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3) 우리 보고걔네들이라고그럼 느네들은 강태기 형 전철을 몇 번 갈아타며초겨울 보라매공원역 보라매병원 문상 길은왜 그리 멀고 을씨년스러운지 영안실 빈소에는딸 다정이 혼자 태기 형을 지키고 있었다폐암에다가 후두암으로 갔다고 했다식구도 친구도 후배도 지인도 없었다거칠고 드센 부산 사나이강태기 선배,공고 자동차과를 나왔는데고교 재학 중, 답지않게시리, 아동문학가로 등단하고서라벌 70으로 들어갔다(학번 따위 무슨 가치가 있으랴마는)지독한 가난과 불행에 쫓겼고입학 후 한 달 남짓, 그때 빼곤강의실 근처에도
3부,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2) 우리 보고걔네들이라고그럼 느네들은 개미집 오오, 문리대니 예대니 약대니 부르동들은왜 그렇게 깔깔거리는지스모르에 백구두에꾀죄죄 시 나부랭이 좀 써보겠다고대학물 한번 먹어보겠다고우리 같은 노가리들 포천, 연천에서 올라와잔디밭 노란 개나리 덤불 속 쑤셔박혔지외롭고도 마냥 쪽팔리더라청자 한 대 꿀리곤 신문지 뒤집어썼지스물한두 살 초여름파란 하늘에 흰 구름천천히, 되도록 천천히 떠돌도록햇빛에도 가는구나 햇살에도 취하는구나가자꾸나 우리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확확 꼴아 보자벌건 대낮부터 흘레붙은 개들이여
3부, 한 스텝에 한 장발 휘날리며(1) 시 쓰는 ○○○소설 쓰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까지어울려 술만 먹으면아, 개가 되어 들던 곳여자들 다 도망가고가방도 시계도 몽땅 잽히고푸르스름한 신새벽, 새집여인숙언제나 나만 먼저 눈떴네하릴없이 하릴없이쳐다보는 쥐오줌 얼룩과떠블류엑스와이 그딴 냄새불현듯 발치에 큰 머리 하나 일어벌컥벌컥 물 마셨지, 원효대사 해골처럼그리곤 다시엉망진창 팔다리조용, 단순,울컥 춤추던 방 시 그거 도대체한 근에 얼마나 하는 거유
면도 아버지의 면도는 엄숙했다.정갈한 자리에 비누조각과 물이 놓였고고운 숫돌과 가죽 벨트가 준비되었다.목침이 놓이고 색경이 비스듬히 자리한다. 당신만의 면도용 칼은 고운 숫돌에 갈린다.잘 갈린 칼은 적당히 긴 가죽 벨트를 여러 번 지난다.숫돌에서나 가죽 벨트에서나 그 리듬은 일정했다.모든 준비는 끝났다. '어~흠' 헛기침 한번 하시고물 묻은 비누가 아버지 얼굴을 향한다.덥수룩한 수염을 쓰윽 한번 훑으시고 난 후작은 색경에 초점을 맞춘다.구렛나루를 지나고 콧수염, 이내 턱수염까지 지난다.희끗희끗한 아버지의 수염은 저항 한번 못하고 수
한파주의보 속에서 입춘을 맞는다.반려견 구름과 함께 걷는 수북하게 눈쌓인 산길영하의 날씨에도 볼에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부드럽다 바람 부는 사연일랑 다 묻어두고사랑은 꽃피는 봄날 같이 찾아오나니오늘은 마침 촛불이 모여 정의의 함성 내지르는 날꿈을 짓밟는 모욕들 함성에 실어 날리면아름다운 정치도 봄과 함께 오리니아직 계곡의 얼음은 풀릴 생각이 없지만입춘 추위는 꿔다가도 한다지만아무리 혹독한 추위라도꽃피는 봄날이 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꽃같은 마음들이 모이고 또 모여 나쁜 일들 촛불로 태워버리고향기 넘치는 사람들 손에 손
용서 불전함에 손을 넣는 불자에게도 부처님의 자비가 전해질까?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서도 보살펴 주실까?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면 나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님!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시던 예수님 말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은 속세 인간을 서방정토로 인도했을까?사백구십 번 용서한 후에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로 이끄셨을까?도대체 인간 세상에서 용서란 무엇인가? 부처님이고 예수님이고 중요한 것이 아니다.그 이전에 용서는 내가 나를 용서해야 한다.허울투성이에 가식을 뒤집어쓴 내가 감히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내가 나에게 참회하
푸르르고 싶지 않은 인생 어디 있으랴소나무야추운 날에도 푸르른 너마음 하나 푸르름으로 지탱해온 세월푸르름을 꿈꾸는 기대와 달리 세상은 너무 험난해자꾸만 반칙을 유도하고반칙하지 않는 인생 허물어뜨리는구나반칙하는 것들만 찬란하다찬란함 속에서 억울한 사람은 늘어나고무죄를 주장하는 호소는 메아리로 흩어진다청산은 말없이 푸르러도푸른른 꿈 누일 자리 하나 없구나하늘과 땅 맞닿은 곳으로 구름은 흘러가고마음 둘 곳 찾지 못하는 영혼 위로회오리 바람 불어온다거센 바람 휘몰아쳐도 어제처럼 오늘도 푸르른 소나무굽었지만 부러
발자국 당신이 떠날 채비를 하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 그치면 가세요힘없이 말하는 사이에 눈발은 더욱 거세졌습니다부득불 떠나는 당신의 발자국을 흰 눈이 덮습니다 멀어지는 당신의 모습 뒤로 함박눈이 쏟아집니다당신이 있던 자리에 흰눈이 소복소복 쌓입니다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 노심초사 하지마세요떠나면서 한 당신의 말 위에도 흰 눈이 쌓입니다1번 찍은 사람들의 거대한 상실감 위에도 눈은 내리고2번 찍은 사람들의 자르고 싶은 손가락 위에도 눈은 쌓이고기권한 사람들의 무책임 위에도 눈이 내립니다퇴행과 역행하는 정치 언어들이 폭설처럼
흔적 남기려 하지 않아도 남는 것이 있다.살아 가는 동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을 살지만모든 시간들은 나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몸짓이다.단지 그 위대한 일들을 나는 모르고 지나는 것이다. 겨울바다 모래톱을 밟았다.모래톱에는 여러 흔적이 찍혀 있었다.그 가운데 아이 발자국이 눈에 띈 것은 그 애의 미래를 축복하는 것이다.바다가 쓸고 간 자리에 빈 껍질만 남은 조개껍데기가 있었다.바다가 남긴 선들도 흔적이요모래에 박혀 있는 조개 껍데기도 역사이다.역사는 무언가가 남긴 흔적이다. 남기려 해도 남기지 못하는 일들은 허다하다.자기가
두려움 많은 이들은 걱정을 몸에 달고 살지요.미래를 걱정하는 젊은이자식을 걱정하는 어른들돈 없는 이는 돈벌 걱정돈 많은 이들은 더 벌 걱정살림 걱정, 사랑 걱정, 건 강걱정걱정 없는 걱정까지요. 이 모든 걱정의 시작은인간이라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지요.걱정이 많아 걱정에 치인 사람들은인간 세상에서 멀어지려는 행위를 하지요.자연인이다를 외치고 산으로 가거나히말라야 등정을 하거나해외여행을 장기간 시도하거나그러면 절대 안 되는데 스스로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지요. 두려움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원초적인 본능 아닐까요?미리 머리로 그 길을
전기밥솥 나는 쿠쿠 전기밥솥을 사용합니다.삼시 세끼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외로운 사람들은 혼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들랑요. 늘 사용하는 솥을 봅니다.우리 말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필이면 솥의 받침이 'ㅌ'일까?시옷이나 이응이면 불안할 것 같지 않나요?솥 정자도 삼발이가 있는 상형문자입니다. 버튼이 있는 자리는 붉은 자주색나머지는 올 흰색인데오늘 제 눈에는어떤 생명체의 엉덩이로 보입니다. 그래서 밥솥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받침이 'ㅌ'이라는 것과제게 모성 본능으로밥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2부 청춘예찬 13 그 시절 내 꿈은 저 하늘 무지개 시인별 시인 사랑 시인 지식 지혜 시인 교수 박사 시인나비 시인 새 시인 나뭇잎 시인 안개 구름 시인 물푸레 시인이 아니라 내 꿈은 거미 시인 농사꾼 시인이 땅에 머슴 시인 지게작대기 시인땅꾼 시인 양봉 시인 용접공 시인개소주 치킨집 시인 바가지 시인 똥파리 시인 배밀이 시인세느강 똥물 시인 자동차 정비공 시인 아파트 경비 시인공사판 질통 시인 질통 시인이 되고 나서도또 소주 한 종재기 시인 가자,복개천 시인 달동네 쪽방 시인 병신춤 시인 까마귀 시인이었건만 접었세라 이 땅에 끈
2부 청춘예찬 12 떨어지고 나니까 깨지고 나니까시가 쓰고 싶었다인생은 가슴 뭉클 더 깊어졌다그렇구나, 시인이 굳이대학에 가야만 하는가펜대를 굴려야만 하는가비를 노래하고 바람을 노래하면 그뿐개똥 골목길 나무를 노래하고새를 노래하면 그뿐꾀죄죄한 절망과 희망 하냥 사랑하고또 미워하면 됐지싸구려 츄리닝 속허여멀건 멀대 목 파묻으면 됐지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으면 됐지긴긴밤 와룡생 무협지도 끝이 났어라밀려오는 대미의 진한 허무씹고 또 씹었으면 됐지삼선쓰레빠 찍찍 끌명복개천 속 끈적한 그리움 찾아귀 기울여 속삭이고 속삭이면 됐지, 흐흐흐담배
2부 청춘예찬 11 밟으면 밟히데또 밟으면 또 밟히데강출아, 두만아, 문딩아늬들도 갸들 밟으면 일어나 밟아라또 밟으면 또 일어나 또 밟아라잠든 듯 엎뎄다가쥐죽은 듯 엎뎄다가, 늬들도손이 없냐 발이 없냐그러니까 콱콱 밟아라아주 싹싹 발라라 언젠가닭이 말했다 아주 개눔들이라고 청춘예찬 곧 여드름 박박 나기 시작하곤키도 작은 데다 없이 살아친구 하나 없이 외롭던 그때겨울비 구죽죽 내리고정말 많은 책을 읽었네와룡생 사마의 무유지 군협지 사자후쿡 처박혀무협지란 무협지 모조리 읽었네다 내 것 같던 아리따운 낭자들삼삼했지무공을 폐지당한 초절정
2부 청춘예찬 10 슬픈 새들이여그대들에겐 우는 듯 웃으며기쁜 새들이여그대들에겐 웃는 듯 울며적은 새들이여그대들에겐 없는 듯 많이많은 새들이여그대들에겐 터질 듯그러나 더 많이이제 갑니다홀라당 암것두 없이가난하게 무지하게 비굴하게 비겁하게철사처럼 휘어지데요옆구리 미어지데요 풀 2 왠지 몰라요저를 더 밟아 주세요저를 더 때려 주세요저를 더 깔아뭉개 주세요우리 같은 나부랭이들저에게 칵, 침 뱉어 주세요저에게 더 비웃어 주세요저에게 더 지랄 떨어 주세요왠지 몰라요
행복이란 석양에 비친 구름을 보면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지요.일변 헬리콥터 모양으로 날아가다 용으로 변하고 변화무쌍한 것이 인생인지라 하늘의 조화도 그리하나 봅니다. 구름이 흘러가듯 행복도 흘러간다고 합니다.순간의 행복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코앞에 가져다주어도 그게 행복인 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 당신이라는 말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스쳐 가는 행복을 느끼고 잡는 일에 열중하면 좋겠습니다.지나가는 지도구름이 하트로 바뀔지는 모릅니다마는지나가는 행복을 마다할 일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저는 행복 하려고 남은 인생
석양 하루 종일 쨍쨍쨍일한 해님이 빨갛게 빨갛게물이 들더니 갸웃갸웃 고개가떨어지더니 꾸벅꾸벅 졸려서잠자러 가요.
긷다 '두레박이나 바가지 따위로 퍼서 담다' 어릴 적에 식수가 필요할 때는공동샘으로 물을 길러 갔다.길어 온 물은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밤중에 오솔길 안쪽에 오도카니 자리한옹달샘으로 물을 길러 가면둥그런 달까지 길어 올 수 있다.달까지 담아오면 여간 횡재가 아니다. 무언가를 긷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추억을 길어 올리고희망을 길어 올리고고마움을 길어 올리고동심을 길어 올리고사랑을 길어 올리고 길어 올린 여러 가지 것들은내가 살아가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도록마음 그릇에 잘 담아 두련다.혹시 누군가 목마른 사람이 있걸랑길어 올린
눈사람 하늘에서 눈이 내려요.내리는 눈이 쌓이는 시간은 주로 밤이지요.장독대에 밤새 쌓인 눈을 소복소복 이라고 해요.참 예쁜 말이지요?이른 아침 햇살에 빛나는 눈은 그야말로 눈부신 풍경이고요. 몇 움큼만 쥐어 뭉치면 금세 눈사람이 되지요.뜻이 큰아이는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요.솔가지로 눈썹이, 숯으로 코를, 나뭇가지로 입을 만들어요. 정이 많은 아이는 목도리도 둘러주고사랑 많은 아이는 털모자도 씌워주지요.안아 주려면 잠깐 밖에 안되요.그 사람이 녹기 전까지만요. 넓은 마당에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려면운동장 흙까지 뭉쳐
가을이 멀어진다. 모든 사물에는 냄새가 있다.모든 말에도 냄새가 있다.사랑에도, 이별에도, 기다림에도...아버지 냄새는 엄격했고어머니 냄새는 포근했다. 가을이 멀어진다.가을 냄새를 맡아보기로 했다.쓸어도 쓸어도 자꾸 떨어지는 낙엽은멀어지는 계절이 아쉬워서 계속 떨어지나 보다.모아 두었던 낙엽을 태운다.낙엽 타는 냄새는 추억 냄새 같다.기억하기 싫은 추억도 낙엽이랑 태우면 좋겠다. 모든 멀어지는 것은 아쉬움이다.가을이 지나면 코끝 짜릿한 겨울이야 오겠지만화사하지만 점잖은 국화가 그립고햇살 잔뜩 머금고 익어간 온갖 과실이 생각나고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