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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평론가 기영노의 콩트]

남자 프로농구 대구 동양, 어떻게 32연패를 당했을까

2020. 12. 15 by 기영노 전문 기자
KBL 고양 오리온스 팀 로고. 대구 동양은 후에 고양으로 원고지를 옮겼다.(사진=고양 오리온스 제공)

 

남자 프로농구 대구동양, 어떻게 32연패를 당했을까

2020~21시즌 남자프로농구가 코로나 19 때문에 무관중으로 벌어지고 있다.

안양 KGC와 고양오리온 전주 KCC가 치열하게 선두다툼을 하고 있지만 원주 DB는 연패를 거듭하면서 최하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남자프로농구에서 32연패를 당한 팀이 있다.

2009-10시즌 남자 프로농구 정규리그는 우승 후보 였던 서울 SK와 인천 전자랜드가 각각 13연패를 당했었다.

만약 두 팀이 13연패를 당하지 않았다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은 가능했었다. 13연패가 그해 농구 농사를 망친 계기가 되었고, 각각 김진, 박종천 감독이 퇴진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 프로농구 최다 연패는 98~99시즌 대구 동양이 세운 32연패 였다.

승부를 먹고 사는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32번을 싸우는 동안 한 번도 팬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는 것은 엄청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프로스포츠는 홈 앤드 어 웨이로 치러지는데, 원정경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16연속 홈경기 패’는 보는 이들마저 안타깝게 했다.

대구 동양은 1998~99시즌을 앞두고 어차피 우승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주전 선수들인 김병철, 전희철, 박재일 선수를 군에 입대시켰다.

그들이 군에서 돌아오는 2001년 시즌 이후에 우승을 노리기 위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한 것이다.

2년 여 동안 정락영, 이인규, 이훈재 등의 기량이 좋아지고, 군에서 제대하는 김병철, 전희철 등 세 명의 선수를 합하면 우승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당시 대구 동양 프런트는 비록 국내선수들의 실력이 떨어지지만, 외국선수를 잘 데려오면 최하위는 면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는데, 이 같은 바람처럼 대구 동양이 스카우트에 성공한 외국인 선수 그레그 콜버트(센터)는 의외로 거물이었다.

콜버트는 파워 뿐 만 아니라 기술 정확성 등을 모두 갖춘 그야말로 특급센터였다.

당시 10개팀 센터 가운데 1, 2위를 다툴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 대구 동양은 98년 11월10일 나래 블루버드와 치른 개막전에서 1점차(90대 91)로 패했다. 1쿼터에서는 31대 25로 리드했으나, 2쿼터에서 5점을 따라잡혔고, 이후 시소게임을 벌이다 아깝게 패했다.

경기에서는 졌지만 대구 동양의 박광호 감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비록 경기에는 패했지만 콜버트의 엄청난 위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콜버트는 29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해 대구 동양과 나래 블루버드 두 팀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플레이를 했다. 다만 콜버트와 함께 영입한 존 다지 선수가 다른 용병에 비해 기량이 떨어지는 게 마음에 걸렸다.

대구 동양은 11월22일 대우 제우스와 치른 경기에서 2승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이틀 뒤인 24일 삼성 썬더스와 치른 경기에서 73대 70, 3점차로 패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2승6패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팀 전력의 절반을 차지했던 콜버트가 부인과의 불화를 이유로 돌연 귀국해버렸다. 콜 버트가 팀을 배반 한 것이다.

 

고양 오리온스의 김병철 코치. 그가 군에 입대한 후 동양 오리온스는 32연패의 연패 신기록을 기록했다.(사진=고양 오리온스 페이스북 갈무리)

대구 동양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돼버렸다. 부랴부랴 콜버트 대신 자바라 마일스를 영입했지만 마일스의 기량은 콜버트에 비해 휠씬 떨어졌다. 이후 대구 동양은 매 경기 연패를 거듭했다. 도무지 이기는 방법을 잊어버린 팀 같았다. 다 잡은 경기에서 막판 역전패하거나 아슬아슬하게 패하면서 선수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팀이 연패를 거듭하자 선수들은 물론이고 프런트에서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12월31일에는 팀 관계자들이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냈고, 박용규 사장은 대구 인근에 있는 ‘동화사’에 가서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

또한 김홍국 사무국장은 기혼 선수들의 부인들을 따로 불러 식사대접을 하며 더욱 적극적인 내조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의 중거리 육상 팀인 마군 단이 먹었다는 특수음료까지 공수해 선수들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 동양의 연패 행진은 99년 1월20일 SBS에 패함으로써 12연패로 당시까지의 한국 남자프로농구 팀 연패 신기록을 세웠고, 3월6일 나산 플라망스 전에서 패해 25연패로 미국 남자프로농구(NBA) 기록마저 경신하고 말았다.

대구 동양의 연패 행진은 99년 2월28일 나산 플라망스 전에서 비로소 멈췄다.

대구 동양 선수들은 1쿼터부터 펄펄 날아 22대 10, 12점차로 리드했다. 이후 한 번도 동점이나 리드를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이끌어갔다. 그 경기에서 대구 동양 선수들의 3점 슛 적중률은 43%, 그동안 연패의 빌미가 됐던 자유투 성공률도 71%나 됐다. 대구 동양 선수의‘베스트 5’가 모두 두 자리 점수를 올렸다. 정락영 24득점, 이인규 11득점, 이현주 11득점, 그리고 존 다지 19득점, 자바라 마일스 13득점이었다. 경기가 대구 동양의 승리로 끝나자 대구 실내체육관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꽃가루와 꽃 리본이 솟아올랐고, 연패를 거듭하는 동안 2000여명 이상 꾸준히 홈 경기장을 찾아준 대구 팬들과 대구 동양의 팬클럽인 ‘리틀 오리온스’ 회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전문가들한테서 상대팀인 나산 선수들이 대구 동양의 연패를 끊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우선 나산 선수들은 전날 LG와 치른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는 바람에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다른 경기와 달리 줄곧 ‘베스트 5’를 출전시킨 게 아니라 12명을 골고루 기용했다.

아무튼 대구 동양은 연패를 끊은 2월28일 나산 전에 진을 뺀 때문인지, 이튿날 벌어진 기아 엔터프라이즈와의 경기에서는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82대 108로 무너졌고, 이후 시즌 마지막 경기(SK에 93대 102 패)까지 전패를 당해 결국 3승42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는 당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현대 걸리버스(33승12패) 승리 경기에 비하면 형편 없는 승수였다. 대구 동양은 32연패를 포함해 3승42패를 기록하면서 당시까지 한 경기 최소 득점(99년 1월5일 SBS전 55점), 한 경기 최소 어시스트(98년 12월8일 나산 전 1개), 한 경기 최소 리바운드(98년 11월5일 17개) 등의 치욕스러운 기록도 함께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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