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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57) - 누가 복권을 사는가

서석훈
  • 입력 2013.06.0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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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누가 복권을 사는가


두 남녀,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과 사진 모델 고대해를 태운 승용차는 이제 한강 다리를 건너 강동구의 심장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먹물냄새 피우는 대리기사, 한 때 대기업 상무였다가 모든 재산을 몇몇 여성과 투기판과 시시한 사업에 헌납한 후 묵묵히 남의 차를 몰아주고 있는 우리의 대리기사는 밤이 깊어감에 따라 수입도 늘어나는 야릇한 구조의 수혜자였다. 그는 뒷좌석의 남녀가 무슨 짓을 하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고받건 알 바 아니라며 또는 아는 체해서는 안되는 불문율에 따라 정면을 응시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뒷좌석의 남녀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다.
요즘은 처음 만난 사이라도 마치 일 년은 만난 것처럼 앞에 기사님이 계시건 말건 신체 접촉을 하는 커플이 적지 않았다. 신체 접촉도 가볍게 서로의 마음과 욕망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일단 부딪치고 보는, 심지어 입술까지 부딪치고 보는 돌직구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젊은 층일수록 그러한 사례는 빈번했고 나이 든 자들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신중한 태도롤 견지하기 마련이었다. 한 번은 70대 두 노인이 꼭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은 채 목적지까지 그렇게 간 적도 있었다. 그들은 부부는 아니었다. 부부만 아니라면 나이 상관없이 불이 붙는가. 기사는 한때의 자신, 과거 불꽃의 세계를 회상하는 일이 잦았다. 그럴수록 쓰라린 마음만이 남고 현재의 신세를 생각하며 뼈저린 후회를 하였다.
우리의 대리기사는 연금복권 두 장을 소중히 안주머니에 넣고 발표날인 수요일을 기다리며 한 주를 보내곤 하였다. 대리기사는 자신만 이러한 처지에 놓인 게 아니라 주위의 숱한 선배와 동료 심지어 후배까지 큰 시련을 겪고 자신보다 더 한 처지에 놓여있음을 일찌감치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도 모두 복권 두세 장을 안주머니에 모셔두고 있었다. 성격 급한 일부는 즉석복권을 사서 그 자리에서 긁어대곤 하였으나 그들이 오천원 권 이상 당첨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마저 당첨되는 즉시 복권 다섯장으로 바꿔 기어코 영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사가 아는 사람 중의 하나는 두 개의 숫자만 맞았으면 일등인 오억원에 당첨될 뻔했다. 그 유명한 사건을 그는 2년째 말하고 다녔다. ‘누구나 일등에 당첨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복권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사는 것이었다. 복권을 단 한 번도 사보지 않은 자가 있었다. 그것은 뒷좌석의 고대해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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