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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신사(96) - 그녀들은 조금은 `안나 카레니나` 이다

서석훈
  • 입력 2012.03.1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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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창(소설가, 시인)
파멸하는 여성들에 대한 얘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여성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있다. 러시아 봉건귀족 사회의 일원인 안나는 관료인 남편과의 형식적이고 공허한 삶에서 오는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육체적 욕구를 좇다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불같은 사랑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랑마저 식어가자 기차 철로에 몸을 던져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마는 이 비극적인 여성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되어 영원히 독자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현대 여성들은 그들은 어느 정도는 자신이 안나 카레니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기차 에 몸을 던지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느끼며 생활의 건조함 속에서 가슴을 채워줄 그 무엇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동호회라는 활동으로, 석 박사 학위라는 목표로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남자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어떤 여성에겐 남자가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겐 세계라는 이름을 남자란 이름으로 대체해도 큰 무리가 없다. 이들은 남자를 통해 세계를 보며 남자를 통해 시간을 느낀다. 남자가 주는 충족이 그토록 크기에 남자를 상실할 때 받는 충격 또한 엄청나다. 그들에게 이미 하나의 남자가 커다란 실망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 남자는 첫사랑이거나 때론 아버지이거나 때론 동료였다가 십중팔구 지금의 남편이 그 남자다. 그리하여 남편에게서 받은 실망과 지속적인 공허와 고통 무엇보다 앞날의 대책 없음은 자신의 삶에 암담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앞으로도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괴로움을 안게 된다. 해서 일부는 이혼하며 일부는 남처럼 살며 일부는 아예 해외로 나가 통장으로 부쳐오는 돈만을 기다린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들은 이미 식어버렸고, 차라리 증오의 감정이 생겨났다가 그마저도 무뎌져가며 모르는 존재로까지 비약한다.
이럴 때 한 남자가 나타난다. 지금껏 남자에게 속았지만 또 속더라도 빠져보는 게 또한 여자라는 존재다. 애초에 품었던 남자에 대한 환상이 다시 살아나 그녀를 들뜨게 한다. 무심하고 무식하고 냄새 풍기는 꼰대가 아니라, 센스 있고 배려가 넘치고 다정한 말을 속삭이는 남자가, 술집 테이블 앞에, 운전석에, 같은 엘리베이터에, 마침내 한 베드에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동안 메말랐던 마음의 황무지에 단비가 내리고 꽃이 피어나고 열락의 화원이 조성된다. 누가 이런 행복과 쾌락을 모르고 지나가야 하리랴? 왜 손해 보는 인생을 사랴? 이제부터라도 인생을 느끼고 인생을 포옹하리라. 여인은 꿈꾸는 눈빛을 한다. 남자여, 주위에서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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