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닮았다
아들아
나는 네가 공부 못하는 게
똥통 학교 다니는 게
재수 삼수 공부하고 공부해도
대학에 계속 떨어지는 게
너무 좋다 그래야 네가 나중 땀 흘려
몸으로 벌어먹고
피로 벌어먹고 살지
그래야만 어디에서 또 누군가
머리로 벌어먹고 입으로, 눈으로도 벌어먹지
하다못해 마음으로라도 벌어먹고 살 게 아니냐
아들아 그래서 나는 네가 골통이라도
오히려 기쁘다 우리 머릴 닮지 않고
발가락을 닮았으니 전혀
아프지 않다
시작 메모
어떤 아름다운 분께서 내 시를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연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좋은 시들이라고, 특히 이 시 ‘발가락이 닮았다’는 그 속에 담겨 있는 가치가 참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이 칭찬을 듣고서는 너무 기뻤지만 괜한 자만과 허영 속됨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것들 떨쳐 버리려 몇 시간이나 엄청 애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