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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소설]

오래된 기억 5-13 / 새벽녘

2021. 02. 01 by 김홍성

시집 ‘저녁에’는 2004년에 출판사 ‘홍익 21’에서 나왔다. 적음 형은 ‘홍익 21’에서 수필집도 낼 예정이었다. 내가 거처를 춘천에서 양구나 속초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을 그 때 적음 형은 조만간 나올 수필집에 게재할 발문을 하나 써달라고 전화로 요청했었다. 그것마저 사양할 수는 없었다. 노느니 염불이라도 한다는 심정으로 발문을 쓰기로 했다.

발문 원고를 전했던 날일까? 적음 형을 인사동에서 만났다. 적음 형은 개량 한복 같은 것을 깨끗하게 입고 있었다. 웃음소리며 너스레며 가끔 이윽히 주시하는 시선도 변함이 없었다. 거의 15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엊그제 만나고 또 만난 것 같았다. 

적음 형은 나를 홍익 21 사무실에 데리고 갔다. 지금도 인사동에 있을지 의심스러운 허름한 건물 2층 아니면 3층이었을 것이다. 그 때 전했을 적음 형의 수필집 발문 원고의 내용은 한 줄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른 작업들과 함께 하드 디스크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겠지만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조용히 멈춰버린 고물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를 복원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복원을 포기하고 망가진 컴퓨터를 버렸다.

훨씬 나중에, 그러니까 적음 형이 세상을 떠난 이후인 2016년에 대학 동문 C의 집에서 여럿이 가게 된 일이 있는데 그날 밤에 대학 후배 M과 같이 나타난 사람이 바로 ‘홍익 21’ 대표였다. 나는 적음 형의 수필집과 관련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홍익 21 대표는 적음 형을 문상한 몇 안 되는 측근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날, 그러니까 적음 형과 인사동에서 만나 ‘홍익 21’에 올라갔던 날이 적음 형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같이 있었던 시간은 15년 만의 만남 치고는 짧았다. 사무실에서 내려와 길에서 헤어졌기 때문이다. 적음 형은 어디 가서 대포라도 한 잔 하며 회포를 풀자고 했지만 나는 응하지 않았다. 다른 볼 일이 있으니 다음에 만나자고 말했다.

헤어질 때 나를 바라보던 적음 형의 이윽히 들여다보던 두 눈이 떠오른다. 멍한 듯 그러나 꿰뚫어 보는 시선, 적음 형은 그런 시선으로 내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미 마음이 떠난 옛 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멀어져 가는 내 뒷모습을 섭섭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잠 안 와 뒤척이는

새벽녘 그만

불을 켜고 일어나 가만히

앉아 있다

책을 읽을까(아니), 차나 한 잔(아니),

木石처럼 앉아 있는

두 뺨에

웬 일인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새벽녘 全文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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