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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산업 칼럼] 정상화의 또 다른 증거, ‘마음껏 뛰놀 자유’

이용준
  • 입력 2019.07.04 17:12
  • 수정 2020.02.1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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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런팜 제주 실내 언덕 주로 설치···강하고 체계적인 국산마 육성 돌파구

2013년 2월 장수목장을 찾았을 때 조우한 ‘메니피.’ 그가 대한민국 최고 씨수말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조력과 배려가 있었다. 처한 환경이 어려워도, 기반이 없어도 십시일반 함께 힘을 모아야 위대한 전설이 탄생하지 않을까. 물론, 주인공은 단 한 명이다. ⓒ미디어피아 이용준
2013년 겨울 장수목장에서 조우한 ‘메니피.’ 그가 대한민국 최고 씨수말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조력과 배려가 있었다. 처한 환경이 어려워도, 기반이 없어도 십시일반 함께 힘을 모아야 위대한 전설이 탄생하지 않을까. 물론, 주인공은 단 한 명이다. ⓒ미디어피아 이용준

2013년 2월 처음 장수목장(현 렛츠런팜 장수)을 찾았을 때 필자는 경악했다. 수익 사업을 핑계로 전기세를 아낀다는 ‘지침’에 따라 오후 6시면 전체 소등을 하니 현장 관계자들, 말관리사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고 있었다. 한창 마방 관리하고 저녁 먹기 위해 이동할 시간이건만, 가로등 하나 켜놓지 않은 ‘암흑세계’에서 넘어지고 다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 엉터리였던 건 경주마 후기 육성과 휴양을 위해 2007년 개장했건만, 겨울철이면 주로가 얼어 쓸 수 없고 개장 초기 목적 사업에서 휴양마 관리를 빼 휴양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사실. 마방과 마장 펜스가 낡았는데도 제때 수리하지 않아 말발이 끼는 사고가 나 폐마하는 일도 있었다. 지역과 지형 탓이 아닌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인재’가 만든 대표적 문제였다. 인재가 만든 비정상적 문제의 증거들은 이외에도 수두룩했다(관련 기사 바로 가기).

당시 한 조련사는 “전기세 아낀다고 가로등 하나 안 남기고 불을 끄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지적했고 필자도 “말산업의 가장 핵심이자 기본인 ‘육성’ 과정을 담당해야 하는 장수목장 인프라가 관계자들의 무관심과 방치로 예산 낭비만 하는 현실”이라고 했다(장수목장은 한참 지난 2016년, 1년간 25억 원을 들여 사계절 전천후 훈련이 가능한 실내 훈련 주로를 건설해 2017년 2월 개장했다).

제주는 어떨까. 한국마사회는 국산마 육성·조련 인프라 확보를 위해 총 230억 원을 투자해 렛츠런팜 제주 실내 언덕 주로 공사에 들어간다. 비교적 온화한 기후에 초지와 목장이 잘 발달한 곳이기에 장수보다는 문제가 적었음에도 선제적인 관심과 예산 반영으로 이뤄진 사업. 7월 4일 오늘, 기공식이 대대적으로 열렸다.

렛츠런팜 제주의 전천후 실내 언덕 주로는 지리·기후 여건을 고려해 강우·강설 등 악천후에도 연중 상시 훈련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길이 860m, 폭 10m의 상·하행 2개 주로를 비롯해 훈련 과정을 기록·평가하는 관측실, 훈련 전망대, 기록 측정 장치 등 부대설비도 함께 설치하며 2020년 7월에 개장할 예정이다.

현재 렛츠런파크 제주 주로(위)와 렛츠런팜 제주에 설치하는 전천후 실내 언덕 주로 조감도(아래). 한국마사회는 지리·기후 여건을 고려해 강우·강설 등 악천후에도 연중 상시 훈련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현재 렛츠런파크 제주 주로(위)와 렛츠런팜 제주에 설치하는 전천후 실내 언덕 주로 조감도(아래). 한국마사회는 지리·기후 여건을 고려해 강우·강설 등 악천후에도 연중 상시 훈련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이에 따라 겨울철과 악천후에도 연중 경주마 육성·조련 훈련을 할 수 있어 경주마 훈련 일수가 30% 이상 대폭 증가, 국산마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 훈련 시설을 민간에도 개방해 제주 지역 육성 조련사들이 앞으로 세계적 수준의 우수 경주마를 배출할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비인기 종목 또는 한국인은 설 자리가 없을 거라 했던 스포츠 종목에서 박세리, 김연아, 손흥민 등이 세계적 스타로, 그 정상에 서기까지에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은 척박한 땅에서도 선구적 훈련과 따듯하고도 엄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 손과 발은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한 마리 망아지가 세계적 ‘스타’, 강한 말(馬)이 되려면 인프라, 환경 외에도 그를 돌보는 인간의 관심은 그래서 필수다. 과거 주먹구구식, 뿔난 망아지 풀어놓듯 ‘네 멋대로 해라’는 식 배려(?)는 인성을 버리거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포기하게 하는 무책임한 처사. 제주 주로처럼 눈비 막아서 마음껏 뛰놀 자유는 허락하되, 제 분수를 알게 하고 겸손을 잊지 않게 하는 건 ‘윗대’가 직접 몸소 보이는 방법 외에는 없다.

각설하고, 제주 실내 언덕 주로 설치는 “강하고 체계적인” 국산마 육성 조련을 위한 기본 인프라 확충이라는 목적이 제대로 서 있어서 믿음직하다. 또한 이를 통한 축산 발전과 농가 소득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회 가치 실현’의 앞선 증거라는 점에서 반갑다. 특히 김낙순 회장이 밝힌 대로 대규모 자본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을 과거와 달리 한국 경마 선진화와 농가 및 민간 개방 발전, 소득 증대라는 말산업 현장 체감 사업에 집중 투입하고 있으니 우리 말산업이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다는 분명한 사인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아무쪼록 한국마사회가 설립 목적에 충실한, 축산 발전과 말산업 육성 및 선도 기관이라는 그 소임을 지속하기를 응원한다.

미디어피아 이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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