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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의 재포장 방지 vs 시장의 묶음할인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6.20 13:23
  • 수정 2020.06.2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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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1개 가격은 1600원이지만 6개짜리 묶음 상품은 7280원에 팔린다. 묶음 상품의 개당 가격이 낱개 상품보다 25% 정도 싸다. 허나 다음달 1일부터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에서 이런 묶음 할인상품이 사라질 전망이다. 재포장 할인 판매를 금지하는 속칭 ‘재포장금지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묶음판매 라면, 사진제공: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묶음판매 라면, 사진제공: 연합뉴스

환경부는 지난 18일 유통과 식품업계 등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하위 법령인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재포장금지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묶음 판매는 가능하지만 묶음 ‘할인 판매’는 금지된다. 2000원짜리 제품 2개를 묶어 4000원에 판매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2000원짜리 2개를 묶어 3900원에 판매하는 건 위법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상품을 한 박스에 모아 파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롯데제과가 자사 과자 제품 10개를 모아 한 박스에 넣어 파는 ‘과자 종합선물세트’도 팔 수 없게 된다. 환경부 측은 “식품업계에서 묶음 할인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를 묶을 때 사용하는 접착제와 플라스틱 또는 포장박스가 과도하게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와 학계는 수십 년간 이어온 마케팅과 가격경쟁 체제를 무너뜨려 결국 소비자 편익을 떨어뜨리는 규제라고 해석하고 있다. 환경 유해성에 관한 근거나 영향평가 없이 과도하게 시장가격에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많이 샀을 때 깎아주는 건 소비자 후생이고, 가격 인센티브를 통해 소비를 증대하는 정상적인 경제 행위”라며 “선진국 기업들도 흔히 쓰는 묶음 할인 판매를 포장으로 규제하는 것은 세계 최초”라고 지적했다.

유통업체 간 역차별 문제도 있다. 환경부는 트레이더스 등 대규모로 판매하는 창고형 할인마트에는 묶음 할인 판매를 허용해줬다. 온라인쇼핑 업체에 대해서도 판단을 보류했다. 과대 포장으로 많은 문제가 제기됐던 쿠팡, 마켓컬리, 쓱닷컴 등 온라인 유통업체의 재포장과 관련해선 아직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자동차 한 대를 제조할 때 비용이 1000만원이라면 두 대를 생산할 때 비용은 2000만원이 아니다. 재료비와 전력, 인건비는 더 들지만 공장 생산시설 등 비용은 그대로기 때문에 두 대를 제조할 때는 2000만원보다 훨씬 덜 든다. 많이 만들어 많이 팔수록 하나를 더 제조할 때 드는 ‘평균비용(average cost)’이 줄어든다는 경제학의 원리다. 식품·화장품 등 소비재업계는 이 원리를 수십 년간 가장 많이 적용해온 분야다. 묶음 할인 판매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보편적인 마케팅 수단이었다. 삼양라면은 5개+1개를 묶어 2980원에 판다. 1개를 그냥 샀을 때 가격(596원)보다 16.8% 싸게 묶어 판다. 햇반은 1개를 살 때보다 8개 묶음 제품을 살 때 29.1% 싸다. 만두는 두 봉지를 묶어 40~50% 더 싸게 팔아왔다.

이 같은 묶음 판매는 소비자 심리를 겨냥한 과학적 마케팅 중 하나다. 마케팅 분야에서 ‘묶음 제품’에 관한 연구는 1979년 시작됐다. 영미권에서는 ‘번들(bundle)’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소비자가 여러 묶음 제품 중 복잡한 인지 과정을 거쳐 가장 합리적 대안을 선택하는 것은 소비 행위의 기본이다. 고전적 경제학 이론에서는 소비자가 여러 대안 중 가장 효용이 높은 대안을 선택할 때 가장 큰 만족과 성취를 느낀다고 본다. “소비자는 구색이 크고 다양해질수록 선호에 맞는 옵션을 찾아 소비하고, 그 가운데 만족감이 증가한다”는 것은 여러 행동경제학 분야 논문을 통해 이미 검증됐다.

마트진열대, 사진 제공: 연합뉴스

요약하자만 공장에서 아예 4+1이나 5+1로 포장되어서 나오거나 편의점 등에서 1+1 또는 2+1 행사시는 허용하나 마트 등에서 박스 테이프 등으로 붙여서 1+1 행사가 아닌 2개 동시에 구매하게 하고 할인을 해주는 건 불가능이요, 대신 붙여놓지 않고 2개 이상 사거나 얼마 이상 사면 10%할인을 해준다는 건데 환경부의 취지는 추가적으로 포장하지 말라는 뜻 같다. 이런 규제보다는 과대포장 문제가 더 심각해 보인다. 비스켓이나 과자 하나 사면 그 안에 박스, 플라스틱 고정대, 비닐 봉지 등 쓰레기가 몇 배로 나온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다반사다.

환경부는 묶음포장 금지가 묶음할인 금지라는 지적이 일자 지난 19일 해명자료를 통해 “늘어나는 일회용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1+1, 2+1 등 끼워팔기 판촉을 하면서 불필요하게 다시 포장하는 행위를 금지하려는 것으로 가격 할인 규제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창고형 할인마트의 묶음할인 판매는 예외로 두었고 온라인 유통업체의 재포장과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히지 않아 유통업체들로부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통업계 등과 계속 소통하면서 소비자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아울러 시행 초기 시장이 혼란스러울 수 있음을 감안해 일정기간 계도기간을 갖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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