다. 이미 와 있던 취생도 몽사도 번갈아 ‘안녕하세요’를 했다. 그 두 사람이 소년에게 ‘안녕하세요’라는 한국 문장의 발음과 억양을 가르쳤음이 분명했다. 소년의 이름은 파상 셰르파라고 했다.

 

몽사가 말했다. 추억 여행을 좀 더 하기로 했다고. 무슨 말인가 했더니 네팔 쪽에서 칸첸중가 베이스캠프로 접근하려던 계획을 잠시 보류하고 시킴으로 간다고 했다. 트레킹은 그만 두고 욕숨의 산기슭과 조레탕의 온천 등지에서 열흘 쯤 푹 쉴 생각이라고 했다.

 

침낭을 찾으면 나도 바로 배낭을 꾸릴 예정이라고 했더니 자기들은 벌써 꾸려 두었으며, 페마가 돌아오면 바로 버스터미널로 간다고 했다. 구석에 나란히 놓인 커다란 배낭 두 개와 배낭 위에 올려져있는 카메라 가방과 보조 가방이 보였다.

 

취생은 나에게 안색이 안 좋다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별일 없었다고 대답했다. 몽사는 마호가니 병을 기울여 내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주었다. 작별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몽사가 나더러 빨대로 통바를 휘젓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얼른 손을 내리고 씨익 웃었다.

 

페마가 돌아오자 몽사와 취생은 배낭을 짊어졌다. 페마의 손에는 길고 흰 스카프 같은 천이 들려 있었다. 페마는 바로 그 천을 가지러 집에 갔던 것을 몽사와 취생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페마는 합장을 하고 서있는 두 사람의 목에 차례차례 그 천을 걸어 주었다. 그 천은 히말라야 불교도들이 카닥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었다. 나는 목에 카닥을 두른 두 사람과 골목 끝에서 악수를 나누었다. 시킴에서 또 만나자고 말했지만 그건 약속이 아니었다. 만나면 좋고, 못 만나도 그만인 여행자들 아닌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자니 왠지 쓸쓸했다.

독한 위스키가 마시고 싶었다. 작은 것을 한 병 사들고 페마네로 가서 고기만두를 주문했다. 국물 한 그릇이 먼저 나왔다. 만두에 쓸 고기를 발라내고 남은 뼈를 빠개서 푹 삶았다고 했던가? 만두가 나오기 전에 이미 병을 비워버렸으므로 파상에게 같은 것으로 한 병 더 사다 달라고 했다. 파상은 페마를 쳐다보았다. 페마는 웃으면서 허락했다.

 

"어쩌면 저도 내일 씨킴의 갱톡으로 떠날지도 모릅니다."라고 페마에게 말했다. 페마는 자기네 조상도 씨킴의 욕숨에서 림빅으로 왔고 자기는 결혼할 때까지 림빅에서 컸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림빅? 그럼 셰르파 호텔을 아세요?" 
"알다마다요. 거기가 친정입니다." 
"그럼 카지 라마와 디키 도마가 동생인가요? 실리콜라 산장의 펨 도마는 사촌 동생이구요?" 
"맞아요. 거기를 다 들려서 왔군요. 방금 떠난 두 사람도 제 친정에 들렀다 왔어요. 2년 전에도 그랬고요." 
"아, 그랬군요……."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