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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소설]

오래된 기억 2-14 / 방석 싸움

2021. 01. 06 by 김홍성

혜화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아이들 중에 이름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몇 안 된다. 모두 마지막 과외를 같이 했던 아이들인데 그중 하나는 성이 진 씨이다. 진은 아버지가 정신신경과 의사라고 했다. 집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맞은편에 있었는데 ,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이었다. 그 집에서 남녀 예닐곱 명이 함께 과외를 했다.

 

또 다른 아이는 명륜동 성균관 대학교 올라가는 큰 길 오른쪽의 한옥에 사는 아이인데 이 아이는 성이 이 씨이다. 이 아이의 집에도 자주 놀러 갔던 것 같은데 집이 늘 조용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기억은 없다. 또 한 아이는 마산에서 유학 온 아이인데 누나 등 형제들과 함께 낙산 비탈의 허름한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이 아이는 성이 양 씨이다.

 

여자 애들도 서너 명 있었는데 한 아이의 이름만 기억난다. 성은 김 씨다. 혜화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 가는 언덕 위에 있는 이층 양옥집에서 살았다. 여자 애들 중에 키가 제일 컸으며 얌전한 아이였다. 명륜동 사는 '이'가 얘를 은근히 좋아했다고 기억된다. 이는 김의 걸음이 팔자걸음이며 부자가 될 걸음이라고 제법 아는 체를 하기도 했다.

 

밤새기 공부를 한답시고 남자 애들만 넷이 과외방에 남아 있던 그 날 밤에 이와 나는 몸싸움을 벌였다. 여자 애들이 각자 집에서 가져다가 과외방에 놓고 쓰는 개인 방석 때문이었다. 내가 잠시 누워 쉬려고 방석을 접어서 베고 눕자니 높이가 안 맞아서 다른 방석 하나를 더 집어다가 얹었는데 그게 김의 방석이었던 것이다.

 

이는 내 머리 밑에서 그 방석을 빼서 가슴에 안으면서 이건 안 돼, 내 꺼야했는데 나는 그 때까지도 그게 김의 방석인 줄을 몰랐다. 이는 나보다 체구도 작았으며 여러 모로 연약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화가 난 나는 내가 베었던 내 방석을 들고 일어나 그걸로 이를 후려쳤다. 그래서 싸움이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골목에 나가서 싸우라고 하여 우리는 골목으로 나가서 가로등 밑에서 싸웠다.

 

내가 졌다. 이는 많이 싸워본 녀석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이의 밑에 깔렸고 이는 주먹을 들어 내 코를 겨냥한 후 졌지? 졌지? ’하면서 항복을 요구했다. 나는 졌다고 했고 이는 나에게 다짐을 두었다. 다시는 그 방석에 손대지 말라고. 그 방석은 자기가 맡았다고.

 

방석과 관련된 그 날 이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이와 양은 학교가 각각 계동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가끔 만났다. 또한 이의 집이 삼청동으로 이사 온 이후에는 삼청동 집에도 자주 놀러 갔지만 고등학교 이후로는 만났던 기억이 없다. 진은 이민 갔다는 소문을 들었고, 김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나중에 계동 할머니 집에서 성북동 큰아버지 집으로 거처를 옮긴 후 혜화동 동성중학교까지 걸어서 통학할 때 김의 집 앞을 지나노라면 김을 만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한 번 쯤 초인종을 눌러 볼 수도 있었겠지만 용기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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