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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26] 선거 로고송의 미학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4.10 08:58
  • 수정 2020.04.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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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기업이나 제품 로고처럼 그 기업(또는 제품)을 알리는 짧은 한 구절의 노래 또는 음악을 로고송이라 한다. 로고송은 90년대~2천 년 초반 기업(또는 제품)의 '로고(logo) + 노래(Song)'라 붙여서 로고송이라고 불린 데서 기인한다. 영어의 Commercial에서 따온 Commercial Music의 줄임말인 CM송은 상업적 목적의 음악을 통칭하는데 유사한 단어인데 역시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현수막

선거 기간마다 후보들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가요, CM송 등을 개사한 선거 로고송은 1995년 선거에서 확성기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등장했다. 로고송은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박미경의 <넌 그렇게 살지 마>를 활용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번복을 꼬집는다든지, 국민회의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개사해서 김영삼 대통령 비자금 문제를 강조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풍자의 수단이었다. 2000년 총선 당시 이정현의 <바꿔>라는 노래는 어느 한 개인에 국한한 게 아닌 선거판 전체를 뒤집어 엎어버릴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마치 자유당 시절의 선거 구호인 <못 살겠다 갈아보자>처럼 현 정부의 실정을 강조하면서 자기들이 대안이라는 걸 인식시키는데 확실한 역할을 하였다. 노래의 메시지보다는 이미지로 새로움을 어필하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TV 광고에 DJ DOC의 <디오시와 춤을>에 맞춰 김대중 후보가 직접 춤을 추는 모습은 그전까지 근엄한 민주투사요 무서운 할아버지 같던 이미지를 대번에 '젊고 신세대적인 멋쟁이 신사'로 탈바꿈 시켰으며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후보의 기타를 들고 노래 부른 거 역시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재 로고송은 당명, 기호, 후보자, 별명을 붙인 이름을 알리는 이미지 전략 수준에서만 쓰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로꾸꺼란 노래의 로꾸꺼 부분을 이명박으로 개사해서 이명박이 1분 30초 동안 39번 등장할 정도였다.

로고송의 목적은 멜로디를 입안에 자꾸 맴돌게 함으로서 독특함과 자극성으로 중독성을 불러일으켜 후보를 유권자들에게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 있다. 15초에서 1분이 내의 짧고 간단한 형식에 잦은 반복과 강한 훅을 특징으로 하는 징글(jingle)이나 후크송은 효과적이다. 비대면, 음성으로 후보를 알리고 소개할 수 있는 짧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는 수단인 로고송이 각광을 받고 있다. 원래 선거는 축제기 때문에 박상철의 <무조건> 같은 흥겨운 노래가 애용되었으나 이번 4.15총선이 코로나 사태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역대 다른 선거에 비해서 차분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안심하라는 의미로 잔잔한 분위기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공식 로고송으로 선정했다. 선거전에는 중장년층과 노년층 표심이 중요하다고 여겨 그들이 즐겨 듣는 트로트가 원래부터 인기였는데 이번 선거는 작년부터 남녀노소 대한민국에 몰아닥친 트로트 열풍으로 로고송도 트로트가 주를 이루고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한편으로 치우치다 보니 도리어 별 특색이 없다. 어디 가나 트로트 풍의 유사한 선율과 노래들이 후보 이름만 바꿔 들린다. 서초구는 예술의 전당을 중심으로 서초동 악기 거리, 심산 야외공연장, 서초문화회관을 비롯 수많은 연습실, 스튜디오, 레슨실이 위치한 한국 클래식 음악의 메카다. 이런 지역에서 출마하는 사람들까지 천편일률적인 트로트 풍 말고 고풍스러운 클래식 음악을 로고송으로 쓰면 서초구라는 품격 있는 이미지와도 부합되고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확실힌 부각시킬건데... 미디나 일렉트로닉이 아닌 어쿠스틱 클래식 악단, 예를 들어 서초 교향악단이나 서초구에 거주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을 모아 대중음악 작곡가 대신 클래식 음악 작곡가에게 로고송 작곡을 의뢰, 제작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로고송은 선거운동의 한 방편으로 후보를 당선시키는게 주 목적이요 노래란 뭔가를 쉽게 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니 점잖고 어려운 클래식이 어울리지 않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응원송으로 쓰이고 있는 수많은 클래식 선율들의 효과는 이미 입증되었다. 무조건 크고 시끄럽게 풍악을 울리는 거라면 나이트클럽이나 테마파크, 유원지와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공허한 이미지로 어떻게 뜨려는 그런 얄팍한 노림수 말고 역사와 뿌리가 깊은 정책과 노선 중심으로 정치판이 흘러가야 하는데 그건 또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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