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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의 음악통신 219] 이 한 권의 책: '명곡으로 배우는 생생한 청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3.30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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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음악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각 학기마다 과제곡이라는 명목하게 여러 악식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양식이라는 게 그에 맞춰 하나 간신히 연주하고 써 봤다고 해서 완벽하게 체화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건 말해봤자 무의미하다. 즉 작곡도라면 적어도 가곡이라면 10개는 써보고, 푸가도 100개, 낭만 화성으로 피아노 곡이나 기악곡을 여러 곡 써보면서 학습해서 숙달해야 되는 도제식, 수공예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Handwerk, 예술을 뜻하는 ART의 어원이다.) 기악연주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중 몇 개나 쳐보고 몇개나 들어봤는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경구의 참의미는 베껴라가 아니다. 듣고 흉내 내고 사보하고 베끼는 작업(이게 작곡 공부의 정도)을 부단히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 대로 변형을 하는 뼈를 깎은 반복적인 트레이닝이 필수라는 뜻이다. (그래서 조정래 작가도 자신의 문하생, 심지어는 며느리에게도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하라고 시켰다. 사실 그런 대작가의 장편이나 명작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연필로 2-3번만 필사하면 작가로서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하는 건 명백하다.) 그중에서 듣고 적는 시창청음은 음악의 시작이요 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맞춘 최신 교재가 바로 권송택, 김봄이, 박수정, 장춘희 4명이 함께 쓴 <명곡으로 배우는 생생한 청음>(현대 문화기획 출판)이다.

현대문화기획 (발행인 최영선)에서 발매된 최신 청음 교재 <명곡으로 배우는 생생한 청음>

현재 한양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있는 권송택과 김봄이, 박수정, 장춘희 등 4명의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동문들이 함께 쓴 이 책은 단편적인 트레이닝으로서의 청음이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의 음악이론의 연계와 융합을 꾀한 점이 특징적이다. 시창 & 청음은 운동에 비교하면 달리기와 체력훈련과 같다. 어떤 스포츠 종목이든 그게 밑받침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 여기면 한순간에 성취도가 올라가지도 않으면서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급속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매일매일 꾸준히 해야 하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훈련이란 뜻이다.

그럼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청음을 왜 해야 하는가? 과거엔 청음이야말로 음악성의 척도로 여겨졌고 절대음감의 소유자가 음악을 하는데 유리할 거라는 선입견과 오해가 있었다. 지금이야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기계가 대신해 주고 미디어의 도움으로 장기간 전문적인 연마를 하지 않은 사람도 아무 때나 채보하고 기입할 수 있다. 음을 듣고 적는 것은 그냥 받아쓰기에 불과하다. 단순한 받아 적기라면 요즘같이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특히나 청음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는 맞고 틀리고가 명확하니 점수를 깎고 평가하는데 용이한 변별력이 뚜렷한 과목으로 특히나 국내에선 음악을 위한 청음이 아닌 시험 통과와 낙방을 가르는 용도로 쓰이고 있거나 쓰였다는 점이다.개별적인 음들의 나열은 언어와 문장이 아닌 문자들의 무분별한 울림에 불과하고 음들의 논리적인 집합체인 음악작품의 이해를 돕는 데 청음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작곡가가 곡을 쓰기 위해서, 연주자가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매일매일 반복하고 꾸준히 해야 하는 런닝(Running)과 같은 음악 훈련의 A, B, C이다.

저자 중의 한 명이 작곡가 장춘희, 사진출처: ARKO 한국창작음악제 블로그, https://blog.naver.com/musicarko/220269855466

청음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이론의 궁극적인 학습 이유는 훈련과 습득, 연구를 통해 작품 전반에 대해 파악하고 어떻게 곡이 만들어졌는지 알아 거기에 맞게 제대로 연주하는 데 있다. 특히나 청음은 서술했다시피 훈련이 필수고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학습을 위해선 여러 사조와 스타일로 작곡된 다양한 장르의 그 음악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명곡으로 배우는 생생한 청음>의 저자들은 고통과 괴로움이 수반되는 평가를 위한 청음이 아닌 음악사의 명작에서 발췌한 몇 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심금을 우린 선율들을 듣고 익히면서 선인들이 작곡한 불멸의 멜로디와 작품을 알아가고 분석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꾀하고 있다. 익숙한 명곡을 막연하게 지금까지 알았다면 이 책을 통해 선율 구조와 화성을 알게 되고 이런 선율들이 작곡가의 음악적 재능에만 의지한 신이 내린 축복이 아닌 치열한 사고와 고뇌의 산물임을 알게 되고 어떻게 연주해야 되는지 깨닫게 된다. 기존의 청음 교재들이 선율, 리듬, 화성으로 분리되어 훈련을 위한 훈련만 일삼게 혹독했다면 <명곡으로 배우는 생생한 청음>은 중, 고, 대학교 음악 전공 학생들이 배우고 연습하는 독주곡, 앙상블, 오케스트라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화성, 대위, 성부 간의 유기적인 구조, 음색, 악기 간의 음역, 형식 등 통합적으로 연계되어 실질적인 도움과 직접적인 학습능률도를 키우는 흥미를 유발하게 구성되어 있다.

권송택, 김봄이, 박수정, 장춘희 4명의 한양대학교 동문들이 공동집필한 <명곡으로 배우는 생생한 청음>

책은 교사용과 학생용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학생들의 교재에서 실습에 필요한 악보는 파트보, 축약 악보, 혹은 도표로 제시되며 교사용 악보에 서는 총보가 제시된다. 총보에서는 학생들의 악보에 제시된 문제들을 하이라이트로 처리하였다. 또한 상단에 해당하는 학생용 교재의 페이지를 적어 놓았다. 학생용 교재에는 각 예제에 해당하는 음원의 youtube 주소를, 교사용 교재에는 해당 youtube 주소로 연결된 QR코드를 제시하였다. 이 어찌 편하지 않은가! 스마트하다. 언제까지 몇십 년 전 방식으로 진화하는 시대의 방식에 맞추겠는가! 다만 이 책은 고급 청음 교재로서 1~2년 정도의 청음 학습 경험이 있는 학생들에게 적당하다는 한계가 있다. 필자부터 교사가 아니라 학생의 신분으로 이 책을 가지고 청음 훈련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음의 감각이 깨어나고 신선한 자극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음악도를 위한 책이 아니라 모든 음악인을 위한 필수 파트너이다. 매일 악기 불문, 스케일, 롱톤 연습을 꾸준히 빼먹지 않고 해야 한다. 또한 청음도 함께다. 이 교재에 있는 넘치는 예문들을 목청껏 부르면 시창도 저절로 하는 거니 당신이 진정한 음악인이라면 그런 기본과 기초를 절대 간과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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