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당나귀 신사(159) - 돈을 어디에 쓸까 생각해보자

서석훈
  • 입력 2013.06.15 15: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영창(소설가, 시인)



돈을 어디에 쓸까 생각해보자


평생 복권이라곤 사보지 않은 고대해양, 그녀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복권 사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고는 싶은데 자꾸 잊어버려서인가? 아니면 복권은 사는 게 아니다, 열심히 내 팔 흔들어서 살아야지 같은 진취적이고 바른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정확하게는 위 셋 모두 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고대해는 복권을 산다는 생각 자체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뇌구조를 갖고 있었다. 복권 사는 사람을 멀뚱히 볼지언정 복권 사는 걸 말리거나 왜 사냐는 등 가시 돋친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복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뒷좌석에 태우고 대리운전하고 있는 전직 대기업 상무는 안주머니에 일금 일천 원짜리 복권 두 장을 고이 모셔두고 있는 현직 서민이었다. 특히 복권으로 한탕을 꿈꾸는 게 아니라 복권으로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눈물겨운 심정이 복권 두 장 속에는 내포되어 있었다. 그 마음은 당첨번호가 아니라 532화 같은 회수가 아니라 복권 올올이 스며들어 있어 복권의 소유자는 피눈물을 심키고 있었다.
고대해를 옆자리에서 에스코트하고 있는 40대 동영상 제작자는 사실 복권을 자주 사는 편이었다. 그는 제작비 마련을 표면으로 내세우고 있었지만 실은 할 게 많았다. 그는 복권 을 타면 제작비 충당보단 다양한 씀씀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첫째 그는 원룸 월세 밀린 것과 사무실 밀린 것을 시원하게 청산할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보증금이 이제 온전히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는 한 잔 술을 나 홀로 마신 다음 돈을 쓸 명세표를 머릿속으로 써나갈 작정이었다. 남자는 우선 그 인간의 돈 130만 원은 더러워서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130만 원을 무슨 큰 어음이나 되는 것처럼 수시로 협박하듯 떠들어댔던 것이다. 갚으려고 마음먹으면 안 먹고 안 마시고 갚을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 지랄하나 두고보자고 내버려둔 상황이었다. 그 돈을 이제는 갚아버리고 녀석이 전화기든 사무실 앞이든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런 다음 편안해진 마음상태에서 우선 현금 30 만원을 만원 권으로 찾아 주머니에 넣고 어떤 놈이 훔쳐가도 크게는 못 써먹게 일일 한도 백만원으로 한정시켜놓은 체크카드 한 장을 넣고 거리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럴수록 고급승용차를 몰며 거들먹거리면 안되는 것이야. 겸손하게 전철을 타야지. 골치 아프게 뭘 운전을 하나. 눈을 감고 돈을 어디 쓸 건가 조용히 생각을 해야지. 남자는 그러한 생각에 수시로 빠져들어갔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