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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소설]

오래된 기억 5-12 / 一笑庵

2021. 01. 29 by 김홍성

 

춘천에 살 때였으니 10년 전인가 보다. 귀국 초기부터 연락하고 지낸 후배 K의 전화가 왔었다. 그는 적음 형의 고관절이 부러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곧 간병하러 갈 거라고 했다. 그는 같이 갈 생각은 없냐고 묻기도 했는데 나는 못 간다고 대답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귀국조차 아직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움직이는 게 도무지 귀찮았음은 물론 적음 형의 전화를 받는 일도 달갑지 않았다.

귀국 이후 나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따져 보면 그 모든 일이 누구나 겪는 흔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때 점점 더 분노에 휩쓸리고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술이 취하면 사람들이 그리웠다가 술이 깨면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던 때였다. 그래도 적음 형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그 후배에게 귀로에 춘천에 들러 달라고 했었다.

얼마 후 후배 K가 춘천에 도착했다. 지독한 술꾼이었지만 술을 끊은 지 여러 해가 지났던 K는 아주 맑은 얼굴로 나타났다. 짜증스럽던 음성도 부드럽고 맑게 변해 있었다. 어찌 보면 성직자처럼 변한 그가 전한 바에 의하면, 적음 형은 워낙 궁핍한데다가 고관절 부상까지 입어 운신조차 어려운 처지에 정부의 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역의 통장을 지내면서 복지 혜택을 받는 절차를 잘 알고 있었던 K는 예정보다 오래 일소암에 머물러야 했다. 부상으로 운신이 어려워진 적음 형을 부축하여 구미의 병원에도 다녀왔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담당의사가 발급한 진단서 등의 서류가 필요한데 공교롭게도 적음 형의 고관절을 진료했던 의사가 직장을 구미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누가 알려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 후 적음 형의 전화가 왔다. 네팔 식당에 전화를 했더니 종업원이 ‘차이나, 차이나’를 반복하기에 중국에 갔다는 얘기인 줄 알았다고 했다. 또 전화했는데 여전히 ‘차이나, 차이나’ 하더라며 중국에는 왜 그리 자주 갔냐고 하면서 중국에도 식당을 냈던 거냐고 했다.

웃음이 나왔다. ‘차이 나’는 ‘없다’는 네팔 말이라고 알려 줬더니 적음 형은 크게 웃었다. 적음 형은 나에게 보고 싶다고 했다. 보고 싶으니 한 번 오라고 했다. 나도 한 번 가고 싶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잊곤 했는데, 전화는 계속 걸려 왔다. 잊을 만하면 오고, 또 잊을 만하면 오는 전화의 용건은 그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소암에 다녀가라는 것이었다.

네게 준

한 편의 詩

그 詩의 어느 구절이

지금 혹시

네 아픈 혼의

琴線을

건드리고 있지나 않은지

그래서 봄날 밤

귀촉도처럼

피울음 뜯지나 않은지

네게 준

한편의 詩

그것은

아주 먼 옛날

너의 옷고름에 이쁘게 매어 준

가느다란 은반지로 흐느낄 뿐이다

이제, 닭이

새벽 닭이 …….

- ‘저녁에 4’ 全文

적음 형은 이 시를 一笑庵에서 썼을 거다. 세상 떠나기 10년 쯤 전인 쉰 살 무렵, 一笑하고 또 一笑해도, 껄껄 클클 아무리 웃어 봐도, 어떤 저녁이나 새벽에 문득 찾아오는 그리움이 왜 없었겠는가. 적음 형의 나이 어느덧 쉰을 지나고, 새장가 가는 것도 포기하고, 생을 마치는 나이 예순셋이 되어갈 즈음에는 그리움이 그쳤을까? 흐느낌이 그쳤을까?

적음 형의 임종 때 나이를 훨씬 건너서 살고 있는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한다. 적음 형은 나이가 들수록 귀촉도 우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새벽에 이르러서는 흐느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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