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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115] 공감의 오페라 '밥할머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19.12.01 13:29
  • 수정 2019.12.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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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마지막 날, 고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초연된 향토 오페라 '밥할머니'

오페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겁을 내는데요. 하지만 잘 알려진 소설을 각색하여 극음악이라고 그 작품을 칭한다면 이때 청중들은 관심을 갖습니다.

위의 미국 미네소타 오페라단의 케빈 스미스 단장의 발언처럼 대중은 오페라라고 하면 막연해하고 극장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 티켓값만 으레 10만원을 초월하고 식자들이나 돈있는 사람들이 잘 차려 입고 가서 즐기는 일상과 무관한 허영이라는 인식을 어떻게 하면 타파시키냐가 오페라 생존의 첫 걸음인데 오페라는 언어, 문화, 교육의 차이에 기반한 고급예술인 것도 사실이다. 

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고양 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밥할머니 공연 장면
2019년 11월 30일 토요일, 고양 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밥할머니 공연 장면

헤겔은 예술 장르나 양식(Style)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상태와 연관해 발생한다고 하였다. 위대한 예술 작품의 기준은 그때그때의 내용을 얼마나 포괄적으로 깊이 그리고 직관적으로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어느 정도 적합한 형식을 예술가가 선택, 사용했느냐가 작품 내용의 척도가 된다. 말하자면 한 장르의 올바른 선택에 대한 척도는 바로 역사적인 내용이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와 기술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다양한 장르가 발생하고 이들이 변화되거나 사라진 후에 또 다른 장르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기술적 수단의 계속적인 혁신과 개선이 예술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하는 추동력이었다.

일 년에 수십 편 제작되는 한국의 오페라계에서 공급자의 여러 열약한 조건과 사정은 일반 청중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화려한 볼거리와 시각적인 효과, 자극에 눈높이가 오를 만큼 올라버린 대중들의 입맛에 맞출 수는 없다. 무대가 화려한 것도 아니요,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요, 안무와 무용이 아이돌 가수같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요 조명이 현란한 것도 아니요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의 양식이 취향에 맞는 것도 아니니 어느 거 하나 매력적이고 대중의 구미를 당길만한 요소는 없다.

오페라 밥할머니 피날레 강강수월래 장면
오페라 밥할머니 피날레 강강수월래 장면

창작 오페라는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오페라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오페라는 현대 영화와 뮤지컬이 주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까지 충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에 대중화라는 명목하에 오페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그나마 있는 마니아들마저 떠나버리게 된다. 오페라 본연의 고유성을 살리면서 소재와 다각화와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작품의 제작만이 진정한 오페라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오마하 오페라단의 감독인 조안 데센(Joan Desen)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페라 흥행은 소재에 달려 있다. 소재는 작곡가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작곡가는 몰라도 <데드맨 워킹>이라는 제목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오페라 밥할머니 출연진, 좌로부터 할아버지 신인수, 밥할머니 양지연, 작곡 성용원, 권율장군 강병주, 달래 이경희, 피아노 김보람, 단장 유정, 안무 류미경, 해설 최용석, 왜장부하 송민주
오페라 밥할머니 출연진, 좌로부터 할아버지 신인수, 밥할머니 양지연, 작곡 성용원, 권율장군 강병주, 달래 이경희, 피아노 김보람, 단장 유정, 안무 류미경, 해설 최용석, 왜장부하 송민주

11월의 마지막 날, 고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엠파티아보컬앙상블(단장 유정)에 의해 초연된 오페라 <밥할머니>는 고양에 기반을 둔 단체가 인근 노적봉과 행주산성에 깃든 설화인 오씨부인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이다. 1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영화나 뮤지컬, 쇼, 연극 등 타 장르와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약한 여건을 모두 뛰어넘어 꽉 채워주는 건 음악이었다. OST적인 요소가 충만했다. 장면과 사건에 적합한 음악, 탄탄한 구성에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호소력, 음악 안에 악랄하고 간악한 왜장의 모습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힘을 합쳐 왜적을 무찌르는 권율 장군의 모습이, 거룩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자애로운 우리들의 어머니인 오씨부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알아 듣고 공감하니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삼삼오오, 가족 위주의 관객들 반응이 나오려고 했다.

뮤지컬 '영웅'이나 지금 흥행 돌풍 중인 '겨울왕국2'와 오늘의 <밥할머니>의 단 하나의 차이는 자본력이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품격 높은 음악, 열연한 가수들과 출연진, 혼신의 힘을 다해 원활한 공연이 되게끔 헌신한 스태프, 그리고 피아노 한 대에 오케스트라를 담아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효과를 요구한 멀티태스킹의 피아니스트 김보람까지 인적자원은 어디에 내 놔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극장시스템이 아닌 극단 위주로 운영되는 우리 오페라계에서는 철저하게 레퍼토리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엠파티아보컬앙상블만의 레퍼토리로 장기 공연하면서 브랜드를 형성해서 사람들이 밥할머니 하면 엠파티아보컬앙상블과 주인공인 소프라노 양지연이 자연스레 연상되고 고양에 가면 그 공연을 볼 수 있단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서 라이센스로 타 지역, 타 단체, 해외공연까지 추진해야지 작품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회자되지 여려개를 보여주려고 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격이다. 맛집의 메뉴가 특화된 것과 같은 이치다.

오케스트라 역할을 담당한 피아노, 반주자가 아닌 독주자로서도 가능성을 발견한 1시간 분량의 오페라 전체를 초연한 피아니스트 김보람(오른쪽)과 임수정(왼쪽)
오케스트라 역할을 담당한 피아노, 반주자가 아닌 독주자로서도 가능성을 발견한 1시간 분량의 오페라 전체를 초연한 피아니스트 김보람(오른쪽)과 임수정(왼쪽)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수정을 거듭하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작품의 질을 높인다면 한국 창작 오페라에 대한 청중들의 호응도 커질 것이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에 대한 가능성 또한 높아질 것이다. 종합예술의 총체를 통해 한국 문화의 자긍심과 위상을 자리매김하여 세계 속에 찬연한 빛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충분히 모색하고 발견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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