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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156) - 트럭이면 어떻고 용달차면 어떠랴

서석훈
  • 입력 2013.05.2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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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트럭이면 어떻고 용달차면 어떠랴



깊어가는 서울의 밤에 두 남녀를 태운 승용차는 한강 다리를 건너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고, 운전석의 대리 기사는 아까부터 말이 없다. 그는 침묵을 부여받은 중세의 기사처럼 묵묵히 차를 몰고 있다. 옛날 같으면 이것은 마차고 그는 마부이며 뒷좌석의 두 남녀는 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모종의 관계에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차례 마차 삯을 받고 또 다른 손님을 태우기 위해 거리 한 모퉁이에서 대기하고 있게 될 것이다. 귀족의 하인이 부르지 않는 이상 거리의 손님을 태우기까지 추위 속에서 더위 속에서 또는 눈 속에서 비바람 속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있어야 할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오늘의 기사는 최첨단기기로 연락을 받고 빈몸으로 손님을 찾아가, 오늘날 한 가정마다 하나 또는 두 세 개나 갖고 있는 승용차를 몰아주고 운반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서 너 개, 때론 공치기도 하면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반복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동을 하는 것이다.
같은 운전도 애인을 태우거나 나들이 가는 가족을 태우거나 부모님 효도 관광차 달려가는 것과 생계를 위해 모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택시에다 애인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얼빠진 친구들도 있었다. 합승인줄 알고 앞 손님 눈치를 살피면 운전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손님 목적지를 말씀해 주세요.’ ‘앞 손님은 어디 가시는지?’ ‘아 거긴 신경 쓸 것 없고 가시는 곳을 말씀하세요.’ 그러면서 간간이 자기들끼리 짧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드라이브도 하고 돈도 벌고 하는 것이다. 요즘은 그러고 싶어도 여자가 거부한다고 보면 된다. 쪽 팔리게 택시 타고 연애하랴? 하며 콧방귀를 뀌는 것이다. 예전에는 택시뿐이랴. 트럭 옆자리에도 타고 용달차 옆자리에도 타고 봉고 옆자리에도 타곤 하였다. 연애에 제한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소박하면서도 대범한 연애관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드라이브 연애는 승용차로 국한하데 그것도 차종을 가려 벤츠냐 그랜저냐 도요다냐 최소한 소나타는 되나 하고 따져본 후 옆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름값도 아끼고 도로사정과 주차장을 감안하여 경차를 몰고 다니다간 옆자리에 자기 식구 외에는 앉히기가 힘들어진다. 물론 여자가 경차를 몰고 다니면 깜찍하다느니 귀엽다느니 알뜰하다느니 좋은 이미지를 풍기게 된다. 경차를 탄 여자는 선글라스를 껴도 되지만 경차를 탄 남자는 가급적 선글라스를 끼지 않는 것이 예의다. 마침 동영상 제작자의 차는 그 유명한 BMW이지만 이 차의 할부금을 갚기 위해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차량 소유주가 꽤나 가여워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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