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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소설]

오래된 기억 5-11 / 닭울음소리

2021. 01. 29 by 김홍성

 

적음 형이 여생을 마친 곳은 경북 봉화 땅이었다. 물야면 수직리 야산 기슭의 민가에 일소암(一笑庵)이라는 당호를 달고 살았다는데 무슨 인연으로 거기까지 흘러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댈 데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시인통신에 가끔 들렀던 화가 부부가 나에게 적어 준 주소도 그 쪽이었고, 멀지 않은 산에 있는 큰 절 주지가 적음 형의 도반이라는 얘기 들은 적이 있다. 그 스님은 절에 들어오는 시주로 적음 형을 도왔을 것이다. 일소암 초기에는 한 보살이 적음 형을 시봉했으나 얼마 못가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다. 시와 예술을 좋아했던 그녀는 적음 형을 만났을 때 이미 시한부 생명이었다고 들었다.

적음 형이 봉화 땅에 살 때 나는 네팔 땅에서 살았다. 평생을 거기서 살겠다는 모진 마음을 먹고 떠났는데 9년 만에 돌아왔다. 내가 카트만두에서 식당을 차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러니까 네팔에 산지 8년째였던 어느 날 수신자부담을 원하는 국제전화가 왔다. 상대가 적음 형이었기에 수신을 거부할 수 없었다. 못 본지 10 여년도 넘은 터라 할 얘기가 많았으나 긴 애기는 못 했다. 적음 형은 봉화 땅에서 살고 있으며, 가끔 서울에 간다고 했다. 삼청동에서 함께 살았던 ‘노래하는 보살’은 오래 전에 타계했으며, 봉화 땅에서 함께 살았던 보살도 저 세상으로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내 니한테 가서 좀 살아보면 안 되나?’했다.

늘 후회하지만, 나는 거절을 모질게 할 때가 있다. 그 때도 그랬다. ‘안 돼 형, 형은 여기서 적응 못해’라고 대답했다. 적음 형은 무척 섭섭해 하면서 ‘니 거기서 잘 산다 아이가? 그냥 한 번 놀러 가는 것도 안 되나? 했다. 숙소도 있고 밥은 식당에서 먹고 술값은 얼마 안 들고 하니 오라고 해도 되는 거였다. 사실 그렇게 다녀간 분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적음 형을 시봉하는 일은 두려웠다. 혼자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마음이 안 놓일 게 뻔했다.

부인과 함께 다녀가신 K 선생은 나더러 퍼포먼스를 도와 달라고 했었다. 카트만두 외곽의 보우다나트에 있는 크고 높은 탑의 주위를 발가벗고 계속 달릴 터이니 뒤에 따라오면서 페인트를 뿌려 달라는 주문이었다. 나는 펄쩍 뛰었다. ’거기는 네팔의성지입니다. 매일 수천 수 만 명이 예배 드리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둘 다 추방당합니다. 선생님이야 다시 안 오시면 되지만 여기서 터 잡고 사는 저는 망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K 선생은 집요했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고 화가 난 K 선생은 다른 교민을 찾아가 같은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도 퍼포먼스로 인하여 추방당한 전력이 있는 K 선생은 카트만두에서 해 보려던 퍼포먼스를 끝내 못하고 귀국했다.

적음 형도 집요했다. 전화가 또 왔는데, 용건은 네팔 땅에서 살고 싶으니 도와 달라는 거였다. 어느 날은 술이 거나한 목소리로 ‘거기 가면 장가갈 수 있나? 예쁘고 착한 네팔 여자 중매 좀 해라’하고는 예의 그 웃음을 터뜨렸다. ‘형, 네팔 여자들은 네팔을 떠나고 싶어서 국제결혼을 하는 겁니다. 부자만 좋아해요. 여기서 데리고 살 가난한 남자와는 결혼 안 해요. 그러니까 꿈 깨셔요.’ 이랬는데 잊을 만하면 또 전화해서 중매 좀 하라고 졸랐다.

당시 카트만두의 한국인 여행자들 중에는 맞선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로는 스무 명 안짝의 단체가 오기도 했다. 사설 중매 업체가 은밀히 움직인 지 이미 오래였다. 한 업체에는 미혼 여성들의 사진이 붙어 있는 중매 신청서와 자기 소개서가 책상 위에 두툼하게 쌓여 있기도 했다. 적음 형을 카트만두로 불러서 거기 데려가면 중매가 금방 성사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음 형이 그 여성을 행복하게 해 줄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남편도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적음 형은 몰랐던 걸까?

적음 형이 남긴 육필 시집 ‘저녁에’를 골방에서 찾았다. 홍익 21 출판사에서 2004년에 냈다. 어쩌다 이 시집이 나에게 왔는지는 잊었다. 연작시 ‘새벽에’가 거기 실려 있다.

三生을 지나서도

詩人임을 잊지 마세요

(이런 편지를 받았다)

꼬끼오 하고 몇 번 씩이나

닭울음소리가 들렸다

三生 詩人 …….

부끄러움이 전신을 휩싸고 도는

이 새벽에

- ‘새벽에1’ 全文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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