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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96) -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의 대사

서석훈
  • 입력 2014.03.2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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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의 대사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소위 영화감독은 이혼녀이자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를 야밤에 불러내 뭔가 제의할 것처럼 뜸을 들이다가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간단한 제의를 해놓은 상태였다. 장화자가 약간 곤란한 것처럼 대답하니 감독은 속이 더 타들어갔다. 이런 경우 막무가내로 떼쓰듯 해서는 오히려 역효과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감독이었다. 감독은 비록 히트작을 낸 적은 없지만 수많은 영화를 공부삼아 본 사람이었다. 영화 속 보석처럼 빛나는 명대사들을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하여 그 중 하나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외국 영화 중 로맨틱 장르에서 나오는 대사로,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서 즉 오랜만에 만난 남녀가 밤늦은 자리에서 남자가 술이나 한 잔 하자 했을 때 여자가 너무 늦었다고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남자가 한 말, 그 말이 나오고 여자가 결국 남자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 대사란 `전 한 잔 정도 마셔야겠네요. 바래다 드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였다. `한 잔 정도 마셔야겠다` 거기엔 무슨 사연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은 뉘앙스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여자는 궁금해지는 걸 좋아하는 법인데 남자가 정중하게 집까지 모셔드리고 돌아가는 길에 혼자 마시겠다니 다소 애처롭기도 하고 또 그 사연을 좀 들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서양여자나 한국여자나 그런 면에서는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감독은 영화대사를 약간 변용해서 `알겠습니다. 그럼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한두 잔 정도는 가다가 마시겠습니다.` 하고 던졌다. 대사가 약간 변용되었는데 그 차이가 상당했다. 여자가 별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아니에요 혼자 가도 돼요.` 하고 동행을 거부했던 것이다. 뭐가 잘못됐을까.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대해 다소 무지한 남자들은 이런 차이를 잘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자들은 아 다르고 어 다른 그 뉘앙스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뭔가 잘못 된 거 같았다. 이리하여 감독은 급히 수정대사를 던져야 했다. `제가 불러냈으니 제가 모셔다 드려야죠." 이런 대사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 같았으나 반응은 역시 시원찮았다. "아니에요. 저 신경 쓰지 말고 가세요." 신경 쓰지 말라. 섭섭한 예기였다. 감독은 매우 성숙하고 뇌쇄적인 여체를 앞에 두고 주머니에는 복권 탄 돈을 넣어두고도 일 진행이 이리 되는 것에 대해서 낭패한 기분이었다. `네가 날 선호하게 만들겠다` 이런 결심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한 방향에서 풀리고 있었다. 거의 포기 심정이 든 상태에서 엉뚱한 곳에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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