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운무 속을 돌아다니다가도 밥 때가 되면 알리멘트에 가서 밥을 먹었다. 점심은 길거리에서 군것질로 때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침저녁은 알리멘트의 식탁에 앉아 제대로 먹었다. 알리멘트는 유스호스텔의 부속 식당과는 달리 차림이 다양했고 맛도 그만하면 좋았다.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왔다. 또한 타파 구릉과 그의 부인과 어린 딸 모두가 친절했다.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옛날 팝송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그냥 눌러 앉아 식당 카운터 옆 책장에 수북이 쌓여 있는 오래된 비망록들을 들추곤 했다. 비망록에는 여러 나라 여행자들의
월출산 서쪽 기슭도갑리 민박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뒷동산 대숲에서 뻐꾹새가 울더니밤에는 무논에서 악머구리가 울었다 오라는 잠은 안 오고비바람이 와서 대숲을 흔드는 중에소피 볼 겸 마당에 나와 서성이는데구름 속에서 달이 나왔다크고 둥글고 환한 달이 나왔다 도깨비 같고 장승같고 한울님 같은월출산 바위 봉우리들그 위로 솟은 달이 이 동네 형님처럼 말했다동생 왔는가?그렇게 문득 영암 사람이고 싶었다
해방 이후 주한미군 부대 주변에서 서비스업 중심의 생활권을 형성한 일종의 군사취락을 '기지촌'이라고 한다. 기지촌 성매매 종사 여성 110여명 이 2014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정부가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조장하고 방조한 책임이 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8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공식 사과와 진상 규명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의회가 4월 29일 경기도 차원의 '기지촌 여성' 지원 근거를 담은 조례를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위태로운 나날 언제까지 이어지려나산맥은 날로 푸르러가는데물길 막아서는 몹쓸 돌멩이들짱돌부터 바윗덩이까지 평화로운 물길 막아서는구나가로막는다고 흐르지 못할까한 편으로 피하고 한 편으론 부딪히면서터지고 부서진들바다를 향한 꿈 버릴 수 없다짱돌이 막아서면 고였다가 넘어가고바위가 막아서면 옆으로 피해서 가자졸졸졸 흐른다고 업신여기지 마라지금은 비록 보잘것없는 물길이지만머지않아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될 것이니바다로 가는 먼 길 그저 쉼없이 낮은 곳 더 낮은 곳을 향하여참고 견디며 흐르면모든 아픔 넉넉한 바다의 품에 안겨 나으리니지금
우리 스님 어려서 처음 절에 가는 길에일주문이 멀지 않은 개울에서 사람 말하는 산새들을 만났더랍니다- 참 맑기도 하대이 떠 이고 싶구마- 떠 인다 카드니 와 그냥 오노산새들은 까르르 웃기도 하더랍니다 우리 스님 수좌 돼서 동안거 하안거이 절 저 절 수십 안거 마치고 옛 절에 돌아오는데일주문 앞 개울에서 산새들을 또 만났더랍니다개울 속 바위 위에 백동 비녀 하나씩 빼놓고서파뿌리 같은 머리 감는 산새들을 보아하니아무래도 옛날 그 산새들이지 싶더랍니다
종부 성사 윤한로곧 팔도 다리도 머리도마음까지 못 쓰는 시간이 오겠지옷도 못 입고 내 맘대로 밥도 못 먹고똥오줌 못 가리고시도 못 쓰고 못 읽고웬 안경을 밥 숟가락이라그걸로다 밥을 떠먹으려댁들은 뉘신가요사랑하는 아내도 아들도 친구도다 잃은 시간다 떨어져 나간 시간마지막 기도, 믿음도 다 떨어져 나갔구나죄도 고하지 못하는구나무엇이 어떤 죄인지조차 홀라당 알 배 없는데그래, 이제부터다 우리 영혼 그 누구보다 밑바닥맑고 착하고 자유롭다집도 절도 없지만 모든 곳이 다 집이어라버스도 타다가 전철도 타다가나도 타다가 바람도 타다가걸레 스님보다
2월이 다 가도록 다르질링의 운무는 걷히지 않았다. 정말 지독한 운무였다. 하루라도 벽난로에 장작을 때지 않으면 침낭이 눅눅해져 버렸다. 벽난로가 식어버리는 새벽이면 기침이 났고 뼈마디들이 쑤셨다. 그런 새벽이면 침대에 누워 있기보다는 차라리 밖에 나가 걷는 게 편했다. 거의 날마다 운무 속을 걸어 다녔다. 새벽에는 광장과 순환도로와 티베탄 마을을 어슬렁거렸고, 낮에는 좀 멀리 떨어진 차밭이나 묘지나 곰파寺院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느라고 다르질링 일대의 그 무수한 산비탈 골목들을 샅샅이 헤치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티브이 타워 언덕
-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이냐바람을 칭찬하며 뚝방 위에 앉아 쉬는 노파좀 있다 또 한마디 바람 같은 음성으로- 착하기도 하지 그늘도 만들어 주네과연 그 언덕엔 오월 꽃구름 그늘이소복이 드리워져 있었는데단오 굿마당 당골네들은 알았을라나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앉았다 간 노파사는 데가 영 넘어 오대산이라는 것을
시간이 흘러가고 많은 것이 변하지만, 인간은 늘 과거의 순간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어렸을 적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어른들의 말씀을 한 쪽 귀로 흘려보내곤 했지만, 우리는 항상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부모님께서 이야기했던 역사의 의미를 되살리곤 한다.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이야기하는 역사, 우리는 많은 수단을 통해 여전히 오래 전 과거의 사실들과 조우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더 쉽게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와 교육을 통해 배운 역사의 교훈으로 현재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끊임없
[미디어피아] 안치호 기자= 예스24 6월 3주 종합 베스트셀러에서는 부와 행운의 비밀에 대한 수만 건의 사례 분석과 성찰을 담은 『더 해빙 The Having』이 10주 연속 1위에 등극했다.김수현 작가의 4년 만의 신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4주 연속 2위를 유지했다. 스노우폭스 그룹의 김승호 회장이 전하는 맨손에서 종잣돈을 만들고 돈을 불리는 75가지 방법에 대한 이야기 『돈의 속성』은 한 계단 상승해 3위에 올랐고 어린이들에게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4』가 다섯 계단 올라 4위를 차지
골목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바람이 불어와 운무를 헤칠 때마다 광장에 늘어선 영국식 건물들이 드러났다. 대영제국 시대의 유물인 그 위압적인 건물들은 유령들이 사는 집처럼 보였다. 광장에 들어서자 광객들과 조우했다. 그들은 좁은 선실이 갑갑해서 바람 쐬러 갑판에 나온 선객船客들 같았다. 신혼부부도 있었고, 일가족도 있었다. 커다란 눈과 가무잡잡한 피부, 다소 수다스런 태도, 그리고 유난히 추위를 타는 것으로 보아 캘커타를 비롯한 벵골 지방 사람들이지 싶었다. 그들은 두꺼운 털옷에 털모자까지 쓰고도 덜덜 떨고 있었는데, 정말 추워하는 게
[미디어피아] 안치호 기자= 코로나19가 집단감염의 우려를 낳다가 잠시 소강기를 가진 5월 27일 서울 벨라비타컨벤션에서 ‘코로나19 극복과 지구촌 평화를 기원하는 소프라노 박소은 독창회’가 열렸다. 1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한 음악회는 한국가곡을 비롯해 이탈리아, 독일 가곡 및 오페라 아리아 11편과 함께 4편의 앙코르곡까지 모두 15곡의 노래가 울려 퍼졌으며 객석은 뜨거운 환호와 호응으로 감동을 전했다.또한 코로나19 극복과 지구촌의 연대 및 협력을 통한 재난 대처를 위해 손잡자는 취지에 맞춰 ‘코로나19 극복 시낭송회’도 함께
11 가을 하늘 잠자리 날개 날렵하더니해 기울자 눅이 차서 몸보다 무겁구나앞산 그림자 밀물 들듯이 몰려와 밤이 되리니싸리 울타리 끝에 그대 잠들면못 보던 별이 돋고 이슬이 비처럼 쏟아지리라 12 엊그제 그리 곱던 복사꽃오늘은 안쓰러워 못 보겠네흐린 골목 어귀 담벼락 따라먼지바람에 휩싸여 굴러가네낯선 골목 서성이던 날들이오늘 따라 목 메는데외상 주던 술집 문은 잠겨있구나 13 어제 부음을 들었더니 오늘 동트자마자 뻐꾸기가 운다앞산 뒷산에 아직 자는 새들을 하나하나 깨운다차곡차곡 죽었지만 뒤죽박죽이 된 과거에서 화창했던 날들을 불러낸다
룽따 風馬 설산 칸첸중가를 처음 봤던 그 날 아침에 다르질링에서의 첫 산책을 나섰다. 들뜬 마음과는 달리 유스호스텔을 나와서 백 미터쯤 걸었을 때 다리가 휘청거렸다. 운무는 몇 걸음 앞이 안 보일 만큼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갈까, 이대로 더 걸어볼까, 망설일 때 운무 속 저만치 밝으레한 불빛이 퍼져 나오는 창문이 보였다. 불빛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간신히 옮겼다.불켜진 창이 있는 건물은 식당을 겸한 게스트하우스였다. 반가웠다. 들어가서 아침도 먹고 쉬고 싶었다. 현관문을 당겼다가 흠칫 놀랐다. 식당 안에는 뜻밖에도
9 소주만 마신다는 게 자랑이었을까젊어 한 때는 맑고 독한 것명백한 것에 끌렸다맑고 독한 정신을 벼린답시고 칼을 갈듯 이를 갈며 마셨다신들린 무당 작두 타듯 술잔을 물어뜯으며아슬아슬한 술상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온 이곳은 어디인가언제나 그 자리아우성치는 격랑에 에워싸여 눈 못 뜨는 자리누구는 세상을 버리고누구는 술을 버린 자리꿇어앉아 두 손 모은 자도 있었느니 10 맑은 소주는 이제 겁이 나서 못 마시니라대신 마시는 탁주젖처럼 쌀뜨물처럼 고운 것을 어찌하여 탁주라 일렀는가막걸리라 부르기도 죄송한 이 귀한 술뜨뜻하게 데워서 마시는 것
[미디어피아] 안치호 기자= 예스24 6월 2주 종합 베스트셀러에서는 부와 행운의 비밀에 대한 수만 건의 사례 분석과 성찰을 담은 『더 해빙 The Having』이 9주 연속 1위에 등극했다.김수현 작가의 4년 만의 신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도 3주 연속 2위를 지켰으며 전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기억 1』은 한 계단 상승한 3위, 『기억 2』는 전주와 동일한 6위로 나타났다. 스노우폭스 그룹의 김승호 회장이 전하는 맨손에서 종잣돈을 만들고 돈을 불리는 75가지 방법에 대한 이야기 『돈의 속성』이 여덟
7 다만 햇살이 고우니 더는 바라는 것 없어그렁그렁 눈물 매달아 방울방울 떨구는 고드름처럼처마 끝에 나란히 매달려 이 겨울을 살거니이런 날 우리는 안부를 묻는 일마저 잊기로 하자 8 추위는 매섭지만 햇살이 따스하다아무 생각 없다가 깜박 졸았는데옛날 집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툇마루 앞에 떨어져 깨졌다여기는 어딘가잠시 낯설었던 세상여전히 따순 햇살
락바 라마 유스호스텔의 늙은 종업원 이름은 락바 라마였다. 나이 오십이 넘어 보였는데 실은 사십이 채 안 된 사람이었다. 네팔의 동부 산악지방 출신, 18세에 인도 군에 지원 입대해 7년간 다르질링 인근에서 복무했다. 전역 후 트레킹 회사의 포터로 벌이를 하다가 독립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다르질링 유스호스텔에 오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상대로 벌이를 해왔다. 때로는 쿡, 때로는 가이드, 때로는 포터라고 했다. 락바 라마의 이력을 그만큼이나마 알게 된 것은 사흘 내리 심한 몸살을 앓고 난 후였다. 사흘 동안 락바는 아침저녁으로 벽난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외롭고 힘들다길이 있으면 가야한다며 굳이 힘든 길을 가는 그대길이 없으면 내서라도 가야한다며 의지를 불태운 그대아무도 그대더러 외로운 길 가라하지 않았다아무도 그대더러 감당 못할 힘든 길 가라하지 않았다아무도 그대더러 빛나지 않는 험한 길 가라하지 않았다굳이 외롭고 힘들고 험한 길 가는 그대정의의 길 인류평화의 길이라며 반드시 가야한다며구슬 땀 몇 바가지 쏟고 피눈물 마구 흘리며정의의 길이니 내야한다며 인류 평화의 길이니 가야한다며고집을 부리는 동안음모와 협잡이 그대를 에워
4 백년은 영원에 가까운 세월인 줄 알았는데반백 년 넘게 살고 보니 백년도 하루 같겠다어느 고단한 나들이 끝또는 부산한 잔치 끝 5 장마가 물러가니 바로 가을이다밤이면 찬바람 부는 가을 풀벌레 울고술꾼들에게 술이 더 많이 필요한 계절바보들의 얼굴에도 비애가 서리는 6 기세등등한 소나기가 쏟아진다마침내 기로에 섰다술상을 차버릴까 밥상을 차버릴까소나기는 밥상을 차라고 아우성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