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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58) - 신분이 바뀌었다 해서

서석훈
  • 입력 2013.06.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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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신분이 바뀌었다 해서


대기업 상무였다가 재산을 모두 날리고 대리기사가 되어 묵묵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내는 한 주에 연금복권 두 장을 사서 소중히 안주머니에 모셔둔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긁어대는 즉석복권의 가벼움에 대해 그는 비교적 회의적이었다. 복권은 기다리는 맛이 있어야 참다운 맛을 느낀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100원짜리 동전을 세워 긁어대며 숫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그다지 멋져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긁어 부스럼이라고 부스러기를 처리하기 곤란하게 된다. 빵이 되거나 또는 운이 좋으면 천 원이나 어쩌다 영예의 오천 원짜리가 되어 제법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0의 행진이 계속되는 것이다.
일금 오억 원 일금 이천만 원 이러한 숙자가 나오며 뒤이어 그 숫자를 겨냥한 숫자들이 줄을 잇는데 줄만 있다 뿐이지 0으로 마감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오억원, 이천만원 이러한 숫자가 뜰 때 이미 포기하는 마음도 같이 뜨는데 소위 팔백만 분의 일이니 이백만분의 일이니 이런 숫자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신병자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허나 확률은 존재하는 것. 존재하기에 일금 이천 원을 투자해 경건한 마음으로 숫자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라면 한 그릇에 해당하는 그러한 돈을 허공에 또는 부스러기 속에 날릴리 만무하다고 본다.
대리기사와 달리 뒷좌석에 40대의 동영상제작자 곁에 앉아 있는 사진모델 고대해는 단 한번도 복권을 사 본적 없는 처녀였다. 누가 주는 것은 받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맞춰본다거나 그러지 않고 잊어버리고 말았다. 잊고 있어서 그 복권은 기한 초과로 사장되어 버렸다. 그 복권은 어쩌면 일등 당첨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천 원 짜리가 아니었다. 복권은 판매되기 전에는 액면가지만 누군가에게 판매된 후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갖는 것이었다. 그 힘으로 서민들은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대해는 서민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면서 그러한 서민의 특성이 배제된 인물이었다. 이러한 인물이 지금 대리기사가 모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데 그 포즈가 이미 범상치 않았다. 그런데 우리의 대리기사 아저씨는 이 와중에도 옛적 버릇이 되살아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그랬다. 대기업 상무에서 대리기사 신분으로 떨어졌지만 여성에 대한 취향이나 호기심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대리기사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여성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고 그 체취를 맡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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