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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윤한로 詩)

서석훈
  • 입력 2012.03.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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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윤 한 로

초저녁부터 소주에 홍어 한 사라
성당을 가야는데
대학 선배한테 잡혔다
동안의 얼굴로
이혼한 애기, 히말라야 간 얘기
인생 훈계는 길고 길어라
인생이니 나발이니 주먹으로 쾅
내려치진 못하고
홀짝, 홀짝
마신 면장술 몇 잔이
띵하다
예헤, 오줌을 누러가는 척
도망친다
아직도 흰 눈 찌꺼기 쌓인
좁아터진 홍탁 골목
나는 나쁜 놈이 된다



시작 메모
중국의 임어당은 소품문을 쓰라고 한다. 그 글은 엄격한 격식 따위 필요없이 자유스럽게 쓰는 글로서 결코 거창하지 않단다. 소품문의 요체는 지극한 지혜나 도리는 심오한 말 가운데서 얻는 게 아니라 우연한 말 가운데서 얻는 것이다. 걸핏하면 우리를 붙잡고 성인, 현자의 지혜나 가르침을 설하려고 하는 글들은 얼마나 역겨운가. 마음 내키는 데서 시작했다가 멈춰서고 싶을 때 멈춰서고 그러다가 흐르고 싶을 때 흐르는 소품문, 술 먹고 오줌 누고 도망치고 하는 시도 거기에 해당될라나.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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