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내게 사과하기는커녕 뻔뻔하게도 나만 보면 징그럽게 웃는 그를 마주치기가 역겨웠다. 같이 일하던 선배 언니에게 K의 추행 사실을 알렸을 때, 그녀는 내게 말했다. '운동을 계속하려면 이보다 더한 일도 참아야 돼.'"'미투'(MeToo) 캠페인을 널리 알린 최영미 시인이 9년 만에 발표한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통해 바라본 1987년 운동권 문화의 풍경이다.'운동'이라는 목적 앞에서 도덕률, 공정성, 사회규범 등 상위 가치가 폭력적으로 무시된 집단주의 시대를 저자는 이렇게 회고했
"사진을 찍다 보면 무언가 느닷없이 가슴을 치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상념과 연결되고 뒤섞이다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소방기술경연대회에 나온 마네킹을 보고 사진기사 강윤중은 이런 생각을 했다. 다친 인간을 대신해 등장한 마네킹이 질질 끌려가서 내팽개쳐지는 모습에 왠지 모를 짠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그는 2000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사진기사로 20년간 활동하며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을 모아 신간 '뭉클'을 펴냈다.묵직한 카메라와 기다린 렌즈로 촬영한 취재현장의 사진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길지 않은
미디의 시대다. 이제 작곡은 오선지에 안 한다. 악보를 적을지도 모르고 읽을지도 모르면서 음악을 하는 사람도 천지다. 그걸 따지면 구시대적이라고 한다. 오케스트레이션? 미디, 가상 악기를 이용하면 악보에 적을 필요도 없다. 어설픈 실연보다 훨씬 나은 품질로 들을 수 있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선배 대가들이 해 놓은 위대한 작품들만 편집하고 제공되는 악보만 샘플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대가의 작품 못지않게 짜깁기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뭐 하러 눈 빠지고 힘들게 手 작업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국내에선자신이 쓴 곡을 오케스트라 실연으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구한말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민족의 혼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렵사리 독립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족 간 총을 겨누게 되었다. 국가 재건의 기둥이 될 많은 젊음이 무의미한 총탄 아래 넋을 달리 했으며 내 가족과 이웃들이 죽어갔다.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초토화 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미래를 가늠키 어려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살아남았다. 아주 오래전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 전쟁 속에서도 버텨냈으며,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민족의 뿌리까지 바꾸려던 일제의 침탈 속에서 꿋꿋
등단 50주년을 맞은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75)이 처음으로 동시집을 펴냈다. 도서출판 문학세계사는 최근 동시집 '엄마가 봄이었어요'를 출간했다고 밝혔다.작가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방식잉 동시에서 강점을 나타낸다.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많은 아이들을 만난 경험이 동시에 진솔하게 묻어난다.동시집에 수록된 대부분 시는 다른 지면에 발표하지 않은 신작이다.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어른들을 상대로 하는 시를 쓰면서 더러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쓴 시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렇게 따로 동시집을 내는 일
나와 함께 살던 고양이가 탐정이 된다면?주목받는 젊은 작가 박솔뫼 신작 장편소설 '고요함 동물'(창비 펴냄)은 이런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한다.몽환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분위기다.추리 소설 기법과 판타지 기법을 절묘하게 배합하며 톡톡 튀는 문체로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낸다.고양이 '차미'가 해결하는 사건도 심각하거나 끔찍한 게 아니다. 주인공 '나'는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일곱 가지 사건들에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뭔가 불쾌하고 찝찝한 꿈을 꾸고 고민하는 '나'에게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규율과 통제가 엄격히 이뤄져야하는 조직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시대 군대도 마찬가지였다.1808년 편찬한 책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따르면 탈영병은 곤장을 맞았다. 훈련도감 군인은 수도 수비를 맡으며 탈영 시 처벌이 엄격했다. 초범은 곤장 50대, 재범은 사형인 효시형을 받았다. 병영 물건을 도둑질 하면 바로 극형에 처해졌다.한국학중앙연구원 윤진영 책임연구원은 한중연이 펴낸 12번째 고전탐독 '군영 밖으로 달아난 한양 수비군'에서 "훈련도감의 도망병 처리가 가장 엄격했던 것은 아마도 도망병이 속
19세기 중반 런던을 잠식했던 콜레라의 발생과 전염, 소멸경로를 빠짐없이 기록해 세계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감염지도'의 탄생 과정을 자세하게 복원한다.1854년 런던 보르드 가에 콜레라가 창궐하던 당시, 비위생적 공간에 가득한 독기 때문에 병이 발병한다는 '독기론'이 전염병에 관한 지배적 이론이었다.이 책은 외과 의사 존 스노, 그리고 그에게 결정적 도움을 준 교구목사 화이트헤드가 콜레라가 수인성 전염병임을 밝혀내며 감염지도의 탄생, 그리고 도시의 공중위생 문제와 그 해결책을 다각적으로 그려냈다.스노와 화이트헤드는 이성을 마비시
이탈리아 양대 문학상 수상자인 저자는 물리학 박사로 소설가의 제한 없는 사유와 과학자의 엄정한 시선으로 전염병이 새로운 전염병이 불러온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한다.저자는 "전염의 시대"라고 현재를 진단하면서 "이 전염의 시기가 폭로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 귀를 막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저자가 생각하는 전염의 시대 배경은 초연결 사회다.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망은 바이러스의 수송망이 되었고 현대사회가 성취한 업적은 도리어 형벌이 되었다.또한 전염의 시대는 보편의 고독을 불러왔지만, 한편으로는 바이러스 앞에 인류는 모두 공평하고 각자의 운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그린 만화가 나왔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창비가 펴낸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전 4권)로, 만화가 김홍모, 윤태호, 마영신, 유승하가 각각 제주4·3,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다뤘다.깅홍모는 10년 전 제주도로 내려가 터를 잡고 '빗창'에서 제주 해녀들의 항일시위와 4·3을 관련하여 해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4·3을 기록한다.'야후', '이끼', '미생' 등의 작품을 그린 윤태호는 4·19혁명을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시선으로 '사일구'를 선보인다
시중에 널린 유튜브 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일주일에 2개 이상, 꾸준히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시청하는 사람들도 누구나 알만한 정보들이다.이 책은 그런 단순한 원리를 넘어 자신의 영상이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잡아 2020년 유튜브를 시작하려는 2세대 크리에이터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던져준다.최근 많은 이들이 유튜브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는걸까? 언론에서 접하는 성공한 유튜버들을 접하며 아무런 생각과 계획없이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목적과 방향성을
편집주간·편집장·출판사 대표에 오른 베테랑 편집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쌓은 경력과 '편집의 철학' 등을 살펴본다.고미영 이봄 대표, 김수한 돌베개 편집주간, 박활성 워크룸프레스 대표, 신승엽 1984Books 편집장,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등 1인 출판사부터 대형 출판사까지 다양한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다.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출판산업의 우울한 전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편집자로서 '기본'을 강조한다. 독자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고미영 대표)이다.이들은 편집
저자는 1994년부터 편집자로 일하며 "내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쓰며 일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출판사를 차렸다고 한다.하지만 막상 출판사를 차리고 보니 편집자로 근무할 때와는 매우 달랐다. 기획서를 작성하고, 원고를 살피고, 거래처와 계약하고, 계산서를 끊고, 정해진 날짜에 돈을 입금하고, 책을 홍보하기까지 책 한 권이 태어나기까지 모든 과정들과 이후 일들까지 꼼꼼히 처리하고 끝까지 책임져야 했다.먼저 같은 길을 걸은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직접 부딪히고 실수하며 새롭게 배우면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으면서 뒤에 이어올
저자는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으로 남극 장보고기자 주변의 육상과 연안생태계 연구에 주력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남극 식물 세계를 들려준다.남극은 눈과 빙하로 딮인 세상이지만 닥 2%의 땅에서 녹색식물과 지의류가 광합성을 하며 자라난다.그렇기에 펭귄, 도둑갈매기 등 남극 동물에 관한 연구서는 더러 있지만, 남극 식물에 관한 책은 찾기 힘들었다.남극의 주류 선태식물(이끼식물)은 100여종에 이르고 이밖에 현화식물(꽃피는 식물) 2종, 그리고 남극 육상식생을 이루는 지의류 역시 400여종이 자란다.이끼는 '별것 아닌' 것으로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서구 문명과 역사의 진전에 대해 논한다. 역사의 옳은 편, 즉 오른편에 섰기에 세상은 오늘처럼 살기 좋아졌고 옳은 편을 버리는 집단으로 인해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3천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서구 문명이 옳은 편이고 멸망한 집단은 그 반대편에 선 세력으로 그 실체는 시기마다 다르다.저자는 서구 문명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으로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유대기독교와 아테네로 상징되는 이성이라고 정한다. 다만 "종교적 가치에만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우리는 신정국가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이성만
저자는 선물 받은 선인장을 한 달 만에 말려 죽일 정도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그런 그에게 불현듯 길냥이 '나무'가 나타나 한 지붕 아래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그 고양이는 나무 타는 걸 좋아해서 이름이 '나무'였고 일산 아파트 단지에서 제법 유명했다. 많은 이들이 나무에게 호감을 가졌고 저자 역시 먹을 것을 챙겨주며 관심을 보이는 캣맘 노릇을 하다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 때문에 길냥이들 사이에서 따돌림과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 안쓰러워 식구로 받아들이게 된다.그렇게 '집사'가 된 저자는 나무와
부자(父子)가 함께 온라인 게임을 하며 자폐증을 이겨나간다.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소년의 블록'(달의시간 펴냄)은 영국 신예 소설가 키스 스튜어트의 데뷔작이다.평범한 영국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샘은 여덟 살이 되는 자폐아동이고 아빠 알렉스는 아들을 사랑하나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이다. 아이의 발작을 피하기에 급급한 남편에 지친 아내는 어느 날 시험 별거를 선언한다.평소 밖에서 생활하다가 토요일에만 집으로 돌아와 샘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조건이었다.이 무렵 갑자기 해고를 당한 알렉스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운명
홀로 세상의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책을 제작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책들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서관에 기증해도 큰 행복감으로 가득할 것이다.올해 제1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나무옆의자 펴냄)는 상상으로 가득한 지적 놀이터이다.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장편소설이다. 가상의 도서관에 소장된 가상 희귀본을 소개하는 안내서 형식을 취했다.사람들은 직접 쓴 원고를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에 기증한다. 하지만 재정난과 장서 부족으로 결국 도서관은 문을 닫게 되고 도서
미국 듀크대 마이클 하트 교수는 이탈리아 출신 좌파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와 같은 성향으로 '제국', '다중', '공동체', '선언'에 이어 함게 쓴 학술서이다. '21세기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제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전작 제목을 통해 두 사람이 고안한 생각이 대략적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지배권력이 공동체 파괴를 시도하면, 다중이 제국에 저항해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마찬가지로 신간에서도 집회를 의미하는 제목 '어셈블리'를 주목할 만하다. 어셈블리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저항과 투쟁이 이어지며 이뤄진 정치적
4년제 음악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각 학기마다 과제곡이라는 명목하게 여러 악식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양식이라는 게 그에 맞춰 하나 간신히 연주하고 써 봤다고 해서 완벽하게 체화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건 말해봤자 무의미하다. 즉 작곡도라면 적어도 가곡이라면 10개는 써보고, 푸가도 100개, 낭만 화성으로 피아노 곡이나 기악곡을 여러 곡 써보면서 학습해서 숙달해야 되는 도제식, 수공예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Handwerk, 예술을 뜻하는 ART의 어원이다.) 기악연주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