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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98) - 진실은 이렇다

서석훈
  • 입력 2012.03.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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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지난주에 언급한, `그 여자가 목도한 진실`이란 무엇일까?
강남 거주 대기업 임원을 남편으로 둔, 40대 초반의 윤기 나는 사모님께서 뒤늦게 진실을 목도했다니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돈이 중요하고 매끄러운 인간관계가 필연적이고, 온갖 사소한 모임이 곁들여져야 하고, 신경 씀에 있어 친정과 시댁의 균형이 유지되어야 하고, 자녀교육에 한 치의 구멍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러고도 자신을 잘 가꾸어 고상한 문화적 취향과 식견을 가진 여성으로 거듭 태어나야겠다는 욕구 내지는 사명감을 가진 여자가 목도한 진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삶에서 진정한 자기만족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생각을 하였다.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크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던 일, 그리고 여중생, 굴러다니는 돌멩이만 봐도 깔깔거리고 웃던 그러나 가슴엔 아련한 그리움과 두려움이 잉태되어 있고 총각 선생님 생각에 며칠밤을 지새고 복도에서 부딪치기라도 하면 얼굴을 몹시 붉히던 일, 누군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눈치를 보이며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걸 보며 가슴 아프던 일, 그리고 여고생, 공부에 매진하면서도 꿈은 먼 곳에 그리고 마냥 순수한 사랑을 꿈꾸던 일, 마침내 대학생, 공부와 미팅과 동아리 모임, 말이 없던 그 선배 묵묵히 챙겨주던 그 선배가 그녀의 친구를 좋아하고 있는 걸 보며 상처받았던 일, 그리고 졸업. 대학원 진학. 몇 군데 직장과 몇 남자. 몇 번의 연애와 이별, 상처받고 때론 홀가분함을 느끼며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면서 새로운 상대에 대한 기대를 남몰래 품었던 일들.
그 무렵 만난 남편, 상냥하고 일에는 도전적이고 머리 회전이 빠른 이 남자. 대기업 과장으로 무난한 결혼식, 저축과 몇 차례의 이사와 집 마련, 그리고 남편의 임원 취임, 보유주식의 상승, 1, 2등을 다투며 무난히 성장하는 두 아이. 자 누가 그녀를 부러워하지 않으랴? 누가 그녀에게 세상 걱정이 있다 하겠는가?
그 여인이 진정한 만족을 위해, 죽기 전에 불꽃같은 사랑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더 미루다가 50대가 된다면, 그 여성의 사랑은 그 의미와 느낌이 퇴색되어 보이지 않겠는가? 가을 비 속을 걸어가는, 코발트빛 코트를 입은 우수에 찬 40대 여인, 그녀를 향해서서히 다가오는 한 남자, 눈빛이 깊고 모진 고통을 겪은, 지금은 외로이 혼자 있는 그러나 가슴은 뜨겁고 사색을 하는 남자, 그 남자가 다가온다. 여인은 지금 그를 보고 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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