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1) 5제중 1번 누런 임금 황제黃帝는 ‘사기 5제 본기’에 ‘소전少典 씨족’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같은 책에서 4번 5제인 요堯 임금은 어느 씨족인지 ‘사기’에 기록이 없다. 같은 책에서 마지막 5번 5제인 순舜 임금은 누런 임금 황제黃帝의 8대 손자이면서 이상하게도 요堯 임금 두 딸을 한꺼번에 아내로 맞는다. 2) ‘사기’ 만으로 쉽게 추론하면 순舜 임금은 누런 임금 황제黃帝의 8대 손자로, ‘같은 소전少典 씨족’으로서, ‘소전少典 씨족’이 아닌 요堯 임금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았다고 하겠다. 3) 그러나 맹
1. 들어가는 말* 舜 生於 諸風 移於 負荷 卒於 鳴條 諸風· 負荷· 明條 東夷之地 舜 東夷之人 也 《맹자(孟子)》이루장구 하(離婁章句下)순은 제풍에서 태어나고, 부하로 이사하였으며, 명조에서 죽었다. 제풍, 부하, 명조는 동이의 땅이다. 순은 동이 사람이다. (책 ‘맹자’는 기원전 300년 경에 쓰여진 책으로 알려져 있다.) 1) 대한민국 역사학계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합쳐서 사학과, 서양사학과는 제외할 수 있다. 이하 ‘강단사학’이라 한다)는 ‘치우’에 대해서 아주 냉소적이다. 대한민국 일등주의 = 국수주의자들로서 ‘제대로 공
1. 들어가는 말1) 모계혈족 ‘소전 씨’ 이고 부계 혈족 ‘공손’이고, 이름은 헌원 혹은 황, 현대 대한민국식으로 표현하면 ‘소전공손헌원’ 혹은 ‘소전공손황’ 이다. 서구 식으로 표현하면 이름이 먼저오고 성이 뒤에 오니 ‘헌원공손소전’ 이 되겠다. ‘헌원’, ‘공손’, ‘소전’의 한자 말의 의미를 잠깐 보자. 2) 소전 공손 헌원 少典 公孫 軒轅에서 公孫 은 임금이나 제후 높은 사람의 후손이라는 의미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부러 갖다 붙인 느낌이 든다. 3) 헌원 軒轅에서 軒 은 집, 추녀, 처마라는 뜻도 있지만 수레라는
ㅁ인생을 위로받게 하는 책이 나온다. 다.어디를 봐도 막힌 듯하고, 힘들고, 벅찰 때가 있다. 괜히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인생은 어느 순간도 만만할 때가 드물다. 신광철 작가는 말한다. "인생을 위로해주는 책입니다. 사는 게 힘들지요. 인생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힘이 있는 책입니다. 우선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거든요."신광철 작가는 인문학 작가로 활동 중인 중견작가다. 작가에게 물었다. 는 어떤 책입니까?"는 동화 형식을 빌린 지혜서라 할 수 있습니
1. 들어가는 말1) 시리즈를 쓰는 중 티스토리에 연재를 하고 있는 ‘수구리’님의 2022년 11월 5일 자 글 ‘진시황의 진나라 시대 고조선 영토’를 보게 되었다.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이를 참조하여 시리즈를 계속 쓸 예정이다. https://tnrnfle.tistory.com/m/22 2) 국사편찬위원회(‘국편위’)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신뢰가 낮아 원문은 차이나 사이트(国学宝典《三國志 裴松之注》·三國志卷三十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第三十https://guoxue.httpcn.com/html/book/CQCQRNKO/KOIL
이 글은 제법 길다. 제목만 먼저 보자. 1. 주周나라 무武왕이 은殷나라 평정 후 700㎞ 떨어진 기산으로 바로 돌아간 것은 의문투성이다. 사기 주본기 무武왕 단락 중간 부분을 보자.1) 은나라 여론을 좋게 만들다.2) 주나라 무왕 군대를 해산하고 돌아가다.2. 논공행상을 하면서 후손들을 각자의 고향에 봉하였다. 지명 추적의 좋은 자료가 된다. 전국 시대 각 나라들의 왕의 선조들은 주나라 무왕 시절 친척이었거나 신하였다. 전국시대의 전쟁은 골육상쟁이었다.3. 주 무왕의 심야 고백 그리고 떠나다? 1. 주周나라 무武왕이 은殷나라 평정
1. 들어가는 말사마천의 ‘사기’가 역사를 정확히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를 토대로 재구성해 보자. 삼황오제시대를 거치면서 하·은·주는 순서대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은·주의 시조는 순임금 (오제 중 하나) 의 신하로서 동시대의 인물이었다. 주나라는 서안 서쪽 지역에서 융(서융)의 침입을 많이 받았고 하나라는 낙양에서 성장했다. 은(상)나라는 안양 일대에서 성장했다. 은(상)나라 탕왕이 기원전 18, 17세기에 하나라를 멸망시켰다. 하·은·주 공히 여러 부족들에게 ‘분봉(이 땅은 너의 것이다)’하면서 경쟁
1. 들어가는 말- 하夏나라 시조 [우禹], 은殷나라 시조 [설契], 주周나라 시조 [기棄=후직后稷], 진秦나라 시조 백익伯益의 아버지 [고요皋陶]는 동시대 · 동급이다. 순임금 (제 순)이 홍수를 다스릴 때 네 명의 똑똑한 신하가 있었다. “순이 우를 불러 명했다. “그대는 치수를 다스렸으니 그 일에만 힘써 주시오.”命禹(명우):「女平水土(여평수토),維是勉之(유시면지)。」 우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설(契)과 후직(后稷)과 고요(皋陶)에게 양보했다.禹拜稽首(우배계수),讓於契(양어설)、后稷(후직)、皋陶(고요)。 순이 말했다. “그
1. 들어가는 말. 주周나라부족의 시조는 후직(后稷) 기棄. 1) 기원전 1046년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3100년 전이다. 주周나라는 은殷나라를 침공하고 은殷나라 마지막 왕 紂의 배다른 형에게 제사를 잇게 하고 나라 이름을 송宋이라 했다. 다른 왕족 기자는 조선에 봉해졌는데 이후 기록이 없다. (사기 송미자세가) 2) 주周나라의 시조는 후직(后稷) 기棄 (1(황제)-1-1-1-1)이다. 성은 선조 황제를 본 받아 공손 이다. 공손 기棄 역시 황하 치수에 공을 세워, 요임금의 농관(農官)이 되었고 순임금에게 태(邰)에 책봉되어 후직
1.들어가는 말 ‘사기 오태백세가’는 “주나라 북쪽에 옛날 하나라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周나라부족은 어디에 있었을까? 2.주周나라부족은 서안 서쪽, 서북쪽 50~150㎞ 지역이 주된 근거지.1) 순 임금 제순帝舜은 “기棄, 인민들이 바야흐로 굶고 있으니 그대가 후직이 되어 때에 맞추어 백곡의 씨를 뿌리도록 하라”고 했다. 기棄를 태(邰)에 봉하고 후직이라 부르는 한편 희씨(姬氏) 성을 별도로 내렸다. (중략)帝舜曰:「棄,黎民始飢,爾后稷播時百穀。」封棄於邰,號曰后稷,別姓姬氏。后稷之興,在陶唐、虞、夏之際,皆有令德。공유가 죽자 아
‘사기 은본기’와 ‘진서 부여조’를 비교해 보자. - 1)의 ⑩ 과 2)의 ④에서 보듯이 흰 옷을 입고 이를 숭상하는 것은 같은 민족의 문화전통이다. - 은나라 마지막 왕은 보물과 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부여에서는 喪을 치르는 동안은 남녀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부인은 베로 만든 面衣를 착용하며 玉으로 만든 패물은 차지 않는다. [ 1)의 ②와 2)의 ④ ]- 옥갑 (부여왕이 죽은 뒤 입는 옥으로 만든 수의)은 차이나 보정시 일대에서 발굴되었다. 차이나는 한나라 왕족이라고 하나 의문의 여지가 많다.* 漢
1. 들어가는 말 1) 지난 글에서 설契이 은殷나라의 시조이며 성姓이 자子임을 알았다. 한국 및 중국(차이나) 식으로 풀네임 (Full Name 이름, 성姓 모두 다 표현한다는 말)을 쓰면 자설子契이다. 설자契子가 아니다. 영미식은 이름이 먼저오고 성姓이 뒤에 온다. 연아=이름=first name=given name 이고'family name=last name'이 '성姓'이다. 부, 조부로부터 내려온 바로 그 '성姓'이다. 영미식으로는 설자契子 가 된다. 춘추천국시대 유명한 사상가들을 기억해 보자. 공자子, 맹자子, 노자子, 장자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