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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21 ] 나니 디디

김홍성
  • 입력 2020.07.13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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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디디는 셀파나 티베탄 여성의 복장인 바쿠를 입고 다녔지만 여권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나니 디디는 대체로 말없이 뜨개질만 하고 있었으므로 긴 대화는 시도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마을 어귀가 보였다. 운무 속에서 나타난 마을은 이승 같기도 하고 저승 같기도 했다. 드문드문 사람들도 나타났다. 쟁기 비슷한 농기구를 수선하는 젊은 남자, 자느라고 목이 꺾인 애를 업고서 뜨개질 하는 여자, 기도 바퀴를 돌리며 어딘가로 열심히 걸어가는 노인. 제각기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그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불쑥 나타난 털북숭이 개조차 나그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혹시 유계에 발을 딛지 않았나 싶어서 오소소 소름이 돋을 때,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과연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가 타시델레인사를 하기 전에 길 옆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골목 어귀에 이르러 골목 안을 살폈다. 방금 골목으로 들어간 사람은 운무 속으로 사라졌고 두 개의 커다란 룽따가 희미하게 보였다.

 

마당 가운데 몇 개의 룽따를 높다랗게 세운 그 집은 주막집이었다. 마당 앞에 자그맣게 세운 입간판에는 셀파 호텔이라고 적혀 있었다. 배낭을 메고 마당에서 서성이는 나그네를 보고 안내하러 나온 다소곳한 처녀는 어딘지 모르게 펨 도마를 닮았다. 나이도 비슷해 보였다. 하루 쉴 수 있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간판을 가리켰다. 멋 부린 필기체로 쓴 welcome 이라는 영문자가 그제야 눈에 들어 왔다.

 

그녀가 안내한 숙소는 마당 건너편의 아담한 별채였다. 창으로 꽃밭이 내다보이는 마루방이었다. 소박한 나무 침대가 마음에 들었다. 짐을 풀고 속옷을 마른 것으로 갈아입고 침낭 속에 들어갔다. 한숨 자고 나니 몸이 덜 무거웠다. 뭔가 먹으려고 식당으로 건너갔다.

 

방을 안내해 준 처녀가 물걸레로 탁자를 닦고 있었다. 이름을 물으니 디키 도마라고 짧게 말했다. 실리콜라 산장의 펨 도마와 람만의 룸부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가까운 친척이라고 하며 반가운 내색을 했다. 디키 도마는 룸부네 집의 까말라도 알고 있었다. 까말라는 지난겨울에 디키 도마네 집에 와 있었는데 학교에 갈 때가 되어서 삼촌인 룸부가 데려갔다고 했다.

 

까말라가 입은 스웨터를 짠 여행자를 아는 지도 물었다. 디키 도마는 나니 디디!’ 하면서 반가워했다. ‘나니 디디는 디키 도마가 지어 준 이름이라고 했다. ‘나니는 티베트 불교에서 여성 수행자를 일컫는 아니(ani)에서 딴 것이고, ‘디디는 언니 또는 누나라는 네팔 말이라고 했다. 본명을 듣기는 했지만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펨 도마와 함께 다르질링에서 기숙사 학교를 다녔다는 디키 도마의 영어도 펨 도마 못지않았다. 아니 더 잘 하는 듯 했다. 상대가 전혀 모르는 영어 단어를 말했다고 생각되면 쉬운 영어로 풀어서 말해 주었다. 다소곳하지만 자상한 처녀 디키 도마를 통해 알게 된 나니 디디는 좀 특별한 여행자였다.

 

나니 디디는 지난겨울에 셀파 호텔에 여러 번 왔었다.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오면 또 며칠씩 묵었다. 어떤 때는 툭바(밀가루 국수의 일종)만 먹고 가기도 했다. 나니 디디는 셀파나 티베탄 여성의 복장인 바쿠를 입고 다녔지만 여권을 가진 외국인이었다. 나니 디디는 대체로 말없이 뜨개질만 하고 있었으므로 긴 대화는 시도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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