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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탈출]

잠겨죽어도 좋으니 밀려오라

2020. 12. 21 by 이주형 전문 기자

잠겨 죽어도 좋으니 밀려오라

 

최근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왼쪽 눈의 안압이 위험 수치로 높아 졌으니 이젠 술을 멀리 하라는 전언이었다. 하지만 나는 못 지킬 약속은 하지 않는다. 노력은 해 보겠다 하고 나왔다. 올려다본 하늘은 뒤지게 맑다.

시큰하게 흐릿한 눈 속 초점이 안 맞는 술병을 보며 둘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나는 본디 술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비효율적인 것을 혐오했다. 굳이 돈을 들여가며 몸을 망치고 중독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제 주량을 감당하지 못해 어불성설이 되는 꼴을 보면 우스웠다. 숙취에 시달리며 다음에도 또 술을 마시면 자기가 개라는 친구를 비웃기도 했다.

그럼에도 터닝 포인트가 있었으니 서울에서 자취 중 이명에 시달리며 원인 모를 편두통에 괴로워하던 때였다. 고독속에서 머리를 짓이기는 듯한 고통.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도 철저한 이방인. 비장애인들과 공감대가 없으니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 불시착한 표류자. 가슴이 먹먹해지는 고통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 때 생각난 것이 술이었다. 소주를 들이켰다. 토한 만큼 계속 해 우겨 넣었다. 괴로운 목 넘김에서 역함이 느껴질 때 두통은 완화돼 역설적으로 편안했다. 어느 순간부터 의식을 잃었다. 그 날은 처음으로 중간에 깨는 일 없이 깊이 잠든 밤이었다.

이후 매일마다 최적의 효율로 소주 두 병,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 뻗기 일쑤였다. 나름 술을 끊어보려고도 했으나 이 긴 밤을 혼자 보낼 자신이 없었다.

술을 마시면서 슬퍼지고 화나고 들뜨는 정신 사납고 생소한 이 모두가 내 감정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되려 즐겁기까지 했다. 그렇게 서서히 잠겼다.

현재는 건강을 생각해 양주로 갈아탔다. 지금도 옆에 두고 글을 쓰고 있다. 글이 막힐 때마다 한 모금씩 홀짝이고 있으면 미래의 내가 쓴 결과물의 편린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왼 눈의 실명 위협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이제 와 감각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문득 지식을 얻기 위해 미미르의 샘에 기꺼이 눈을 바친 오딘이 생각났다. 결심했다. 오딘이 그리했듯 나 또한 바치겠노라고.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작가병의 허세로 비춰질 수도 있고, 알코올 의존증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 상관없다. 나는 갈망할 뿐이다. 술에 잠겨 죽어도 좋으니, 나에게 밀려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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