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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소설]

오래된 기억 5-10 / 라스팔마스

2021. 01. 28 by 김홍성

 

보살의 나이는 적음 형 또래거나 한두 살 많아 보였다. 얼굴이나 표정은 가수 임주리와 비슷했다. 강한 인상 속에 처연함이 들어 있고, 바보처럼 순진한 표정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음성이나 창법은 가수 김추자와 비슷했다. 그러나 동종(銅鐘) 같은 울림이 있고 비애가 과장되지 않았다. 기성 가수 중에도 그런 가수는 흔치 않을 것이다. 나는 존경을 품고 보살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한 곡 더 청했다. 적음 형도 옆에서 오늘 더 잘하네. 한 곡 더 해봐라.’ 하면서 거들었다.

 

한 곡 더 했을 것이다. 아니 두 세 곡 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노래들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고 없다. 깼던 술이 다시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날 그 자리였는지, 아니면 한참 뒤에 인사동 길거리에 만났을 때였는지 모르겠다. 큰 보살이 나에게 푸념을 했다. 우리 스님이 돈 가져 온다더니 반년이 되도록 안 가져 온다는 얘기였다. 집세를 애기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큰 절 스님이고 책도 내서 잘 팔린다기에 사위 삼았는데 생활비를 안 내놓는다는 얘기였다. 사위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노래하는 보살이 부인이라는 얘기 아닌가?

 

큰 보살은 딸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외동딸인데 어릴 때부터 노래를 하도 잘 해서 별명이 애기 가수였다고. 큰 보실은 안동 지방에서 고서화를 수집하여 인사동 가게에 넘기는 일로 번 돈을 모두 딸에게 쏟아 부었다.

 

딸은 스무 살 무렵에 가요 학원을 1년 쯤 다니다가 해외 순방 공연단 오디션에 합격하여 단원으로 출국했는데 얼마 후 소식이 끊겼다. 딸이 해외 순방 공연에서 돌아오면 텔레비전 쇼에 나올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해외에서 소식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고 했다. 소식이 오든 딸이 오든 뭔가 오겠지 하면서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며 기다린 세월이 1년이 넘었다고 했다.

 

불공 덕택에 딸이 돌아왔다고 큰 보살은 말했다. 돌아온 딸이 딴 사람처럼 변한 것에 놀랐지만 살아서 돌아 온 것이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리 물어도 말하지 않더라고 했다. 돌아온 이후에는 외출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뭘 하는지 몰라도 그냥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딸이 외국 교민 사회를 순방하며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는 정도는 큰보살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훗날 적음 형에게 물으니 월남에도 갔었고, 라스팔마스에도 있었는데 비자 관련 문제로 어딘가에 억류되어 있었을 거라고 했다. 어떻게 만났는지, 얼마나 같이 살았는지, 앞으로도 계속 같이 살 것인지 묻는 나에게 적음 형은 잔이나 비우라고 했다. 적음 형은 마침내 가정을 이룬 것이 흡족한 듯 했다. 천애고아나 다름없이 자란 적음 형은 이제 부인도 생기고 장모도 생겼으니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나를 그 집에 데려 갔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도 데리고 갔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노래하는 보살은 적음 형보다 훨씬 먼저 세상을 떠났다. 큰 보살에 대해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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