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5. 17:50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은 없더라. 함께 작품을 했던 배우가 요즘 많은 작품에 나오고 스크린에 걸린다. 대단하고 대견하여 칭찬을 많이 했다. 어딜 가도. 좋은 말을 하게 되더라. 근 2~3년간 근황을 모르다가 주조연으로 스크린에 나오고 시상식에서도 상을 받았다. 눈 여겨 볼 신인임을 모두가 인정하는 자리 아닐까. 이렇게 말하니 마치 갑자기 어느 날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쓴 것 같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잘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쉬는 날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물
1. 들어가는 말사마천의 ‘사기’가 역사를 정확히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를 토대로 재구성해 보자. 삼황오제시대를 거치면서 하·은·주는 순서대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은·주의 시조는 순임금 (오제 중 하나) 의 신하로서 동시대의 인물이었다. 주나라는 서안 서쪽 지역에서 융(서융)의 침입을 많이 받았고 하나라는 낙양에서 성장했다. 은(상)나라는 안양 일대에서 성장했다. 은(상)나라 탕왕이 기원전 18, 17세기에 하나라를 멸망시켰다. 하·은·주 공히 여러 부족들에게 ‘분봉(이 땅은 너의 것이다)’하면서 경쟁
1. 들어가는 말- 하夏나라 시조 [우禹], 은殷나라 시조 [설契], 주周나라 시조 [기棄=후직后稷], 진秦나라 시조 백익伯益의 아버지 [고요皋陶]는 동시대 · 동급이다. 순임금 (제 순)이 홍수를 다스릴 때 네 명의 똑똑한 신하가 있었다. “순이 우를 불러 명했다. “그대는 치수를 다스렸으니 그 일에만 힘써 주시오.”命禹(명우):「女平水土(여평수토),維是勉之(유시면지)。」 우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설(契)과 후직(后稷)과 고요(皋陶)에게 양보했다.禹拜稽首(우배계수),讓於契(양어설)、后稷(후직)、皋陶(고요)。 순이 말했다. “그
1. 들어가는 말. 주周나라부족의 시조는 후직(后稷) 기棄. 1) 기원전 1046년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3100년 전이다. 주周나라는 은殷나라를 침공하고 은殷나라 마지막 왕 紂의 배다른 형에게 제사를 잇게 하고 나라 이름을 송宋이라 했다. 다른 왕족 기자는 조선에 봉해졌는데 이후 기록이 없다. (사기 송미자세가) 2) 주周나라의 시조는 후직(后稷) 기棄 (1(황제)-1-1-1-1)이다. 성은 선조 황제를 본 받아 공손 이다. 공손 기棄 역시 황하 치수에 공을 세워, 요임금의 농관(農官)이 되었고 순임금에게 태(邰)에 책봉되어 후직
그까짓 거 화간반개 주음미취의 반어는꽃이 활짝 핀 것을 말하고술을 왕창 마셔 심신이 떡이 됨을 말합니다.세상사는 넘치도록 만족할 일이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되려 다소 부족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더 많을 듯싶습니다. 반쯤 핀 꽃은 며칠 후면 활짝 필 것이니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는가 봅니다.술은 약간 덜 취했을 때 기분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아마 조금 덜 취해서 맨정신에 귀가하라 그리 말했나 봅니다.공자님의 과유불급이라는 말씀도 연관이 있을 듯합니다. 조금 부족하다는 것은 아직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아니면 완성되지 않
1.들어가는 말 ‘사기 오태백세가’는 “주나라 북쪽에 옛날 하나라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周나라부족은 어디에 있었을까? 2.주周나라부족은 서안 서쪽, 서북쪽 50~150㎞ 지역이 주된 근거지.1) 순 임금 제순帝舜은 “기棄, 인민들이 바야흐로 굶고 있으니 그대가 후직이 되어 때에 맞추어 백곡의 씨를 뿌리도록 하라”고 했다. 기棄를 태(邰)에 봉하고 후직이라 부르는 한편 희씨(姬氏) 성을 별도로 내렸다. (중략)帝舜曰:「棄,黎民始飢,爾后稷播時百穀。」封棄於邰,號曰后稷,別姓姬氏。后稷之興,在陶唐、虞、夏之際,皆有令德。공유가 죽자 아
‘사기 은본기’와 ‘진서 부여조’를 비교해 보자. - 1)의 ⑩ 과 2)의 ④에서 보듯이 흰 옷을 입고 이를 숭상하는 것은 같은 민족의 문화전통이다. - 은나라 마지막 왕은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부여에서는 喪을 치르는 동안은 남녀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부인은 베로 만든 面衣를 착용하며 玉으로 만든 패물은 차지 않는다. [ 1)의 ②와 2)의 ④ ]- 옥갑 (부여왕이 죽은 뒤 입는 옥으로 만든 수의)은 차이나 보정시 일대에서 발굴되었다. 차이나는 한나라 왕족이라고 하나 의문의 여지가 많다.* 漢
2부 청춘예찬 9 배고픔이고 뭐고 나는넓적다리께까지 흘러내려 온 촌충에 시달렸다그게 수치스러워 점심 하늘낮달처럼 히쭈그레했다 희읍스름했다 습작 시대 웬만한 애들 거의 엎드리고수학 시험 시간 수학 시험 문제지에모자도 그리고우스꽝스럽게 권총도 그리고시내 삐끼 다리도 그리고조용조용 어느 소녀 얼굴과다시 그 얼굴 코 밑에찍찍 숯검정 수염도 칠하고두구두구 책상 드럼이나 치다가속절없이 먼 산 바라다간 어느새손가락 깨물며, 물어뜯으며깨알같이 쓰는 시란정말 맛있습죠만까구있네우리 곧 구겨버릴라요
2부 청춘예찬 8 학교 철조망 너머 돌산채석장께 새파란 하늘엔귀밑머리 낮달잉크병이 얼어 터지고코가 깨질 듯 추웠다허구한 날 점심도 굶고 나는야 점심이면수돗가에 물 마시곤아니나다를까그새 넓적다리로 촌충 한 마디쪽, 흘러내렸지나는야 오늘도 하염없는촌충쟁이낮달쟁이
2부 청춘예찬 7 바짓가랑이 사이를 파고드는매운 칼바람이여단댓바람에 야코죽는 우리는풀이었네, 모가지 쑥 잡아 뺀 풀푸르뎅뎅한 풀, 불그죽죽한 풀 풀 1 뻐들뻐들한 풀꺼끌꺼끌한 풀들쭉날쭉한 풀재수없는 풀싸가지없는 풀꿀꿀이죽이나 먹는 풀의사 판검사 따윈꿈도 꾸지 못하는 풀공부하곤 담을 쌓은 풀비싼 밥 먹고 비싼 옷 입고노다지귀싸대기나 얻어터지는 풀그런데 왜 때려요, 씨,하고 개기지도 못하는 풀
2부 청춘예찬 6 너무 맛있었는데그런 너구리가 크면서얼굴이 좀 길어지는 듯하더니담배를 피우고호주머니에 칼을 넣고 다니고시내에 나가곤 하더니 나중엔즈이 또한 빵에 간 모양이었다풀풀, 망둥이 비린내 나던 어릴 적불알친구 너구리너무 착했는데그 잘난 똥통 중학 문턱도 못 가 보고 지각 똥통 국민학교 골목 지나똥통 중학교 골목 지나다시 똥통 고등학교 골목맨날 맨날똥통 학교 모자에다똥통 학교 교복에다체육복도 없어물감도 없어한 해를 꿇고 또 한 해를꿇을 수 없어가다가 말고 또가다가 말고멀대같이
2부 청춘예찬 5 동무애들은 조금 크고 길죽해지면서거지반 공장이나 구둣방에 가거나와리바시를 깎거나 농짝을 짜거나구두닦이 딱쇠를 나가거나 했는데곤지, 재떨이, 헨리, 명가이, 조지 다 그랬다길동이 같은 애들은거지를 나가기도 했고어느새 감방에 갔다 오기도 했다 너구리 이빨 빠진 사기 밥그릇에새빨간 망둥이 장국밥너구리네 아부지빵에 갔다 나왔다아!별 달았다아!우리는 한 숟가락즤는 꼭꼭 두 숟가락
과수원과 잠농(蠶農)을 겸했던 우리집은 살림방까지 누에에 내주어야 할 만큼 농사가 컸다. 잠란지(蠶卵紙)에 붙은 누에씨가 꼬물거리기 시작하면 여러 채반으로 나누었다. 한 번씩 허물을 벗고 잠을 잘 적마다 키가 쑥쑥 자라나 잠실 시렁에 층층이 채반을 올려서 키워야 했다. 뽕잎이 한철일 때 잠실 문 앞에 서 있으면 잎을 갉아 먹는 벌레 소리가 지적지적 빈대떡 지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먹고 자고 그렇게 네 번째 허물을 벗은 후에야 제 몸 하나 웅크릴 관을 만드느라 실을 토해냈고, 나비로 환생할 꿈을 꾸었다.인간의 잠드는 욕망은 잠벌레(누
1. 들어가는 말 1) 지난 글에서 설契이 은殷나라의 시조이며 성姓이 자子임을 알았다. 한국 및 중국(차이나) 식으로 풀네임 (Full Name 이름, 성姓 모두 다 표현한다는 말)을 쓰면 자설子契이다. 설자契子가 아니다. 영미식은 이름이 먼저오고 성姓이 뒤에 온다. 연아=이름=first name=given name 이고'family name=last name'이 '성姓'이다. 부, 조부로부터 내려온 바로 그 '성姓'이다. 영미식으로는 설자契子 가 된다. 춘추천국시대 유명한 사상가들을 기억해 보자. 공자子, 맹자子, 노자子, 장자子
1. 들어가는 말1) 차이나의 역사서는 편찬시기의 선후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증보 삭제 변경된 경우가 많아 먼저 출간된 역사서를 최우선하지만 항상 비교분석하여야 한다. 2) 일곱 번째 글 “ 하북성 보정시와 하북성 정주시에서 나온 옥갑. 부여와 은나라(은허)의 관계는? 차이나 역사책으로 찾아본 부여. 부일사학 국사편찬위원회 (7)”에서 세 역사서를 비교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삼국지)는 285년경 발간되고 450년경 증보되었다. 후한서 동이전 부여조(후한서)는 430년경 발간되었다. 진서 4이열전 부여조(진서)는 648년경
반려견 구름이와 찬바람 뚫고 눈내린 산길을 걷습니다너무 추워 구름이가 목덜미 털을 곧추세웁니다추위를 털어내려 몸을 마구 흔들기도 합니다할로윈 10.29 참사로 희생된 죄없는 젊은 영혼들너무도 원통하여 이 추위 속에서 아직도 구천을 떠돌겠지요더 원통한 유족들 무너진 가슴 부여잡고 펑펑 울고정권과 언론의 공작으로 외면하는 국민 늘어나도관심에서 멀어져 추위보다 더 외로워져도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고 안전한 나라가 자리잡으리라는 믿음그 믿음 감싸안으며 한파경보 속을 걷습니다마을을 둘러싼 구학산과 주론산 산길에 올라조그
2022.10.29. 지하철에서.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내 앞에 중년 이상의 백발이 성성한 분께서 서셨다. 나는 보통의 80년대생으로 커서 도덕적인 의무감에 일어나 자리를 내어 드렸다. 그런데 할저씨께서 본인이 앉으시지 않으시고 멀리 뒤쪽에 누군가를 불러서 앉히셨다. 아마도 부인이신 것 같았다. 내 눈엔 앉으셔야 할 분이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더 노쇠한 다리로 서 계셨고 그래서인지 더 지긋하다고 여겼나 보다. 여하튼 아주머니께서 앉으셨다. 할저씨께서 연로해 보이셔서 딸을 앉힌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딸을
지음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은 까닭은종자기의 죽음을 슬퍼하며더 이상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어요. 친구란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람이겠지요.친구 가운데 지인은 많지겠만 지음은 얼마나 될까요?참 어려운 질문이지요. 전장에서 세 번이나 도망한 관중을다른 이들은 비난했지만포숙아는 관중의 효심을 칭찬했다지요.둘 사이는 틀림없는 지음관계겠지요. 자문을 해봅니다. 나는 지음이 얼마나 될까?아니 한 친구라도 있을까?나 또한 누구의 지음일까?이래저래 참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내가 다른 이의 지음이 되려고노력하는
1. 들어가는 말1) 먼저 지난 호 글을 요약하자해하 (바다같은 강)은 북에서 남으로 5개 지류가 천진시에서 합쳐져 황해로 들어간다. 운 運=运, 위 衛=卫 로 같은 글자이다.①북운하 北运河(= 북경시), ②영정하 永定河(=북경시), ③대청하 大清河(=보정시= 북경시 바로 남쪽), ④자아하 子牙河 [석가장 시(=보정시 바로 남쪽)과 형대 시. 한단 시 바로 위), ⑤남운하 南运河. 5개 지류이다. 2) 남운하 南运河 는 장하漳河와 위하卫河가 합쳐진 강이고 장하漳河는 탁장하와 청장하가 합쳐진 강이다. 장하漳河와 위하卫河가 한단시와 유
1. 들어가는 말 지난 호까지의 글을 요약하자. 만약 현재의 한단邯鄲시가 ‘사기’가 쓰여진 시대의 한단邯鄲이었다면 연燕 은 한단시의 북쪽 지금의 석가장 시가 되고 , 석가장의 동북쪽이자 지금의 북경시 서남쪽 보정시 일대가 오환·부여가 되며, 석가장시 동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지금의 산동성 일대가 예맥(穢貉), 조선(朝鮮), 진번(眞番)이 된다. 運=运1) 부여는 연燕 북쪽에 인접해 있다. (석가장 시 북쪽 보정시 및/혹은 보정시의 북쪽 북경시= 북원하, 영정하, 대청하)2) 연燕은 발갈勃碣사이에 있는 도시이다. (연燕 =석가장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