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당나라 원정군 지휘소 막사에는 고선지를 비롯한 휘하 장수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있었다. 그 자리는 작전회의라기보다 그날의 패전에 대한 성토장이라고 해야 옳았다. “장난감 같은 월도를 든 야만인들이 그리도 강하단 말이더냐?”대장군 고선지가 매우 진노한 표정으로 선봉장 고문세를 노려보았다.“네, 장군! 이슬람군 대장 살리흐는 만만하게 볼 장수가 아닙니다. 몇 겹으로 둘러싸고 질서정연하게 군사를 지휘하는 방어전술에서 도무지 빈틈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막상 성벽을 뛰어넘기는 했으나 너무 방어벽이 튼튼해 아무리 백병전
별똥별 편성준 꿈에 별똥별을 보며 생각했다 별은 아내를 주고 똥은 내가 가져야지 그래도 별이 하나 남네 Star-shit-star(shooting star) 번역 김정은 Seeing shooting star in dream I thoughtstar to wifeshit to me;a star remains 편성준 작가는 MBC애드컴, TBWA KOREA 등의 광고 대행사에서 20년 넘게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책 연극 영화를 좋아하는 현직 작가이며 강사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출판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서역 경략 반초는 서역으로 가는 길목의 소륵국·우전국 등을 우군으로 만들어 그들의 군사를 마름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건초 3년(서기 78년) 소륵국과 우전국의 병사들을 징발하여 인근에 있는 고묵국(姑墨國)의 석성(石城)을 쳐서 승리로 이끌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구사하였던 것이다.이러한 전법으로 자신감을 얻자, 반초는 마침내 황제에게 서역의 여러 나라를 평정하려고 하니 군사를 보내달라는 장계를 올렸다. 후한의 황제 장제는 흔쾌히 그의 청을 받아들여 1
아 그렇구나, 2020 보라, 사람이 아프니 다 아프다하늘도 땅도 나무도 새도 버러지도풀도 돌도 구름도 시간도 강물도식당도 철물점도 올갱이집도이발소도 미용실도 통닭집도 농약상회도튀김집도 구멍가게도 도장집도 자전거포도철길도 들길도 미동산도 임도길도논도 밭도 시골 공소도 비닐하우스도 콩나물공장도 원남이도 월려씨네도 한 반천은 허물어진 빈집도거기 고욤나무도 나뒹구는 장화도아픈 사람도아프지 않은 사람마저도 그러나 이 아픔 지나가면이 시간 이겨 내면 겪어 내면 하늘도 돌아오고새도 나무도 바람도 구름도덩달아 돌아오고낮과 밤 아침과 노을 어둠
1 윤기로 번들거리는 검은 말이 갈기를 휘날리며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그 기세가 마치 바람의 기류를 타고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다.선봉장 고문세(高門世)가 칼을 높이 치켜든 채 질주하는 말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하며 외쳤다.“최고 속도로 달려라. 뒤처지는 놈은 이 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두두두, 두두두두!수천을 헤아리는 기마군단의 말발굽 소리가 들판을 가득 메웠다. 둥, 둥, 둥, 둥!기마군단 뒤에선 대장군 고선지(高仙芝)가 이끄는 당나라 원정군 본대의 북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멀리 탈라스(Talas: 잠블) 성이 아스라하게
초록이네 마을 새벽 이슬에새싹들이 초록 초록 아침 햇살에 나무들이 초록 초록 훈훈한 바람 불어씨앗들도 초록 초록 초록이네 잔치에꽃들이 하하 호호
귀촌 2 나라는 사람아름다운 가재골에 참으로 민폐입니다빈둥빈둥 놀면서여전히 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억지 시 치장 시 거짓 시 쓰기를 일삼으니진종일 약 주고 거름 내고 가지 치고풀 뽑고 꽃 따고 해서 지친 분들께늘 죄짓는 마음입니다어느 날 조금이라도 보속이 될 수 있을까가재골 삼류 시인으로서활동 수칙 몇 가지를 주렁주렁 정합니다남들 땀 뻘뻘 흘려 일할 때논둑 밭둑 가로지르지 않고깔깔 크게 소리 내어 즐거워하지 않고미카엘라와 둘이 붙어다니지 않고적어도 대여섯 걸음은 떨어져 다니고털끝만큼이라도 거들먹거리지 않고요란 떨지 않고 특히
참혹한 추위 속에서 부풀어 오르고 올라 터질 것같던 빙벽손만 대면 쨍그랑 깨질 것처럼 팽팽하더니산들산들 봄바람 나긋나긋 따뜻해지는 햇살에긴장 끈 놓으며 마구 녹는다계곡 바위에 기대어 영원히 꽁꽁 단단하게 버틸 것같던 빙벽달려오는 봄의 아우성에 놀라방울방울 눈물 흘리더니 어느새 쪼르륵쪼르륵 물줄기로 변하는구나부정한 권력이 거짓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진실과 정의를 짓누르는 동안에도햇살과 바람은 뜨거워져 빙벽을 녹인다누구의 죄는 먼지처럼 가벼워도 천근만근 무거운 처벌을 받고누구의 죄는 엄중한데도 깃털처럼 가벼운 처벌을 받
또 봄이다. 또 그림이다. 봄도 설레고 그림도 설렌다. 제11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를 기대하며.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 283홀에서 4월 8일부터 10일까지다.여전히 수작들인 B-5 갤러리 봄 부스가 기다려진다. 양정진의 산책나온 펭귄가족들이 귀엽다. 제목은 LOVE2(펭귄가족)이며 65.1x50cm, woodcut, acrylic on wood, 2022 신작이다.One moment in time 이미근 작가 작품 제목이다. 45.5x53cm, oil on canvas, 2021제작이고 150만 원이다. 동백꽃 휘날리며~~우리 앉
미디어피아 소설가 엄광용 전문기자가 연재하던 '대하소설 광개토태왕'을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연재를 중단한다.이후 엄 전문기자는 새로운 소설 '검은새의 춤'이라는 무협 형식의 소설을 미디어피아를 통해 다시 연재하기로 했다.
어떡하지? 나도 모르겠어.네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그러다가도 문득 문득 네가 생각나. 푸르던 날에는우리 함께 푸르렀는데..함께 마시는 공기는 신선했고함께 쬐던 햇살은 따뜻했는데.. 기억이라는 한계점이 있는 줄 모르고살아가던 청춘이었나?존재하는 모든 일들은변하지 않을 것이란 어리석음이었나? 그땐 참 풋풋했지.빰을 스치던 바람마저 좋았으니까.모르는 아이의 웃음은 나를 향한 응원이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너랑 함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으니까. 너무 사랑해서 너무 아픈 걸까?너무 아파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걸까? 어떻게
늙은 광부 한상림 그는 날마다 노다지를 캐러 간다큰 애야, 얼렁 와 금 캐러 가자갱도를 빠져나오지 못한 석탄 같은 시간의 촉수정지된 캄캄한 기억들이어둠 속에서 그의 머리채를 잡아끈다곡괭이 삽질소리가 그의 심장을 조아 대면이따금 어둠 속에서 전동차 바퀴소리 굴러오고혼자만 아는 구석에 숨겨 둔 은밀한 금덩이를 캐러매일 아침 치쿠호오 탄광으로 간다고물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엇나간 재생음처럼잃어버린 시간들이 자꾸만 노인을 끌고 다닌다.어눌한 삶의 흐릿한 기억들그는 아직 치쿠호오 광산 광부로 살고 있다매일 아침, 전화기에 대고 아들에게 외치
주름 한상림 검버섯 핀 노모 손등에 이랑이 생겼다할머니 손 왜 이래,쭈글쭈글 밀리는 손등을 만지며증손자가 두 눈을 휘둥그레 치뜬다 아가야,이게 바로 사랑이란다사랑은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누군가를 많이 쓰다듬을 때무언가를 듬뿍 퍼주고 싶을눈금처럼 조금씩 자라나는 거지 할머니와 증손자 사이사랑이 자라고 있다 Wrinkles 번역 최용훈 On the spotted back of an old mother’s hand are the furrows seen.What happened to your hand, granny?Touching
귀촌 1 안양은 다 접고 접자 마자떴지요우리겐 여기가 딱이구료길쭉하고 비스듬한 가재골 집강아지 두 마리 머루랑 다래랑 이름 붙이고읍내 철물점 농약상회 들러낫 호미 괭이 삽 등속 갖추랴배롱 매실 앵자두 석류 연산홍서껀사다 심으랴, 오명가명봄빛에 원, 쑥스럽구료 하나부터 열까지이 동네분들 가르침 되우 좋아하시니가지 심다 혼나고 열무 심다 혼나고오죽하면 불 때다 혼나고시골살이 깨치기 어려워 심는 족족 다 죽고 마네에구머니나, 또 밤 오줌 누나베? 이웃 두보 할멈까지훌떡 벗공 마당귀 텃밭에 쫄쫄 거름하니올 물외 한번 달겄고나 거, 인심 한
병신춤 1 그딴 춤이야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에장소팔이 성님처럼 추면 되지옥진이 누님처럼 추면 되지장에 소 팔라 가듯이아니면 봄날 비탈에 뚝방에이른 쑥 캐드키 밭두럭 타고 오줌 누드키후여후여 다릿간이란 다릿간마다다 찾아가 추리다역전이란 역전마다 다 찾아가 추리다아니야아,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고그래애이, 나는 자 위에 기는 자 있다더라병신스러이 병신스러이 추리요접시 물에 코나 박고 칵 빠져 죽어 버릴라아프게 아프게 추리요공갈로 아주 공갈로이쁘게 이쁘게 추리니헤프게 헤프게 추리니우리가 말이요양재기 들고 추리다바가지 들고 추리다부지깽
제주 4.3 민중항쟁 이후 '빨갱이'라는 단어가 생겼다이 단어는 온갖 진실과 정의를 덮었다우리 속의 적을 만들어냈다선량한 사람을 적으로 둔갑시키며 갈등을 키웠다인격 말살의 대표 언어로 자리잡았다갈등의 언어들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보수와 진보좌와 우극좌와 극우노와 사나의 일과 너의 일아버지와 아들어머니와 딸촛불과 가짜 태극기종북좌파와 수구꼴통세대와 세대남과 여페미니즘과 남성우월주의구세대와 신세대꼰대와 철부지개인과 공동체군부독재와 검찰독재곳곳 구석구석 갈등의 언어들이 춤춘다때로 경계 구분짓기 힘는 언어들까지 가세
2. 전륜성왕 편전에서 물러나왔을 때 석정은 마치 하늘에서 은가루를 뿌리듯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궁궐의 기와지붕 위에 떠 있는 하늘은 쪽빛 바다처럼 푸르렀다. 거기, 바다 위에 떠 있는 흰 돛배처럼 구름 몇 조각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날씨는 평화롭구나!’석정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면서 다른 한편으론 긴 한숨이 터져 나오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과연 평화의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너무도 아득하다는 생각이 석정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작금의 고구려는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았다. 이미 백제에게는 고구려가 허
목소리 나는 당신 말소리만 들어도 행복해집니다.당신 목소리에 새겨진 나를 듣기 때문입니다.내 말을 들어 주면 당신 안에 나의 흔적을 남깁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각자의 살아온 길을 그 안에 담습니다.그 삶을 나와 함께 했음에 익숙하고그와 함께 했음에 행복합니다. 방금 전친구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늘 활기찼고 뿜뿜뿜 했던 녀석의 목소리였는데나를 슬프게 합니다.내가 내는 목소리 안에는 내 영혼이 담김니다. 또 다른 친구가 안부 목소리를 전합니다.제가 한 전화입니다.봄이 오는 물기 어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덩달아 봄기운이 전해집니다. 내
사진은 육사 님의 소년미 있는 모습을 올렸다. 이육사는 1904년 5월 18일(음력 1904년 4월 4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면에서 차남으로 태어나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옥사한다.본명은 이원록, 아명은 이원삼이며 형제들과 의열단에 가입한 독립운동가 시인, 평론가, 수필가, 시나리오 작가, 기자이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이고 어머니는 의병장 딸이다. 1920년 예안보문의숙에서 한학을 공부했고 대구 교남 학교를 나와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를 다녔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대구형무소 수형 번
1. 낙타풀 수곡성 전투에서 백제군에게 패하고 국내성으로 돌아온 고구려 대왕 사유의 심사는 매우 복잡했다. 두 번이나 백제에게 패하다니, 그런 수모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 욕심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이번 전투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3만 병력 중 전사자가 3천을 헤아렸고, 백제군에게 포로가 된 고구려 병사도 그와 버금갈 정도였다. 더더구나 농민들 중 차출한 병력의 반 이상은 도망쳐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회군할 때의 고구려군은 겨우 절반에 불과했다.대왕은 오래도록 울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